어느 잡지에 이런 사진이 동시에 실려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박수 속에 취임하는 김대중 대통령의 화려한 모습과 최근의 국정난맥상으로 고심하는 김대통령의 침울한 표정이 대조를 이룬 사진이었습니다.
문득 이 사진을 보면서 세상인심의 허무함과 더불어 우리도 언제 취임 때와 같은 환호와 열광 속에서 자신의 퇴임을 맞이하는 대통령을 가질 수 있겠는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점이 정치 선진화의 하나의 잣대가 아니겠는가 혼자 생각해 봅니다.
대통령 취임식과, 왕의 즉위식. 분위기가 많이 다르긴 하겠지만 분명한 하나의 사실은 이 자리는 취임하는 대통령과 왕이 자신의 통치 이념과 정치철학을 밝히면서 국가의 비전을 제시하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대통령의 취임행사는 대통령이 가지는 철학을 분명히 드러내기 위하여 행사의 내용과 분위기가 조성되고 초청인사들의 범위도 결정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대통령의 취임식을 볼 때 이 같은 관점을 가지고 보면 『아 이 대통령이 무엇을 원하고 있구나』하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전례력으로 한해를 마무리하는 연중 제34주일을 지내면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으신 그리스도의 왕권을 기리는 그리스도왕 대축일을 지냅니다. 그런데 이날의 복음을 보면 어처구니없게도 예수님의 십자가상 죽음을 전해주는 너무나 비참한 예수님의 마지막 모습을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왕 대축일」. 화려함과 웅장한 그 무엇이 어울릴 것만 같은 오늘 왜 복음은 십자가상 예수님의 초라한 죽음을 우리에게 전해주겠습니까 ?
그 이유는 예수님의 이 십자가상 죽음이 바로 예수님의 즉위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복음을 보면서 우리가 가장 먼저 보아야 할 점은 거창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예수님의 통치 철학입니다.
사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왕 하면 떠오르는 것은 호화로운 궁전과 물질적인 풍요, 권력과 화려함, 그리고 힘을 상징하는 군대와 그리고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모습 등등 일반적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왕의 개념과 어울리는 말들입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는 이러한 것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십자가 위에 초라하게 달린 『유다인의 왕』이라는 죄목만이 그분의 정체를 밝혀주고 있고, 수많은 인파의 환호와 박수 대신 사람들의 조롱과 모욕, 화려한 왕관 대신 「가시관」, 왕좌에 앉아 호령하는 엄위로운 모습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힌 너무나 볼품없는 모습,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왕의 모습과는 정반대의 모습만이 오늘 복음에 나타납니다. 이러한 모습들은 온 세상의 모든 권한을 받으신 우리의 주권자 예수님은 세상의 일반적 왕들과는 전적으로 다른 분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심판하시는 분이 아니라 심판 받는 왕이요, 통치하고 군림하는 왕이 아니라 희생하고 봉사하는 왕, 부와 풍요의 왕이 아니라 가난의 왕이요, 찬양과 환영을 받는 왕이 아니라 조롱과 멸시를 받고 시험을 받는 왕이 바로 우리가 섬기고 따라야 할 왕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이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왕직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수행해야할 또 하나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과 이웃을 위해 일할 때, 우리의 모범이신 그리스도를 따라 가난과 핍박, 희생과 봉사가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이요, 때로는 이웃들의 조롱과 멸시마저도 각오해야 한다는 것을 오늘 복음은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의 후반부에는 그분의 나라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보여 줍니다.
군중들과 군인들의 모욕과 멸시 그리고 천대 앞에서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한 죄수는 『우리가 한 짓을 보아서 우리는 이런 벌을 받아 마땅하지만 저분이야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이냐』라고 이야기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나아가 그분의 무죄함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멈출 뿐 아니라 모두가 예수님을 거짓왕으로 조롱할 때 그 홀로 『예수님, 예수님께서 왕이 되어 오실 때에 저를 꼭 기억하여 주십시오』라는 어떻게 보면 그 상황 속에서는 어리석어 보일 수도 있는 신앙고백을 합니다. 그리고 이 고백으로 이 죄수는 그분의 나라에 참여하는 영광을 얻게 됩니다.
이 사실은 인간 구원에 있어서는 인간이 지은 죄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아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 그리고 「멸시와 조롱 앞에서 그리스도를 고백함」이 그분 나라의 시민이 될 수 있는 자격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오늘 예수님의 십자가상 죽음 장면은 그분이 왕이심을 천명하면서 낮춤과 희생, 겸손과 봉사가 당신 나라를 다스리는 통치 이념임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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