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교회와 함께 대희년을 선포하고 새 천년을 맞이했던 한국교회는 그러나 뿌리깊은 문제들을 여전히 안고 있다.
신자수 400만을 넘어선 한국 천주교회는 이제 세계 교회 안에서도 당당히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외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세 명 중 한 명꼴로 증가한 냉담자수, 성사 생활의 열의가 식어가고 주일미사 참례자는 점점 줄어가고 있다. 그 결과 많은 신자들이 무미건조한 신앙생활을 가까스로 영위하다가 결국 교회를 떠나거나 뉴에이지 등과 같은 신사조에 휘말리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고속 성장을 구가하던 한국교회는 이제 외적 성장에 못지 않은 내실을 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교회 이곳저곳에서 나오고 있다.
그러면 과연 이러한 현상을 한국교회는 어떻게 극복해나갈 것인가.
가톨릭신문사는 새 천년을 맞은 한국교회와 신자 구성원들이 이제는 신앙과 가정, 사회 생활에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들부터 솔선수범해서 지켜감으로써 새로운 복음화, 참된 복음화의 길을 가자는 취지에서 '기본부터 다시 하자'를 주제로 신년 특집 좌담을 마련했다.
▲ 곽승룡 신부
▲ 노길명 교수
▲ 차동엽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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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회 : 노길명 교수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토 론 : 곽승룡 신부 (대전교구 사목기획국장)
차동엽 신부 (인천교구 사목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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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기본은
노길명 교수(이하 노) : 또 새해를 맞았습니다. 새해는 새로운 삶으로의 전환점이 되어야 하는데 지금 세계는 지난 세기와 똑같이 테러와 전쟁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국내적으로도 정치, 경제, 사회문제들은 더 악화되고 있습니다.
교회도 대희년을 선포하고 여러 해 동안 영적 쇄신과 교회 활성화를 위해 노력했지만 새 천년에 접어들면서 신자 증가율은 더욱 감소하고 주일미사 참례자는 줄어들며 쉬는 신자들은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회나 교회의 구성원들이 자기 정체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의 책임과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평협의 '똑바로 운동'은 정체성 회복운동이자 도덕성 회복운동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는 신앙인으로서 지켜야 할 '기본'은 무엇이며 그것을 제대로 지키는 방법은 무엇인지 점검해보고자 합니다.
차동엽 신부(이하 차) : 먼저 오늘의 주제에 대해 점검해보았으면 합니다. 원래 제시된 주제는 '기본을 지키자'였습니다. 이 주제는 두 가지 한계를 지닙니다. 첫째, '지키자'라는 표현은 주체와 객체를 분리시켜 양자 사이의 간격을 형성하기 때문에 기본을 '닦자' '실행하자'는 의미를 내포했으면 합니다. 즉 기본의 체화(體化), 몸에 배게 한다는 의미를 부여하자는 것입니다. 둘째, 이 표현은 기본을 의무의 차원으로 부각시킬 우려가 있습니다. 기본이 체화되면 그 기본은 더 이상 '의무'가 아니라 행복한 삶의 원리요 기쁨의 원천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취지에서 주제를 '기본부터 다시'로 바꿀 것을 제안했던 것입니다.
노 :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신앙인들의 기본은 무엇보다 종교체험, 신체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다른 어느때보다도 영적 체험을 갈구합니다. 그런데 많은 신자들이 습관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러한 체험을 다른 곳에서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앙생활을 통한 하느님 체험들이 일상 생활로 연결될 때 비로소 생기있는 신앙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톨릭신자들은 미사와 성사 생활에 좀더 충실해야 하고 이것이 바로 '기본'일 것입니다.
차 : 저는 신앙인의 기본을 세 가지로 요약하고 싶습니다. 첫째, 인격 곧 성품의 기본입니다. 신앙인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양심과 인간성을 갖추어야 합니다. 둘째, 기도 및 성사 생활의 기본입니다. 성호를 위시한 일체의 상징행위와 기도, 성사 등은 세속의 한 복판에서 인간의 실존을 성화시켜 주는 기본 요소입니다. 이들은 영적 생명력에 직결되는 요소이며 이것이 부실하면 영적 생명력, 즉 영성은 같이 부실할 수밖에 없지요. 셋째로 교회 생활의 기본입니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복음증거, 전례, 친교, 봉사 등 네가지 파견 소명에로 불리웠습니다. 이는 복음, (하느님)은총 체험 등을 통한 내적 충만의 발로이기 때문에 의무 차원을 넘어서는 본래적 요청입니다.
곽승룡 신부(이하 곽) : '기본'이라 할 때 이는 어떤 새로운 것에 대한 논의가 아닐 것입니다. 본래 존재했던 '기본'을, 다시 근본적으로 새롭게 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교회법에서 신자로서 지켜야 할 사항은 주일과 대축일 미사, 영성체, 고해성사, 금육과 단식, 교무금, 혼인법 등입니다. 이러한 기본을 지키는 사람은 대개 3분의 1 정도라고 봅니다. 저는 신앙인으로서 지켜야 할 기본은 사람마다 다양하다고 봅니다. 교회법적인 기준을 잘 지켜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너무 많은 봉사 내지는 교회 일을 하는 사람은 자제를 해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우리 모든 신자들이 신앙 생활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가정과 말씀과 기도라고 봅니다. 가정에서 말씀을 중심으로 기도 생활하는 것부터 바로 되어야 합니다. 가정을 중심으로 한 사목이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성적 현주소는
노 : 기본이 지켜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신자로서의 정체성이 확고하지 않은데 있습니다. 정체성이 약화되는 것은 하느님 체험이 부족하고 신앙생활에서 얻는 기쁨이 적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관련해 한국 신자들의 영성적 현주소를 어떻게 보십니까?
