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자선주일입니다. 자선은 성서 안에서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부자 청년의 비유에서 나오듯 자선은 하늘 나라에 썩지 않는 보화를 쌓는 행위입니다(루가 18, 18~23). 그리고 마태오 복음 25장 31~46절에서 자선은 최후의 심판의 기준입니다. 여기 있는 가장 보잘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자선을 했느냐 아니냐가 심판의 기준입니다. 그러기에 이 자선은 어쩌면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을 발견하고 만날 수 있는 참으로 은혜로운 행위인 것입니다. 성탄을 준비하면서 우리 주위의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소외된 사람 안에 현존하시는 그분의 체취를 느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 봅시다.
자선주일이요 대림 제3주일인 오늘 복음은 지난 주에 이어 계속해서 대림절의 사람 요한을 우리에게 소개합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특별히 눈길이 가는 부분은 세례자 요한의 질문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오시기로 되어 있는 분이 바로 선생님이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하겠습니까?』라고 질문합니다.
이 질문은 「당신은 정말 메시아인가?」하는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입니다. 물론 이 같은 질문은 어느 면에서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왜냐하면 요한은 지난 주 복음에서 보듯 오실 메시아를 세상의 심판관으로 선포하고 세상을 심판하실 분으로 생각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마태 3, 10~12). 그러나 예수님의 활동은 이러한 모습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습니다. 마태오 복음 4장 23절 이하에서 9장까지 보듯 예수님은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이 아니라 병자들을 치유하시고 새로운 복음을 선포하시는 모습은 요한이 상상하는 세상의 심판자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질문은 단순히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보다는 자신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불안이 어쩌면 더 근본적인 문제였을 것입니다. 감옥에 갇혀 있고,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 흔들리고 두려운 그 상황에서 「자신이 그토록 희망하였고, 삶의 의미와 토대가 되었던 분」, 그분에 대한 확실한 보증을 얻고 싶은 마음, 그분이 정말 메시아임을 확인하고 싶은 욕망이 어쩌면 이 질문 안에 포함된 진정한 의미일 것입니다.
『당신이 정말 그리스도라면 그렇다고 분명히 말해주시오』라고 대답해 달라는 그 심정과 같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참으로 혼란스러운 것은 이러한 질문을 한 사람이 다름 아닌 세례자 요한이라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오늘 복음에서처럼 예언자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요, 메시아에 앞서 그분의 길을 닦을 사자요, 『일찍이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세례자 요한 보다 더 큰 인물은 없었다』라고 칭찬을 받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하여 세례자 요한은 자신이 직접 예수님께 세례를 주고 그분을 사람들 앞에서 하느님의 어린양으로 증언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아끼던 제자들마저도 아낌없이 예수님에게 보낸 인물이 세례자 요한이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러한 분이 현재의 상황 때문에 예수님께 의심을 품고 이러한 질문을 하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혼란을 겪으며 흔들리는 모습은 요한에게서 뿐 아니라, 성모 마리아에게서도, 그리고 더 나아가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달라』는 겟세마니 동산의 예수님에게서도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물론 우리는 이러한 모습 안에서 무한한 위로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천하의 요한도 흔들리는데 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은 단순히 우리에게 위로를 주고자 하는 목적만은 분명히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례자 요한이 가졌던 문제( 예수님의 정체에 대한 의심)나 성모 마리아가 가졌던 문제(자신의 선택에 대한 불안)는 신앙인이라면 끊임없이 질문할 수밖에 없는 문제요, 그 앞에서 의심과 회의로 항상 흔들릴 위험을 가지고 있는 문제이지만, 그러나 그 앞에선 분명한 태도를 가져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여기서 우리는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신앙인은 이러한 문제들 앞에서 결단을 유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결단은 나를 대신해 그 누구도 내려줄 수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오로지 자신만이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한이 예수님의 답변을 듣고 그가 「오시기로 된 분이다」「아니다」요한이 결론을 내려야 하듯, 그리고 성모님이 엘리사벳을 방문하여 요한의 잉태와 탄생을 보고 자신의 선택이 거짓이 아님을,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확인해야 하듯 신앙의 문제에 대한 결단은 결국 자신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의심과 회의를 극복한 결단」, 「자신의 관점과 지식을 하느님과 신앙의 눈으로 재해석한 신뢰」오늘 복음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아니겠는가 생각해 봅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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