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늘 여전히 이해당사자 국가인 한국과 주변의 이웃 나라에 대한 일본의 오만한 태도와 입장에 대해 분노를 금치 못한다. 고이즈미 총리는 과거사에 대해 진전된 입장 표명 없이 1998년 한일 공동선언의 내용을 반복했다. 그리고 역사교과서 문제는 양국 학자간 연구과제로 넘겨버린 상태이다. 또한 일본역사교과서 저자 중 한사람인 사카모토 다카오는 위안부의 역사를 화장실의 역사라고 말하면서 우리나라의 딸들에 대해 일말의 교양과 인권을 염두해 두지 않고 함부로 지껄이고 있다』
수요일인 11월 28일 낮 12시,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서는 어김없이 일본의 역사적인 만행을 규탄하는 시위가 마련됐다. 이날 행사를 주관한 한국기독교장로회 여교역자협의회 회원들은 간단한 예배와 경과 보고에 이어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자신들의 역사적인 과오에 대해 반성하기는커녕 테러와 테러에 대한 대응의 과정에서 점입가경의 가관을 보이고 있는 일본의 행태에 대해 비난했다.
이날 시위로 지난 1991년 1월 16일 미야자와 일본 수상의 방한을 계기로 진행된 첫 시위 이래 1992년 1월8일 이후 매주 수요일마다 열린 수요시위가 통산 486회를 기록했다. 지난 9월 5일에는 시위가 시작된 뒤 처음으로 일본 시민단체 100여명이 집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단일 사안으로는 최다 최장기 시위를 기록하고 있는 이 끈질긴 요구는 일본 정부가 이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날까지 끊임없이 이어질 기세이다.
참된 뉘우침은 여전히 없어
정신대 문제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가해자들은 여전히 사과하지 않고 있으며 참된 회개를 바탕으로 한 용서를 청하지 않고 있다. 평화는 용서를 통해 오지만 용서는 참된 뉘우침이 있어야 한다.
정의를 세우기 위한 의로운 이들의 싸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책임자 처벌을 위한 국제 민간법정이 12월 3일과 4일 이틀 동안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려 피고들에 대한 최종 판결을 내린다. 이 법정은 지난해 12월 7일부터 12일까지 일본 동경에서 아시아 피해국들의 공동주최로 열린 '2000년 일본군 성노예전범 국제여성법정'(이하 2000년 법정)의 일환이다.
지난해 열린 법정은 약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10개국의 검사단의 기소, 피해자 증언, 전문가 증인의 참고 발언 등에 이어졌고 구 유고 전범 법정의 수석 판사였던 가브리엘 맥도날드 등 4명 판사단이 국가 책임과 히로히토 전 일본 국왕의 유죄에 관한 요약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번 최종 판결은 각국 검사단이 기소한 30여명의 피고 중에서 각국에서 물증 자료를 기초로 공통적으로 기소한 도죠 히데끼, 마쯔이 이시네 등 9명의 군부와 정부 지도자들에 대한 판결이 내려진다.
전범자에 대한 기소는 1945년 이후 동경 전범 재판에 의해 이뤄졌으나 일본군 성 노예제에 대해서는 전혀 처벌한 바가 없다. 따라서 이번 법정은 전시의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전쟁 범죄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책임자 처벌의 근거를 만드는, 새로운 국제법의 패러다임을 설정하는 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남북한은 지난해 동경에서 역사적인 남북공동기소장을 제출하기도 했다.
이번 재판에는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의 피해자 11명을 포함해 총 10개국에서 100여명이 참여하고 북한에서도 6명의 관계자가 참여한다.
