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마라 할지라도 길들이면 사람을 태워 달리게 할 수 있고, 쇠붙이도 녹이면 마침내 거푸집에 들어갈 수 있다. 다만 게으름을 부림으로 꾸물거린다면 죽을 때까지 아무런 진보도 없다』
「채근담」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 말은 야생마도 잘 훈련을 받아 변한다면 명마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중국의 영웅들 중에는 문제아 출신들이 많다고 합니다. 유방이나 한신 그리고 주원장 같은 이들은 모두 불량아 출신으로 젊어서는 사람들의 멸시를 받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불량아로 끝나지 않은 까닭은 어떤 시기를 기점으로 자신이 가던 길을 버리고 돌아서 자신들이 가진 능력을 발휘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혹자는 이야기합니다. 사람한테 무서운 것은 잘못되었던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그릇된 길을 걷는다는 것을 모르고 현실에 안주하며 살아가는 것이 정말 무서운 병이라고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대림 제2주일을 지내면서 대림절의 사나이 요한을 만나게 됩니다. 이분은 삶 자체가 바로 설교였던 분으로 그분이 입었던 의복과 음식 모두가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그분이 입었던 의복인 낙타 털옷과 가죽띠는 사막 유목민들이 입었던 옷일 뿐 아니라 옛날 아합 왕 시절 구약의 예언자를 대표하는 예언자 엘리야가 입었던 옷입니다. 이 옷을 요한 세례자가 입었다는 것은 바로 이 인물이 구약의 전승대로 메시아의 오심을 준비하시기 위해 오신 승천하셨던 엘리야란 사실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분이 먹었던 메뚜기와 들꿀은 인간의 노력이 들어가지 않은 자연적인 것으로 하느님께만 의존한다는 사실, 세속적 물질이 아니라 하느님으로 가득 찼던 인물이 요한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활동무대인 광야. 이 광야는 시련과 고통의 장소인 동시에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400년 에집트 노예생활을 끝내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기 전 40년 동안 준비해야만 했던 곳입니다. 비록 광야의 생활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생활이었지만 야훼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이러한 시련과 고통을 통해 하느님과의 사랑을 키워갔던 곳이요 그들이 사랑의 계약을 맺었던 참으로 의미 풍부한 장소입니다.
이러한 사실만 보더라도 요한이 어떤 분인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분은 오늘 복음에서처럼 세례를 베풀면서 하느님 나라의 오심을 준비한 인물이었고, 이분 설교의 중심 주제는 회개였습니다.
「회개」라는 말은 「길을 바꾸다」「돌아오다」라는 히브리말 동사에서 파생된 말로서 「마음의 개선」이라는 내적 방향전환과 생활의 개선이라는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말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느님을 중심으로 돌아선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느님을 등진 삶에서 돌아서서 하느님을 향한 방향 설정 이것이 회개인 것입니다.
바로 오늘 요한의 설교는 이러한 회개에서 우리가 기억해야할 3가지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먼저 세례를 받으러 오는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사두가이파 사람들에게 『회개했다는 증거를 행실로써 보여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말은 회개란 형식적이고 의식적인 예식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세례 예식을 뛰어넘는 삶의 변화를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의식적인 행위로 만족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례성사와 고해성사를 통해 죄의 용서를 청하는 우리도 한번은 생각해 봐야할 말씀인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은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다」라는 소리를 하지 말라고 하면서 하느님은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녀」를 만드실 수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의 자녀」라는 이 명칭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참으로 자랑스럽고 긍지를 가질 수 있는 이름이었습니다. 이 말은 곧 하느님의 선택받은 백성의 일원이 된다는 것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할례를 통해 아브라함의 자녀가 되기를 소원했습니다. 아마도 오늘날의 의미로는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로 탄생하는 것과 비교해서 이야기 할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요한은 이러한 아브라함의 자녀를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가장 흔하고 보잘것없는 「돌」들로도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자녀로 태어난 외적인 조건 그것은 그렇게 중요한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즉 「회개」라는 문제에 있어서는 「내가 유다인이다」「내가 세례를 받았다」라는 이러한 외적인 자격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3번째는 『도끼가 이미 나무 뿌리에 닿았다』고 합니다. 서두르라는 것입니다. 회개란 내일로 미룰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지금 시작해야할 과업이라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요한이 이야기하는 회개는 외적인 형식이나 의식을 뛰어넘는 지금 여기에서의 삶의 결단을 이야기하는 듯 합니다. 성사를 통해 회개의 삶을 살면서 대림절을 지내고 있는 우리 신앙인들이 정말로 마음속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말씀 안에서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