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 교회가 동참한 기념사업
올해만큼 전 교회 차원의 행사가 풍성했던 적은 없었다. 각 교구뿐 아니라 본당, 단체, 신자들이 곳곳에서 일궈낸 신앙의 열기는 세상 속으로 이어지며 적잖은 열매를 남기기도 했다. 전국적으로 불붙은 순교자현양 행사는 그 어느 때보다 다채로웠다.
지난 9월 16일 6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서울대교구 「순교자 현양 신앙대회」를 비롯, 1000여명의 신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수원지역 순교자현양대회」, 인천교구가 한국순교자 대축일을 맞아 봉헌한 「순교자 현양미사 및 박순집 유해 안장식(9. 20)」, 5000여명의 교구민이 함께 한 청주교구의 신유박해 200주년 기념 순교 현양 신앙대회, 6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제주교구의 기념 테마피정 「정난주 순례」 등 각 교구 차원에서 이뤄진 각종 행사는 지역사회에도 적잖은 파급력을 낳는 모습이었다.
▲ 배티성지에서 열린 청주교구 순교자 현양대회에서 이종철 신부와 로사리오 성가단이 공연을 하고 있다.
특히 올 한해는 분야별, 세대별로 다양한 기념행사가 이어지며 순교신심의 대중화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시기로 평가된다.
우선 꼽을 수 있는 것은 폭발적으로 이뤄진 각종 학술 행사와 출간사업이 신자들의 영성의 기반을 확대하는 데 적잖은 공헌을 했다는 점이다.
한국교회사연구소가 국제적 학술 교류의 장으로는 처음 마련한 「신유박해 200주년 교회사 국제 심포지엄(9. 29)」과 「신유박해 순교 200주년 학술 강좌」, 대구대교구의 「시복시성을 위한 논문발표회」등 전국적으로 연구·발표회가 이어지며 교회사의 학술적 기반을 두텁게 다졌다. 이같은 움직임은 그간의 성과를 집적하는 출판사업으로 이어졌다.
신유박해를 둘러싼 최대의 사료로 평가되는 「사학징의」간행을 비롯, 한국교회사연구소가 낸 「신유박해 순교자 전기집」 등 각종 출간사업은 한국교회가 벌이고 있는 시복시성추진운동에 새로운 디딤돌을 마련했다.
또 문화예술계 활동이 유난히 두드러졌다. 교회 전시 사상 처음으로 관람객 2만명을 돌파하는 진기록을 남긴 「신앙의 향기 200년전」을 비롯, 유중철 이순이 부부의 순교사를 그린 뮤지컬 「님이시여 사랑이시여」, 「전통인형으로 빚은 한국천주교회사」 인형전 등 각종 문화공연과 전시 등을 통해 순교자 현양을 위한 움직임이 활성화된 것도 새로운 흐름으로 지적되고 있다.
3. 세대·계층이 고루 안배
청소년, 청년층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됐던 시기라는 기록도 남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청년들에게 순교영성을 불어넣기 위해 서울대교구가 개설한 「순교자 현양 천주학당(9. 19)」, 수원교구가 7월 7일 개최한 290여㎞ 장정의 「통일염원 청년도보순례」, 전주교구의 200주년 기념 청소년 백일장, 사생대회(6. 6)와 「순교역사체험」등은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순교 영성의 저변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아울러 장애인 성지순례를 비롯한 노인, 소년소녀가장 등을 대상으로 한 이벤트는 교회 내 다양한 계층 사이에서 영성을 새롭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주기도 했다.
4. 교회 성원의 고른 동참
청주교구가 교구장 장봉훈 주교를 비롯한 성직자, 수도자 130여명이 동참한 가운데 9월 4일 도보 성지순례에 나선 것을 비롯, 춘천교구가 더 많은 신자들이 전대사를 받을 수 있도록 순례성당을 추가로 지정하는 등 각 교구에서는 성직자와 수도자, 평신도 등 교회 전 성원이 고루 동참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아울러 지역·본당 차원의 기념행사도 봇물을 이룬 한 해로 기록될 것 같다. 서울대교구 각 지구가 연 지구 음악제와 작품전시회 등 지구 차원의 행사를 비롯, 서울 가락동본당이 전신자를 대상으로 도보성지순례에 나선 것을 필두로 수많은 본당이 순교신심을 다지는 성지순례에 나서는 모습이 보편화되기도 했다.
특히 대구 상인본당의 「200주년 및 대구 순교자 23위 시복 시성을 위한 99일 기도 봉헌」 등 기도 운동이 불붙었던 한해로 기억될 만하다. 이같은 움직임은 기층 단체로까지 확산돼 서울 전례꽃꽂이연구회의 200주년 맞이 작품전시회, 각 본당 성가대들의 기념 음악회 등 손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분출되기도 했다.
올해 이같이 눈부신 모습은 그간의 세심한 준비와 신자들의 적극적인 호응에 힘입은 바 크다.
무엇보다도 이를 있게 한 신자들의 순교자들에 대한 사랑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신자들은 올 한해를 통해 한국교회의 주춧돌을 놓은 신유박해 순교자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됐다.
그러나 전 교회 차원의 공동 행사 부족으로 한국교회와 우리의 현재를 함께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따라서 84년 103위 시성식 이래 줄곧 추진돼 온 제2 시복시성운동이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범교회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이는 올해 봇물을 이룬 순교 영성을 어떻게 다져 나가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