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다리는 마음은 천진한 아이들과도 같이 마냥 간절해야 할 것이다. 「만년 소년」이라 불리며 순수하고 서정적인 삶과 글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온 피천득 선생을 성탄을 앞두고 만나보았다. 성탄을 기다리는 그의 마음은 10여년 째 크리스마스 트리로 삼았다며 가리킨 생나무의 색전구 불빛으로 비춰볼 수 있는 듯 했다.
『무릎을 꿇고 고요히 앉아있는 것도 기도입니다. 말로 표현을 하든 아니하든 간절한 소망이 있으면 그것이 기도입니다. … 「예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하고 우리는 기도의 끝을 맺습니다. 어찌 「부자가 되게 해주십시오」하는 기도를 드릴 수 있겠습니까』(수필 「기도」 중)
「90세 소년」. 주옥같은 글과 깨끗한 삶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 속에 살아온 피천득(91·프란치스코) 선생과의 만남은 글과 삶의 일치가 바로 아름다운 인연을 일구어낸 힘임을 알게 해 주었다.
「수필문학의 살아있는 교과서」「영롱한 지성의 빛남과 아울러 동심과 같은 순진한 작품세계」등의 평가에 조금의 손색도 없는 그의 글은 과작(寡作)에도 불구하고 후배문인들에게 20세기 명문장으로 칭송 받고 있다.
많은 문학소녀들은 국어교과서에 실린 그의 수필 「인연」「플루트 플레이어」「수필」을 암송하다시피 했고 유일한 수필집 「인연」은 한국 출판계에서 손꼽히는 스테디셀러다.
『다작에 욕심부린 적은 없어요. 뭐든지 정말로 잘된 것이어야 보는 사람이 기쁘기도 하고 마음의 평화도 얻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잘 된 것이 많을 수야 없잖아요』 당연하다시피 한 짧은 말 한마디에는 욕심 없이 소박한 삶을 살아온 그의 인생철학이 녹아있는 듯 하다. 그제야 왠지 휑하게 느껴진 선생의 집에 소파, 식탁, 옷장 등은 일절 없고 검소한 살림살이라고는 서재에 두 개의 책상과 손때묻은 책 몇 권이 전부인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책상 중 하나는 딸 서영이가 초등학교 때 쓰던 것으로 아마 50년도 더 됐을 걸』이라고 말하며 그는 부인 임진호 여사(84)와 18년째 살고있다는 서울 반포의 방 두 개 짜리 아파트도 「과분하다」고 말한다.
피천득 선생이 영세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10여년 전 예수회의 고(故) 김태관 신부와 인연이 닿게 되어 가톨릭 신자가 되길 결심했다고 한다.
『글쓰는 이해인 수녀가 22살 때부터 찾아와 세례를 받게 하려고 그렇게 애쓴 걸 김신부님이 해내셨지』그는 90년 김태관 신부가 선종한 후 그에게 바치는 추모의 글을 통해 영세 당시의 생각과 느낌, 신앙고백을 간략히 밝힌 바 있다.
『신부님의 너그러우심은 제게 베푸신 사랑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당신은 제가 신앙이 약하다는 걸 알면서도 일단 들어와 믿음을 깨우치라는 뜻으로 세례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그때 들어선 그 문턱에서 서성거리고 있습니다. 죄송한 마음으로 저의 고해를 올립니다』 평소의 신앙생활을 물어보니 『제가 원래 좀 성실치가 못해요』라고 말하며 웃으신다. 성탄, 부활에는 꼭 명동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가끔씩 명동성당을 찾는다고.
『주위 사람들이 너무 잘해주셔서 파문을 당하지 않는 것 같애』하며 또 한 번 웃음짓는다.
『아직 제가 믿는 바는 하늘에 군림하시는 전지전능하신 신이기보다는 불쌍한 우리들 속에서 고뇌를 같이하시고 우리의 상처에 향유를 발라주시는 인간적인 예수님입니다. 또 제가 믿는 성모마리아는 여성의 가장 아름다운 순결의 상징이에요. 그 순결미는 어느 종교적 진리보다도 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으뜸가는 기도문을 「주님의 기도」라고 여긴다. 특히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는 구절은 인간미를 느낄 수 있어 무엇보다 좋다고.
이 구절에 빗대 『빵에 잼을 많이 발라주세요』하고 기도하는 프랑스 아이가 있더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다시 한 번 만년 소년 같은 순수함을 엿볼 수 있다.
좋아하는 성서구절이라며 요즘은 보기 힘든 200자 원고지 뒷면에 기록해 둔 것을 내놓는다. 공관 복음의 산상설교, 열처녀의 비유,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와 시편, 잠언 등 문학성이 풍부하고 아름다운 구절들이다.
덧붙이며 하는 말씀이 성서 내용 전체를 믿지 못하고 좋아하고 아름다운 부분만을 믿으려 들기만 해 늘 죄송한 마음이란다.
서재의 벽에는 주보 성인인 성 프란치스코의 상본 여러 장이 붙여져 있고 책상과 책장 위엔 성상과 함께 「평화의 기도」, 고린토 전서 13장의 「사랑」을 적은 액자가 놓여 있다.
평생을 온 몸과 마음으로 가난하게 살다간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을 닮고 싶으셨냐고 물으니 『그 사람 새도 좋아하고 순진한 데도 있고…』라고 대답하며 또 한 차례 천진하게 웃는다.
아흔 생을 넘긴 몸이 젊은이 같지는 않아도 인근 공원을 산책하고 하루에 한 번 정도 외출하기에는 무리 없이 건강한 편. 하루 일과 중에는 음악을 듣는 시간이 제일 많다.
『아직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청력을 허락해주신 하느님께 감사할 뿐』이라고 거듭 말한다.
