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새 천년기를 연 올해 한국교회는 새롭게 대두되는 생명윤리 문제를 둘러싸고 많은 논란을 벌여왔다. 과학과 의학의 급속한 발전은 생명의 신비를 파헤쳐왔다. 그 과정에서 낙태, 사형 등과 같은 기존의 윤리적인 문제들뿐만 아니라 유전자 조작, 인간 복제, 대리모 등 다양한 생명윤리 논쟁들이 야기됐다. 올해는 또 신유박해 200주년을 맞는 역사적인 해였으며 한국교회는 이에 따라 각종 기념행사를 개최하면서 초기 교회 순교자들에 대한 시복시성 작업에 박차를 가해왔다. 올 한해 동안의 한국교회를 정리해보면서 생명윤리, 신유박해 기념행사와 시복시성, 그리고 사회사목 등 세 가지 분야에서의 활동을 결산한다.
사형제도 폐지 운동
올해 한국교회의 생명수호활동에 있어서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범종교적인 연대운동이었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를 비롯해 개신교, 불교 등 국내 주요 종단은 꾸준하게 모임을 가지면서 연대활동 방안을 모색했고 그 첫 번째 가시적인 성과로 나타난 것이 6월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된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범종교 연합행사」이다.
이날 행사에서 종교인들은 『사형 제도 폐지, 우리 모두의 힘으로!』를 내세우며 선의의 모든 사람들이 제도적 살인으로 비난받는 사형제도를 폐지하기 위해 힘을 모을 것을 촉구했다. 범종교연합은 이어 6월 29일 각 종단 성직자와 신자들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한불교 조계종 조계사에서 명동성당까지 평화의 행진을 벌였다.
주교회의 차원에서 사형폐지를 적극 추진하기 시작한 것이 정평위 산하에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가 설치돼 5월 23일 첫 모임을 가지면서부터이다. 국내에서 사형폐지가 종교계를 중심으로 힘을 받기 시작한데 이어 일본, 대만 등 아시아 지역 국가들과의 연대가 이뤄지기 시작한다. 8월 27일 한국, 일본과 대만의 관계자들이 서울에서 모임을 갖고 서울에서 제2회 아시아 포럼을 개최하는데 합의한다.
11월 1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아시아 포럼은 한국이 아시아 지역의 사형제도 폐지의 선봉에 서게 된 역사적인 행사로 기록됐다. 주교회의 정평위를 비롯한 범종교연합은 포럼 외에도 연극제, 음악제, 미술전 등 다양한 문화 행사들을 통해 사형제도 폐지에 대한 대중적인 여론을 일깨우면서 추후 사형폐지운동의 초석을 놓았다.
때맞춰 국회의원 정족수의 과반수를 훨씬 넘는 155명의 의원이 서명한 사형제도 폐지 특별법이 국회에 제출돼 현재 심의를 기다리고 있다. 범종교연합 등은 올해 안에 사형폐지가 이뤄질 것을 고대하고 있지만 그것이 어려울 경우 장기적인 전망을 갖고 꾸준한 노력을 기울일 것을 다짐하고 있다.
생명윤리 문제들
올해는 유난히 생명윤리 문제가 불거진 해였다. 특히 과기부 산하에 설치된 생명윤리자문위원회가 입안한 「생명윤리기본법」을 둘러싼 논쟁과 논의는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생명복제와 유전자 치료 등 과학기술의 발달로 새롭게 대두된 윤리적인 문제들에 대한 총체적 지침이 될 이 법안을 둘러싸고 종교계를 비롯한 시민단체와 생명과학계, 산업계의 논쟁은 지금까지 전례가 없었을 정도로 첨예하게 대립됐다.
「생명윤리기본법」과 관련해 종교계와 시민단체들은 적어도 올해 안으로는 입법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었으며 이를 위해 조속한 제정을 위한 공동캠페인단을 구성해 빠른 시일 내에 관련 법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는 배아 관리 등 현재 우리 나라의 생명과학계가 이와 관련된 지침이 부재함에 따라 전혀 관리나 감시가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국 생명과학계와 산업계의 압력과 반발로 법안 마련은 내년으로 넘어가게 됐다.
그런 가운데 대한의협은 낙태, 대리모, 생명복제 등과 관련해 교회의 윤리적인 입장과 배치되는 의사윤리지침을 발표해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켰고 이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아지자 한발 물러섰다가 11월 결국 확정 발표함으로써 반생명적인 자세를 보였다.
이 윤리지침은 일부 논의의 여지가 있다고 해도 낙태와 대리모를 허용하는 등 윤리적인 면에서뿐만 아니라 현행 실정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부분까지도 정면으로 배치됨으로써 많은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또 식품의약품안전청은 국내 한 제약회사가 수입판매 허가신청한 사후피임약 노레보정을 마침내 최근 시판 허가함으로써 생명경시 풍조와 성문란을 야기할 것이라는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기도 하다. 관계 당국은 종교계 등에 수입판매에 대한 여론 조사를 실시했으나 전반적으로 반대보다는 찬성 여론이 높다고 보고 결국 시판을 허가했다.
이러한 제반 생명윤리 문제에 대한 교회의 대응도 본격화됐다.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는 산하에 생명윤리연구회를 설치해 새롭게 나타나는 수많은 생명윤리 문제들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전하고 신자들을 포함해 모든 사람들이 생명문화 건설에 매진해야 함을 선언하고 있다.
주교회의는 이미 지난해 8월 29일 상임위원회에서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9월 25일부터 열린 추계 정기총회에서 설치를 결정했다. 신앙교리위원회 위원장 주교를 위원장으로 하고 10여명의 각 분야 전문가를 위원으로 위촉해 1월 16일 발족한 생명윤리연구회는 생명윤리 문제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망라해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올해부터 본격화한 생명윤리 논쟁은 앞으로도 끊임없는 논란거리를 야기할 것이며 이에 따라 교회의 좀더 전문적이고 적극적인 대처가 요구되고 있다.
한편 지금까지 가톨릭교회를 비롯한 종교계의 생명 수호 노력이 현실적인 성과를 거두는데 있어서 다소 미흡하다는 지적도 있다.
치열한 로비와 압력으로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대처를 해나가고 있는 생명과학계와 산업계, 그리고 생명문제에 대한 국민 대중의 이해 부족 등에 대해 좀더 효과적인 대처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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