민간이 구성한 이 법정의 판결은 국제법상 구속력은 없으나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제 여론을 환기하고 일본 정부의 전향적인 자세를 촉구하는 압박 수단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미국 법정에서는 한국과 중국, 대만, 필리핀의 강제 위안부 피해자 15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워싱턴 연방 법원에 낸 손해 배상 집단 소송이 진행돼 왔다. 지난해 9월 18일 만주사변일을 기해 제소된 이 소송은 그후 2001년 3월 일본 정부의 소송 기각 신청 등 뜨거운 법정 공방 끝에 아쉽게도 지난 10월 4일 소송 기각 판결이 내려졌다. 하지만 원고측은 이 소송이 결국 대법원까지 가야 결판이 날 수 있는 장기전이라는 의미에서 실망하지 않고 바로 그 다음날인 10월 5일 항소장을 법정에 제출해둔 상태이다.
정당한 배상과 명예회복은…
전쟁이 끝나고 수십 년 동안 완전히 잊혀져 있던 강제 위안부 문제가 세인들의 관심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90년. 이미 70년대와 80년대 일부에서 관련 자료들을 수집하고 위안소 지역에 대한 답사들이 이뤄졌었지만 90년11월 국내 37개 여성 단체와 개인들이 모여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을 결성하면서 본격화됐다.
이듬해 8월 김학순 할머니가 처음으로 피해를 증언하면서 일본군 강제 위안부 문제는 엄청난 파장을 불러왔다. 이어 1991년 12월 피해자 3명이 일본 정부를 제소했고 1992년 1월부터 유명한 수요 시위가 시작됐다. 1993년 8월에는 일본 정부의 조사 결과가 발표되고 정부의 간여를 시인하는 당시 고노 관방장관의 담화가 발표됐다.
1997년 11월에는 국회에서 일본 전범의 출입 금지를 위한 출입국 관리법 개정안이 의결됐으며 12월에는 최초의 증언자인 김학순 할머니가 별세했다. 1998년 4월에는 서울에서 제5차 아시아 연대회의가 개최돼 2000년 국제법정을 열기로 결정했으며 같은 시기에 시모노세키 지방법원에서 일본 사법부 사상 최초로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 3명에게 손해배상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그해 8월에는 유엔 인권소위원회에서 일본 정부의 배상을 요구하는 '게이 맥두걸 보고서'를 채택했다.
10여년 이상 계속된 싸움에 상황이 많이 나아진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여전히 이들에 대한 정당한 배상과 명예 회복은 멀기만 하다.
역사의 파란 한가운데에서 개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파괴되고 황폐화된 할머니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씻어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오직 한 가지 뿐이다. 일본 정부가 사망한 전범자들을 대신해 모든 오욕의 역사를 인정하고 낱낱이 자료를 공개함으로써 공식적으로 사죄한 뒤 법적으로 배상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올바른 역사 교육 등의 가시적인 조치를 취하는 일이다.
수십년 동안 가슴 속에만 파묻어 왔던 고통스러운 과거를 역사 앞에 폭로함으로써 최소한의 보상이라도 받을 것을 기대했던 그 많은 할머니들은 이제 흐르는 세월을 어찌하지 못한 채 여전히 터져 나오는 분노를 곱씹으며 한 분 한 분 세상을 떠나고 있다. 처음 200여명을 헤아렸던 할머니들은 10년 남짓 지나면서 눈을 감는 분들이 생겨 이제 남은 할머니들은 140여분.
하지만 일본 정부는 아직도 위안부 문제를 덮는데 급급하다. 더욱이 올해 터져 나온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는 그렇지 않아도 가슴에 한이 많은 할머니들에게 또 하나의 한을 안겨주었다.
"정신대 역사는 화장실 역사"라는 패륜적 망언까지 일삼는 일본 극우 집단들은 자신들의 과오를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역사적인 사건들을 왜곡함으로써 또 다시 그들이 저지른 전범에 버금가는 역사적인 과오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기억의 정화 필요
위안부 할머니들의 문제는 이제는 잊혀져야 할 과거사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대희년에 즈음해 발한 사죄와 용서의 청원은 과거의 기억을 정화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하며 미래를 좌우하는 것인지를 증거하고 있다.
참 평화는 언제나 정의를 바탕으로 얻을 수 있다. 정의가 없는 평화는 거짓 평화이며 정의가 실현되는 곳에서만 평화가 넘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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