다음으로는 책 읽는 시간이다. 시력이 약해져서 독서는 무리지만 오디오북을 「읽으며」예전처럼 문학을 즐길 수는 있다.
시인들이 육성으로 녹음해 준 시들, 배우들이 낭송하는 영문시들, 선생이 번역한 시를 녹음한 것 등을 듣고 비디오로 만들어진 세익스피어 극을 보며 소일하기도 한다.
성탄절을 맞아 이번달 초에는 생나무로 트리를 만들었고 캐럴도 날마다 듣는다.
이제 왕래가 뜸할 법도 한데 집을 찾아오는 제자, 후배 문인들의 발걸음 또한 끊이질 않는다. 손님 중에는 의외로 몇 십년 이상의 나이 차를 훌쩍 넘기는 젊은이들도 많다.
『교훈적인 얘기는 하지 않아. 그저 허물없이 웃고 떠들다 돌아가는 거지』 그의 일과는 수필 「만년」에서 묘사한 것과 흡사하게 평화롭고 충만하다.
『젊어서 읽었던 「좁은 문」 같은 소설을 다시 읽어도 보고 오래된 전축으로 쇼팽을 듣기도 한다. 그리고 그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마음의 평온을 송구스럽게 여기지도 않는다. …신기한 것, 아름다운 것들을 볼 때 살아있다는 사실을 다행으로 생각해본다. 그리고 훗날 내 글을 읽는 사람이 있어 「사랑을 하고 갔구나」하고 한숨지어 주길 바란다. 나는 참 염치없는 사람이다』(수필 「만년」중)
빠질 수 없는 질문, 장수비결을 물었다.
『유전적이기도 한 것 같고 술, 담배 안하고 소식하는 정도요. 그리고 또 하나, 욕심을 버리면 몸도 마음도 평화롭고 건강해져요. 무소유가 아니라 필요한 것이 이뿐이라 그런 거예요. 사람들이 다 나 같으면 어떡하겠나. 나는 소박하게 사는 게 좋았고 남에게 해만 끼치지 않으면 하는 걸 바랐고 그러니 그냥 저냥 싱겁게 살아온 것이지요』
그러나 쉽지 않은 삶, 욕심 없이 사는 방법과 그에게서 얻을 수 있는 기쁨을 보다 자세히 듣고 싶었다.
『욕심 없이 마음을 편하게 가져야 일상의 작은 것들에서 아름다움을 볼 수 있습니다. 욕심 때문에 마음이 불안하면 자연이 주는 기쁨을 알 수가 없습니다. 나폴레옹이 세운 파리의 개선문은 그의 것이 아니라 그 곁을 거니는 여인들의 것입니다. 모든 것은 소유하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그것을 기쁘게 보고 늘 기억하는 사람의 것이 되죠. 소유란 기억으로 충분하고 그걸 많이 가진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금아(琴兒) 피천득 선생.
10살 때 돌아가신 어머니가 거문고를 잘 탔다는 이야기를 듣고 춘원 이광수 선생이 영원히 어머니의 아이처럼 맑게 살라는 뜻으로 지어준 호 「금아」는 그의 일생을 결정지어 오랜 시간 많은 이들에게 그 향기를 전해주는 듯 했다.
『이 순간 내가/ 별들을 쳐다본다는 것은/ 그 얼마나 화려한 시간인가/ 오래지 않아/내 귀가 흙이 된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제9 교향곡을 듣는다는 것은/ 그 얼마나 찬란한 시간인가/ 그들이 나를 잊고/내 기억 속에 그들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친구들과 웃고 이야기하는 것은/ 그 얼마나 즐거운 시간인가』(시 「이 순간」 중에서).
▣ 피천득 선생의 약력과 작품세계
1910년 서울에서 태어나 중국 상하이 공보국 중학을 거쳐 1937년 호강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일제강점기 때 경성중앙산업학원 교사로 근무했고 8?5광복 직후인 1945년 경성제국대학 예과 교수를 거쳐 1946∼1974년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영문과 교수로 재직했다.
1946년 서울대에서 영시(英詩) 강의 시작, 1954년 미국 국무성 초청으로 하버드대학교에서 1년간 영문학을 연구했으며 1975년 서울대 명예교수직을 받았다.
피천득 선생은 대체로 투명한 서정으로 일관, 사상·관념을 배제한 순수한 정서에 의해 시정(詩情)이 넘치는 생활을 노래했다.
첫 시집 「서정시집」(1947)에는 그리움을 꿈으로 승화시킨 「꿈」이나 「편지」, 소박하면서도 전통적인 삶의 서정을 노래한 「사랑」등의 동심과 자연을 노래한 시가 상당수 실려 있다.
그의 문학세계는 시보다 오히려 수필을 통해 진수가 드러난다. 그는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의미와 아름다움, 기쁨을 놓치지 않고 잘 포착하여 특유의 우아하고 서정적인 문체로 그려낸 것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수필」은 수필 형식으로 쓴 수필론으로, 은유법을 적절히 구사해서 수필의 특성을 잘 나타낸 그의 대표적 작품이며 그 외에도 지휘자보다 무명의 연주자를 택하겠다는 「플루우트 플레이어」, 여성의 미는 생생한 생명력에서 온다는 「여성의 미」 등 많은 수필 작품이 있다.
수필 이외의 작품으로는 소설 「은전 한 닢」(1932)을 비롯해 시집 「금아시문선」(1959)과 「산호와 진주」(1969), 번역서 「소네트의 시집」(1976), 평론 「노산시조집을 읽고」(1932)와 「춘원선생」(1961) 등이 있다.
상훈으로는 1995년 인촌상, 99년 은관문화훈장, 99년 자랑스런 서울대인상을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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