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덕 주교는 1937년 9월 3일 대구시 서구 비산동에서 아버지 서타암(발라바)옹과 어머니 조일순(아나다시아) 여사 사이에 3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신심깊은 부모 밑에서 신앙의 열매를 맺어온 서주교는 1962년 사제품을 받고 대구 삼덕본당 보좌를 역임한 후 63년부터 24년간 군종신부로 군 사목에 헌신했다. 85년에는 한국 천주교회 사상 처음으로 육군 군종감(제19대)을 역임하고 87년 5월 전역 후 남산본당 주임, 대구대교구 사무처장, 가톨릭의료원장 직무대리 등을 역임하고 94년 4월 8일 대구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됐다. 2001년 2월 지병으로 인해 은퇴하고 투병 생활을 해왔던 서주교는 12월 22일 하느님 품으로 가셨다.
"주님과 교회의 뜻을 따라 주님의 종이요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새로 난 만큼 주님께서 지워 준 나의 십자가를 묵묵히 지고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를 것입니다"
서정덕 주교가 지난 1994년 대구대교구 보좌주교에 취임하면서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피력한 취임소감이다. 서주교는 자신의 말대로 뜻하지 않은 고통의 십자가를 묵묵히 지고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살아왔다.
'나는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왔는가'란 좌우명으로 항상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신자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온 서주교는 정이 깊고 마음이 따뜻한 살아있는 성인이었다.
온화하고 인자한 성품으로 선후배 사제들에게 존경을 받았던 서주교는 좀처럼 화를 내지 않았으며, 언제나 미소를 머금고 먼저 인사하는 '다정다감한 목자'였다.
서주교는 이미 신학생 시절부터 신심이 각별해 전례부장으로 활동했으며, 대구 삼덕본당 보좌시절 신자들을 위해 늦게까지 일하면서도, 기도는 빼먹을 수 없다며 성무일도에 열중하다 깜박 졸아 난로에 이마를 데인 적도 있을 정도로 기도생활에 충실했다.
좬선교의 불모지인 군을 위해 헌신하라좭는 고 서정길 대주교의 명을 받들어 24년간 군사목에 헌신할 정도로 순명 정신이 투철했던 서주교는 끊임없이 기도하면서 진지한 자세로 성무에 임해왔다. 군종시절 초대 사무처장, 사목국장 등을 역임하면서 추진력과 조직력을 갖춘 행정통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서주교는 하느님과 교회를 위하는 일이라면 철두철미하고 성실한 모습을 잃지 않았다.
"벗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고귀한 사랑은 없다좭(요한 15, 13)는 성서구절을 가장 좋아했다는 서주교에 대해 입학동기이자 서품동기인 김충호 신부(광주 쌍암동본당 주임)는 "동창 신부가 찾아갈 때면 사제관에 있는 것을 아낌없이 내주었던 마음이 따뜻하고 정이 넘친 친구였다"고 옛 추억을 떠올렸다.
벗을 위해 목숨을 바친 그리스도의 헌신적인 사랑을 항상 마음에 지니고 살았던 서주교는 양떼를 위해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간 착한 목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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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5년 육군 군종감 취임후 축하연을 가진 서주교.
서정덕 주교 약력
사진말=85년 육군 군종감에 취임후 축하연을 가진 서주교.
1937년 9월 3일 대구 출생
1956년 2월 21일 서울 성신고등학교(소신학교) 졸업
1961년 3월 18일 부제수품
1961년 12월 31일 서울 가톨릭대학 신학부 졸업
1962년 1월 6일 사제수품
1962년 1월 13일 삼덕본당 보좌
1963년 7월 1일 군종신부(육군)
1985년 5월 7일 제19대 육군 군종감 취임
1987년 6월 12일 남산본당 주임
1991년 3월 15일 대구대교구 사무처장
1991년 9월 18일 학교법인 선목학원 이사
1991년 12월 3일 가톨릭의료원장 직무대리
1992년 3월 17일 상동본당 임시 주임
1994년 2월 3일 대구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
1994년 4월 8일 주교수품
1994년 4월 12일 대구대교구 총대리
2001년 2월 23일 은퇴
2001년 12월 22일 선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