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가 시작되고 즉시 유사 이래 형성된 기존의 생명 문화와는 성격을 달리하는 생명 문화 시대가 펼쳐지려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1996년 이래 체(體)세포를 활용한 생명 복제가 양과 소, 그리고 돼지와 같은 일부 동물들에게서 실현되면서 인간 복제 시도가 생명공학계 일각에서 집요하게 모색되고 있는 중이어서, 모든 생명들의 운명과 진로를 바꿀 수도 있을 사건들이 미구에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느님의 창조에 의한 생명신앙이 심각한 도전에 직면한 세기초 상황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주님」으로 믿고 뒤따르는 교회 공동체와 신앙인들이 견지해야 할 생명신앙의 기본입장을 단편적으로라도 정립할 필요가 있다.
우리 신앙인들은 세계 안에서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가 필연이나 우연의 소산이 아니고 살아계신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믿는다.
성서 안에서 생명은 유기체의 신체적이고 기관적인 활력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번성하도록 하느님의 특별한 축복을 받는다. 실제로 인간은 생명을 보존하기 위하여 온갖 희생을 감수한다. 바로 이 때문에 생명의 살상 행위가 엄격히 금지된다. 그리고 창조설화에 따르면, 하느님은 먼저 창조된 흙으로부터 인간을 조성하신다. 이러한 인간-흙의 연결관계는 모든 생명체의 본질적 유대 관계를 시사한다.
우리는 하느님의 선물로서 베풀어진 생명이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에게는 그분의 뜻에 따라 관리해야 할 과업으로 부과되어 있다고 믿는다.
인간은 하느님께 속하는 온 생명계를 그분의 뜻에 따라 관리함으로써 하느님의 영원한 삶에 참여하게 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창조 이래 진행되는 역사의 과정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생명을 선사하고 충만에로 이끄시는 하느님에 의해 주도된다고 믿기에,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을 지니며 살고 있다.
우리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에 따라 현대 생명과학과 대화 및 협력을 도모하는 가운데 생명 수호의 자세를 정립해야 할 것이다. 인간 생명은 의식과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조직과 장기로 이루어지는 식물적 생명과 감각적인 동물적 생명, 그리고 정신적 생명으로 구성된 단일 복합적 생명이다.
인간의 육신적 생명은, 생명과학의 발달로 더욱 분명히 확인되듯이, 모든 생명체들과 동일한 생화학 성분의 물질적 육신 안에서만 가능하며, 정신적 생명은 식물적이고 감각적인 생명 조건하에서만 영위가 가능하다. 인간은 이러한 육신적 생명 구조에 상응해서 자연 세계와 다른 생명과의 친교 관계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신앙인 역시 과학과 기술을 활용하여 자연 질서를 탐구하고, 질서를 보전하는 한계 내에서 이를 활용하라는 소명을 받는 것이다.
『그들(그리스도인)은 동료 인간들과 함께 현대문명과 문화, 과학과 기술, 기타 인간의 사상과 활동의 여러 분야에서, 좋고 고상하고 아름다운 것이면 무엇이든 이를 계발하고 실현하기 위해서 노력합니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 「1990년 세계평화의 날 담화문」 13항)』.
우리는 모든 생명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도래한 하느님 나라 안에서 공존상생의 삶을 영위하도록 불리워졌다고 믿는다.
또한 반생명적 분위기가 광범하게 만연한 현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인류가 생명을 하느님의 창조물로 이해하고 「죽음의 문화의 소유와 지배의 행태」를 지양하고 「사랑의 문화의 나눔과 섬김의 친교관계」를 이룩하고자 공동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 스스로 진정한 나눔과 섬김의 자세로 모든 생명들과 형제자매적 친교 관계를 맺고자 노력할 때에, 하느님 나라 건설에 기여하면서 동시에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으로부터 약속된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게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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