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차게 새로운 천년을 시작했지만 세상은 여전히 분쟁과 갈등으로 얼룩져 있다. 과학과 상업적 이해 아래 반생명적 행위들이 맹위를 떨치고, 수조원의 음식이 쓰레기로 버려지면서도 수백만의 난민들이 굶주리는 모순이 재현되고 있다.
회개와 속죄의 때이자 희망의 시기인 대림절 동안 다양한 삶의 자리에서 느끼는 애환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며 나누는 기회를 마련하고 평화를 기원해보고자 한다.
「핏줄」. 이 얼마나 끈끈하고 정겨운 말인가.
하지만 한핏줄을 나누고도 이념의 차이로 서로 반목하며 총칼을 겨눠온지도 50여년이 흘렀다.
「한맺힌 가슴 얼싸 부둥켜안고 하나될 그날은 언제쯤 오려나」. 오늘도 우리 겨레가 하나되는 그날을 꿈꾸며, 갈라진 형제들을 위해 두손을 모으는 이들이 있다.
여만철(프란치스코·56· 본리본당)씨 가족. 지난 94년 4월, 북녘땅을 떠나 일가족이 귀순했다.
『북한에서는 먹고 살기가 힘들어 목숨을 걸고 중국으로 도망쳤습니다. 꿈에도 그리던 남한에 발을 내딛게 돼 무척 기쁩니다』
북한 탈출 후, 김포공항에 내리며 여씨가 한 말이다. 「꿈에도 그리던 남한」에서의 생활도 이제 8년째.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자유를 찾기 위해 얼어붙은 압록강을 넘어온 그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여만철씨는 물론 부인 이옥금(루시아·53)씨와 맏딸 금주(테클라·28), 맏아들 금룡(대건 안드레아·25), 둘째 아들 은룡(레오·23)씨 모두에게 큰 변화가 있었다. 흐르는 세월 만큼이나 점점 남녘땅에 익숙해져갔다.
귀순 당시 유치원 교사였던 금주씨는 지난 1월 결혼을 했고, 고등중학교 6학년이었던 금룡씨는 대학생으로, 고등중학교 4학년이었던 막내 은룡씨는 아버지 여씨가 차린 북한음식점 요리사로 이땅에서 뿌리내리며 살아가고 있다.
여씨 일가족에게 이러한 외적 변화보다 더 의미있는 것은 이들이 남녘땅에서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났다는 사실이다.
탈북자 중에서 천주교를 믿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처음에는 여씨 가족도 개신교 교회에 다녔다. 개신교 신자들의 적극적인 권유에 못이겨서였다. 하지만 탈북 후 중국에서 도움을 준 한국인의 사무실에 들어갔을 때 처음 보았던 「십자가와 성모상」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자신들을 위해 아낌없이 베풀어주는 은인의 마음 씀씀이와 더불어 오래오래 마음에 남았던 것이다.
『우리를 도와주고 보호해준 이가 천주교 신자였고, 그 사람을 통해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길을 놓아준 것도 하느님의 뜻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씨 부부는 지난 95년 서울 오류동본당에서 세례를 받았고, 이듬해 3남매가 도남동본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힘들었던 기억, 가혹했던 기억들을 훌훌 털어버리고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났다.
그래도 가슴 한켠에는 문득 문득 걱정들이 떠오른다. 떠나온 그땅에 남겨진 형제들을 생각하면, 누구보다 그네들의 고통을 잘 알고 있기에 내내 마음이 쓰인다. 물론 여씨 가족이 발붙이고 있는 이땅도 천국만은 아니었다. 가려진 남한의 실체가 조금씩 보이면서, 「천국 남한」에 대한 환상도 하나 둘 깨어지기 시작했다.
대학을 다니며 한층 더 넓은 시각으로 남한 사회를 바라보게 됐다는 금룡씨가 말한다.
『철거민들을 내쫓기 위해 강제로 그들의 보금자리를 빼앗는 모습들, 빈부격차, 돈이면 무엇이든 된다는 황금만능주의와 사회 곳곳의 부조리를 보면서 남한도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에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떠나올 때의 북한의 모습에 대해 『추수한 논밭에 둘러앉아 막걸리 한잔에도 이웃간 정을 나누고, 명절 때면 이웃들이 함께 둘러앉아 정담을 나누며 공동체적 삶을 살았다』고 떠올리면서 남이나 북이나 사람 살아가는 모습은 한가지라고 말한다.
조금 더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로서 차이가 있을 뿐, 결국 남과 북은 한형제다. 그렇다면 갈라진 형제들을 위한 길은 무엇일까?
금룡씨는 이렇게 말한다.
『경제적, 정치적 통일에 앞서 보통 사람들끼리 서로를 만나는 심정적 통일이 먼저 이뤄져야 합니다. 진정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아낌없이 가진 것을 나누는 사랑이 무엇보다 필요하지요. 우리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시면서 희생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처럼, 설사 지금은 남과 북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있지만, 형제에 대한 사랑으로 그들을 도와야 할 것입니다』
여씨 가족은 지난 4월 그동안의 서울 생활을 접고 대구로 내려왔다.
현재 장기동에서 「하내비」(함흥 방언으로 「할아버지」라는 뜻)라는 북한음식점을 경영하고 있다. 아직까지 큰 수입은 없지만, 어려웠던 북한의 생활을 떠올리며 열심히 일하고 있다.
여씨는 『남한으로 건너올 때, 4년만 지나면 반드시 통일이 돼 고향으로 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면서 북녘땅에 남겨둔 형제들과 수많은 탈북자들이 조금 더 나은 모습으로 살아가길 소망했다.
분단 반세기. 우리는 그동안 갈라진 형제들을 위해 무엇을 해왔을까?
새벽을 기다리는 파수꾼처럼, 구세주 탄생을 기다리는 믿는 이의 마음으로 분단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 겨레의 하나됨을 그려본다. 그리고 다가오는 성탄이 갈라진 이들에게 기쁜 소식, 갇힌 이들에게 자유를 주는 겨레의 「희망」이 되길 기도드린다.
※하내비 연락처=(053)521-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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