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위 순교 복자들의 시성운동을 책임졌던 나로서는 주교직 수행동안에 있었던 가장 보람된 일을 말하는데 있어 시성식을 빼놓을 수 없다. 사실상 시성운동의 시작은 평신도들이 했다. 1967년 시복식을 다녀오면서 자극을 받은 평신도들은 주교회의를 할 때마다 시성식 건을 가지고 와서 그 안을 올려달라고 했다. 당시 주교회의 사무총장이었던 나는 그 안을 정리해서 주교회의에 올렸다. 1971년, 1972년 계속 시성건을 올렸지만 부결되었고, 1974년 주교가 된 후 1975년 가을총회에서 '시성을 위한 기도문'을 우선 통과시켰다. 그리고 주교회의의 시성추진위원장이 되어 시성식 절차를 알아보게 되었다.
1977년 2월 3일 로마로 달려가 79위와 24위, 두 번에 걸쳐 우리 순교자들의 시복 수속을 책임졌던 파리외방전교회 로마 사무소를 찾아갔다. 기해, 병오박해 때의 79위 순교자는 1925년 7월 5일부로 시복되셨고, 병인박해 때의 24위 순교자는 1967년 10월 6일 시복되셨는데, 두 번 다 파리외방전교회 신부님들에 의해 시복되셨기 때문에 그분들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였다.
로마에는 각 나라, 교구, 수도회 등 시성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모두 집결해 있었다. 그리고 교황청 시성성에서는 한주일에 한번씩 시성운동을 어떻게 하는지, 절차를 어떻게 밟는지 등 시성준비를 위한 강의가 있었다. 어떤 때는 40, 50명이 강의를 들었다. 나도 몇 번 가서 들었는데 거기에 모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20년, 30년 기다린 사람, 어떤 신부님은 두 대째 하고 있는데 전대는 벌써 죽었다고 했다.
이런 어려움으로 한국 교회에서는 1984년 한국천주교회 2백주년을 내다보고 8년 내에 시성식을 한다는 일에 대해 비관론이 우세했다. 그러나 한국 103위 성인의 시성식은 운동을 펼친 지 8년만인 1984년 5월 6일 여의도광장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대하게 거행될 수 있었고, 이제는 우리 성인들의 축일이 국제화되어 온 세계에서 경축되고 있다.
시성식을 이렇게 빨리 할 수 있었던 것은 교황님이 한국을 무척 사랑하셨기 때문이며, 한국을 통해서 아시아 지역을 복음화해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더구나 한국 천주교회 2백주년 행사 때 오시면서 선물을 주고싶기도 하셨을 것이다. 103위 시성식을 할 때만 해도 성인 없는 나라가 많았다. 그 때가 성인도 국제화해야 한다는 관심들이 교황청에서 서서히 형성되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그중 하나로 한국이 인정된 것 같다. 103위 한국 순교자 시성식은 그런 시대적 변화 때문에 좀더 쉽게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에 비해 아직도 한국교회의 성인공경은 미약한 것 같다. 사실 우리는 특별한 몇 분을 제외하고는 그분들이 순교하셨다는 사실 외에는 그분들이 어떤 삶을 살다간지도 잘 모르고 있으니 그분들의 삶이 우리에게 크게 와닿지 않는지도 모른다. 우선 우리는 우리의 성인들이 어떤 분인가부터 알고 우리가 성인들을 모시고 있는 만큼 성인들을 공경하는 노력도 열심히 하여 성인들로 인하여 더욱 풍성하고 빛나는 한국교회로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나는 주교직을 수행하면서 주교회의 안에서 전례위원회, 성서위원회, 교리위원회, 사목위원회, 선교위원회, 선교사목위원회, 한국천주교회 20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위원장과 군종단 총재, 주교회의 부의장, 주교회의 의장 등 참 많은 감투를 썼던 것 같다. 사실 주교회의 의장직은 내게 과분한 것이었고 미안스럽게 생각한다.
주교회의는 교회를 이끌어 가는 주교들이 1년에 한두 번 모여서 자신들이 겪은 일, 체험한 일들을 서로 나누고 배우면서 공동으로 할 수 있는 것은 공동으로 추진한다는 점에서 매우 유익하고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교구장의 권한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흔히들 주교회의가 비밀스럽게 모여서 무엇을 결정하고 지배하는 기관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는데, 주교회의는 무엇을 결정하는 기관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주교들의 협의기구이다.
때로는 결정하기도 하지만 주교회의 규약상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주교회의의 정수는 어쩌면 저녁식사 후 TV 앞에서 이야기하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그때는 주교들이 사제들에 관한 이야기부터, 정말 밖으로 알리고 싶지 않은 체험을 서로가 솔직히 토로하면서 그 처리방안을 논의하고 처리결과에 대해서 서로 평가를 받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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