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활원 앞에서 기념촬영한 모습
▲ 조정화 율리엣다 수녀
몇년만에 휴가를 얻었다. 하지만 휴식의 기쁨도 잠시, 금새 재활원을 위한 물품수집에 분주하다.
97년 척박한 아프리카 대륙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도울 생각으로 무작정 중앙아프리카공화국으로 건너갔다. 100여개의 민속종교가 난무하고 있지만 인구의 30% 가량은 가톨릭 신자다. 경제상황은 형편없다. 게다가 1960년 독립 이후로 지금껏 부정부패와 반정부 시위, 쿠데타 등 내전도 끊이질 않아 늘 위험에 노출돼있다. 내전으로 사람들이 끔찍이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늘 죽음의 공포에 떨어야했지만 이젠 저녁마다 들리는 총소리 정도는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으로 들릴 정도로 익숙해졌다.
재활원이 있는 보삼벨레(Bossembele) 지역은 철도도 없는 밀림지역이다. 전화는 물론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다. 긴급할 땐 헌병대 무전기를 사용하고, 160km 정도 떨어진 수도 방기(Bangui)까지 가서야 팩스라도 한장 보낼 수 있다.
조율리엣다 수녀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에도 사방에서 아이들이 죽어나가고 있지만 그저 속수무책으로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더구나 아이들의 장애가 심각했다. 거의 다 영양부족과 비위생적인 환경 때문이라고.
한국신자들의 도움으로 어린이 장애자 재활복지센터(Centre reducation fontionelle Bossembele)를 개원하고 장애아동 치료에 나섰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처음 설립된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었다. 조수녀를 포함해 수녀 3명, 물리치료사 1명이 직원의 전부. 본당 일을 비롯해 보삼벨레 분원에서 운영하는 유치원, 재봉학교와 함께 재활원을 운영하기에는 버거운 인원이다. 그나마 이곳에선 사회복지사의 개념이 폭넓어 사회복지사에 영양사 자격을 갖춘 조수녀도 함께 환자를 살필 수 있었다. 첫 수술의 경험은 아직도 생생하다. 발목이 완전히 구부러진 아이의 인대를 끊어 다리를 펴는 수술이었다. 칼을 들고 얼마나 떨었는지 모른다. 수술 후에도 다리가 썩어들어갔지만 그저 하느님께 의지하며 마사지를 해주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아이는 지금 건강하게 걸어다니며 조수녀를 만나면 뛰어와 춤을 추곤한다. 그리고 나중에 선생님이 돼서 마마문주(Mama Mounju, 이곳 사람들은 조수녀를 '백인 엄마'라는 뜻의 마마문주라고 부른다)를 도와줄 것이라고 약속했다.
복지센터에서는 20여명의 아이들이 숙식을 하며 거주한다. 또 치료를 위해 몇달씩 상주하는 이들이 수십명. 이들은 100~200km, 멀리는 800km 정도 떨어진 지역에서 며칠씩 걸어 재활원을 찾아온다. 보통 치료기간이 1~2달은 걸리기 때문에 빠이요트라는 임시 침대에서 아이들을 재운다.
의료기기도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기는 마찬가지. 수술은 1년에 몇차례 프랑스 보장송 대학 의료지원팀이 해주고 있고 약품 등은 국경없는 의사회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하지만 긴급한 환자들과 점점 늘어나는 환자들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당장 수술이 가능한 간호사라도 채용해야 하는 형편이다. 장애아들을 위한 중고 엑스레이 기계라도 구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으로 사방에 알아보고는 있지만, 사실 당장 기계가 있어도 제대로 설치할 공간조차 부족하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영양부족이었다. 이곳 사람들은 하루 한끼 먹는 것에 익숙해져 있고, 그나마도 며칠에 한끼를 먹는 가정도 많았다. 조수녀는 우리나라 고구마 같은 마뇩가루에 시금치, 부두 같은 야채와 가끔은 한국서 보내온 멸치 등을 갈아넣고 영양죽을 끓여준다. 우리나라 돈으로 400원이면 어린이 1명에게 하루 세끼 영양죽을 먹일 수 있다고 한다.
어느 정도 회복된 아이들은 전원 학교에 보낸다. 특히 바느질과 수공예, 목공 등을 가르치는 재봉학교는 장애아들의 자활에 큰 도움이 된다. 처음엔 경계의 눈빛으로만 보던 아프리카인들도 정상인도 못하는 공부를 장애아들이 하고, 죽어가던 아이들이 씩씩하게 뛰어다니자 마음을 열었다.
이 순박한 아프리카인들에게 조율리엣다 수녀는 엄마이자 선생님 또 마술사가 됐다.
하지만 조수녀는 이들이 무조건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가르쳤다. 최근엔 보삼벨레에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만드는데 마을주민 전체가 나섰다. 먹고 살기조차 어렵지만 최선을 다해 정성을 보탰고, 또 스스로 벽돌을 구워 교실터는 자리를 잡은 상태. 그러나 학교를 짓기에 이들의 힘은 턱없이 부족하다.
조수녀는 『가난은 언젠간 해결할 수 있겠지만 무지한 것은 교육하지 않으면 안된다』며 『무조건의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학생들과의 결연 등을 통해 1000~2000원이라도 조금씩 보태준다면 그들의 교육공간을 마련하는데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휠체어 대신 유모차를 타고 중고 장난감에 너무도 기뻐하며 함박웃음을 짓는 이곳 아이들. 조수녀는 이들을 위해 물품 하나라도 더 모으려 애쓰고 있다. 비록 인터넷선도 들어오지 않지만 중고 컴퓨터와 TV, 비디오도 구하고 있다. 앞으로 이러한 것들이 교육에 큰 도움이 될 것이기에.
첫 휴가를 다녀온 조수녀를 보고는 『한국의 남편과 아이들은 잘 만나고 왔냐』고 인사할 정도로 문명화되지 못한 이곳 중앙아프리카 사람들. 눈이 오지 않는 성탄절이지만 이곳 아이들도 누구보다 기쁘게 아기예수를 맞을 준비에 분주하다.
늘 『자빠(Nzapa, 주님)에게 감사드려라』고 이야기 해준다는 조율리엣다 수녀의 말처럼 감사와 사랑이 가득 넘치는 아프리카의 성탄절을 그려본다.
※도움 주실 분=국민은행 601-01-0795-145 이영희 수녀, 대구은행 031-08-620107-001 조정화 수녀, 문의=019-822-5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