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군다나 최근 몇 년간의 사교육 시장 확대와 「신자유주의」교육노선인 제7차 교육과정에 따라 교육의 불평등 현상이 갈수록 악화되어 가는 상황은 자못 심각한 실정이다.
부모의 경제적 수준이 자녀교육의 질을 결정하는 가운데 자아발전의 토대가 되어야 할 교육이 오히려 사회계층을 세습, 고착화시키는 메카니즘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은 교육의 사명과 기능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고 있다.
지난해 지방 고등학교 출신으로 서울대에 입학한 김모양(20)은 같은 과의 친구들이 쏟아내는 「입시 성공담」을 듣고 한때 자신의 합격이 「기적」처럼 여겨졌다고 한다.
『말로만 듣던 고액과외, 학원수강을 하지 않은 친구들이 없었어요. 오히려 과외 한 번 받아보지 않았다는 저를 의아한 눈으로 쳐다봤죠. 물론 과외가 대입과 성적향상에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없지만요』「입시 성공」을 위한 학부모들의 과외비 지출 경쟁은 사교육비 부담의 불균형을 초래해 온 대표적인 사례. 국민 개인이 스스로 돈과 시간을 들여 공부하겠다는 것을 국가가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과외를 할 수 없는 형편에 놓여있는 저소득층이나 고액과외를 할 경제적 능력이 없는 계층의 자녀들이 상대적으로 교육기회에서 소외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우려는 여전히 지우기 힘들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지난해 5월 학부모 7000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지역별로 과외를 하고 있다는 응답에 차이가 났다. 서울이 최고(91.5%)로 전국 평균보다 10% 이상 높았다. 실제로 서울의 각급 학교들은 「과외를 배려해」오후 3~4시면 학생들을 귀가시키지만 중소도시나 군 지역의 학교는 오후 10시까지 학생들을 붙들어 두고만 있는 실정이다.
부모의 직업과 소득수준이 자녀의 대학 진학 및 이른바 명문대 합격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가 해가 갈수록 급격히 커지고 있다는 분석은 최근 교육 불평등 현상이 심화되고 있음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다.
지난해 경향신문이 서울대 등의 1988~2000년 「신입생 실태조사」를 분석한 결과 88년 서울대 신입생 중 보호자의 직업이 농어민인 학생은 전체의 12.8%였으나 2000년에는 3.5%로 12년 사이에 4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이 기간 중 농어촌 가구수 감소(24.6%)에 비하면 3배 규모이다.
도시 내에서 부모의 경제적 여건에 따른 차이도 상당해 부모가 사무직(과장급, 사무관)인 학생의 비율은 기간 내 변동이 거의 없었던 반면 부모가 전문직인 경우는 89년 7.8%에서 2000년 23.2%로, 관리직(경영주, 부장급, 서기관)도 9.5%에서 26.6%로 3배 가량 증가했다. 서울 내에서도 지역간 편차가 커져 지난해의 경우 서울 출신의 50.3%가 서울의 강남 8학군 3개구 출신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곧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자녀들의 학벌이 결정된다는 사실로 개인의 노력보다는 부모의 재력에 의해 성적이 판가름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선 교사들은 『가난하면서도 공부를 잘하는 학생을 찾기가 최근 한층 어려워졌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교육 불평등 현상의 원인에 대해 교육전문가들은 ▲89년부터 허용된 과외교습 및 학원수강 ▲수능시험 도입 ▲내신성적 반영비율의 실질적 축소 등을 꼽고 있다.
▲ 부모의 경제적 수준이 자녀교육의 질을 결정하는 가운데 자아발전의 토대가 되어야 할 교육이 오히려 사회계층을 세습, 고착화시키는 메카니즘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은 교육의 사명과 기능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교육 불평등 현상이 더욱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4월 과외금지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림으로써 과외는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또한 고등학교에까지 도입될 7차 교육과정에 따라 수익자 부담원칙으로 진행될 특기적성교육과 특별활동은 저소득층 학부모에게는 새로운 부담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 7차 교육과정의 주요 뼈대인 수준별 수업과 학생들의 교과목 선택권에 대해서도 학교를 줄세우고 교육적 차별을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고교평준화 정책의 보완책으로 나온 자립형 사립고 정책은 『교육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가중시킬 것이며 부유층 자녀만을 위한 입시명문고를 만들어 교육 불평등을 제도화시키려는 신호탄』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주요 교육정책을 놓고 교육인적자원부와 전교조, 교총 등 교원단체들은 계속 마찰을 빚고 있는 상황이다. 갈등의 중심에 있는 정책 중 7차 교육과정과 자립형 사립고 문제 등은 교육 불평등 문제와 관련 있는 것으로 이는 단순히 정책 차원을 넘어 「교육이념」의 문제로까지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교육개혁은 이념적으로 「신자유주의」교육개혁 노선을 따른다고 천명하고 있는데 전교조의 경우 교육을 시장기능에 맡기는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을 기본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수호 전교조 위원장은 얼마전 각 언론사에 보낸 문건을 통해 『경쟁만이 미래사회의 유일한 덕목이라는 주장을 우리는 교육적 입장에서 용납할 수가 없다』며 『우리들이 지향하는 교육은 하나뿐인 지구촌의 미래인들에게 아름다운 삶을 함께 누리는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경쟁이 아닌 평등」을 통해 그것을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평등주의만으로 이 사회를 이끌어갈 엘리트를 어떻게 육성할 것이냐』『「형평성」과 「위화감」만 강조하면 교육의 질적 수준을 높일 수 없다』고 강조하기도 한다. 평등주의 교육관만으로는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근대 이후 성립된 개념이기는 해도, 현대사회에서 모든 이가 교육받을 권리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동조하지 않는 이는 아무도 없다.
우리나라 헌법 제31조는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천명해 놓고 있다. 가톨릭 교회 또한 『모든 인간은 양도할 수 없는 교육의 권리를 가지고 있다』(자유의 자각, 92항)고 밝히며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이와 함께 「교육기본법 제4조」(교육의 기회균등)는 『모든 국민은 성별, 종교, 신념, 사회적 신분, 경제적 지위, 또는 신체적 조건 등을 이유로 교육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며 교육 평등권의 개념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하지만 교육개혁 이후 일련의 현상들로 미루어 볼 때 현재 교육 평등권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교육 불평등이 가속화되어 가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보인다. 더군다나 아직 한국 사회에서 개인의 교육수준은 사회적 성취를 가늠할 수 있는 잣대로 작용한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교육의 불평등은 사회적 불평등을 확산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그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일제 강점기와 6·25 동란, 개발 시대를 거치는 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신분과 계급이 허물어지고 개인의 능력과 노력 여하에 따라 신분상승과 계층간 이동이 가능했다. 하지만 열린 사회와 발전의 바탕이었던 계층 이동의 역동성이 사라지는 조짐이 최근 대학입시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노동연구원 황덕순 연구위원은 「도시취업자의 세대간 계층 이동과 세대내 유동성」이란 연구를 통해 『세대간 계층이동에서 교육이 중요한 매개변수로 작용한다는 점이 드러났다』며 『계층간 유동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교육기회가 계층간에 달라지지 않도록 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개발돼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교육이 사회계층을 고착화시키는 메카니즘이라는 사실은 교육사회학자들 사이에서 오랫 동안 논의되어 온 이론이기는 하다. 일부 교육사회학자들은 『교육제도란 형식적으로 평등한 사회성원들을 실제로는 불평등한 사회에 불평등하게 배분하는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교육당국자가 해야 할 일은 교육제도의 변화와 보완을 통해 이러한 불평등을 완화하고 최소화시키려는 노력일 것이다. 더군다나 『정치논리에 의한 교육개혁으로 인해 교육의 논리가 훼손되거나 제약받아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지적 앞에 당당할 수 없다면 더욱 그러하다.
『인간은 가능한 한 습득한 능력과 태도에 걸맞는 책임을 사회 생활에서 전개하기 위하여, 사회 발전의 역량에 따라 최상의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다』(지상의 평화, 13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