곽 : 한국 신자들의 영성적 현주소는 한 마디로 '마르타 형태의 영성'입니다. 즉 너무 액티브한 활동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이 문제라는 것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마리아 형태의 영성'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심성적으로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활동은 일단 가시적이기 때문에 외적인 형태의 구조입니다. 성당 건축, 봉사 활동, 신심운동 등 모든 면이 가시적인 형태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시노드는 내적 성찰이라는 점에서 시의적절하다고 봅니다. 신자의 정체성, 하느님 체험은 절대적으로 외적이 아니라 복음과 영성의 내적인 체험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차 : 같은 의견이지만 조금 다른 차원에서 접근하겠습니다. '의무'의 차원이 지나치게 강조되다 보니까 기도와 성사 생활이 하느님 체험과 기쁨의 원천이 되지 못하고 계속 부담스러운 과제로 작용합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자연적이고 자발적인 영성이 아니라 인위적이고 강요된 영성의 성향을 띠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교회와 사목자의 책임이 큽니다. 문제는 교회 지도층의 영성이 이와 다르지 않다는 점입니다. 근본적인 점검이 필요합니다. 예컨대 복음 나누기도 의무화되는 경향이 많아 맛없는 음식을 강제로 먹으라고 강요하는 것과 같습니다. 복음을 맛들이기 위해서는 그것을 맛있게 전달해주어야 합니다.
전례 생활의 기본은
노 : 영성의 바탕이 되는 하느님 체험은 기도와 미사, 성사 등과 같은 전례를 통해 얻게 되고 강화됩니다. 그런데 신자들의 전례에 대한 이해부족, 올바른 참여방법에 대한 인식이 부족합니다. 전례 생활에서의 기본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차 : 전례가 하느님이 베푸신 구원행위와 은총에 대한 감사제요 축제임을 신자들이 인식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또 단순히 과거 은총의 회상이 아니라 그 은총 사건의 끊임없는 현재화에 전례의 본질이 있음을 깨닫게 해주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상징행위'의 중요성에 대해 일깨워주어야 합니다. 상징행위는 신비에 대한 가장 탁월한 언어수단이요, 우리의 무의식과 교감하는 가장 효과적인 통로입니다. 즉 우리의 무의식을 성화시키는 길이 바로 성호를 긋고 장궤를 하고 목례를 하는 등의 상징 행위입니다. 무의식이 성화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신념, 곧 믿음과 기쁨의 생활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곽 : 전례정신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그 정신은 우선적으로 말씀을 알아듣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최소한 주일 전례 때의 독서와 복음에 대한 준비가 필수 불가결합니다.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면 사제나 신자들의 동작은 형식주의가 될 수 있습니다. 사목자와 신자 모두 전례에 참여하는 기본부터 변화되어야 합니다.
전례는 파스카 해방과 구원, 기쁨의 천상 잔치가 이 땅에서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 정적이고 고요합니다. 전례 안에서 고요함과 찬양이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가톨릭 전례는 논리적이고 정적이기 때문에 형식적으로 흐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가와 음악, 입장과 퇴장은 약간 동적일 필요가 있습니다. 모두가 어울려 축제를 벌여야 합니다. 인도 미사에 참석해본 적이 있는데 물론 형식은 로만 전례이지만 음악과 복장은 그들의 것이었고 특별한 축제 때는 민속춤을 곁들여 매우 흥이 나는 미사를 거행합니다.
신앙 따로 생활 따로
노 : 많은 신자들이 하느님 체험과 생활 체험을 연결시키지 못합니다. 성당에서는 신자이지만 일상생활에서는 비신자들과 구별이 되지 않습니다. 이 두 체험을 어떻게 연결시킬 수 있을지요.
차 : 한마디로 모두가 눈을 떠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날 허상을 붙들고 실상인 줄 알고 살아가는데 익숙합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볼 줄 아는 눈을 갖도록 해주는 일입니다. 결국 스스로가 떠야 하지만 눈을 뜨도록 영성적으로 도와줄 수도 있겠지요. 일상의 사건과 체험 가운데 임재하시는 하느님의 숨결과 섭리를 포착할 줄 아는 영적인 눈이 우리에게는 절실히 필요합니다. 또 그럴 수 있도록 돕는 사목이 필요한데 칼 라너는 이를 'mystagogy'라고 표현했습니다.
기본을 지키지않는 이유
노길명 교수(이하 노) : 신자들이 기본을 지키지 않는 이유로는 신자 재교육의 약화를 비롯해 단식재나 금육재에 대한 규정 완화 등 교회의 구조나 제도적인 측면과 관련되는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곽승룡 신부(이하 곽) : 가장 먼저 지적하고 싶은 점은 신앙의 공교육과 체계적인 사목적 네트워크의 통합이라는 점입니다. 재교육이나 규정 등의 완화라는 외적인 점에 대한 강조는 한마디로 어른들이 어린아이들에게 강요하는 경우와 유사합니다. 예비신자들이 세례 후 즉시 사도직 단체와 구역겧 등에서 봉사와 신심, 복음 나누기 등을 해야 하는데 이는 매우 어렵습니다. 따라서 늘 제기되는 문제이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신앙 공교육이 필요합니다. 단체와 활동 중심에서 말씀과 기도가 중심이 되는 공교육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기본적으로는 교구 내지 지구 단위 또는 본당 단위로 말씀, 신앙교리, 영성(기도)을 배우고 깨달을 수 있는 학교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신앙 공교육에 스스로의 여건에 맞춰 참여하는 신앙인들은 스스로 나눔의 생활을 할 것입니다.
차동엽 신부(이하 차) : 교회의 제도적인 규정과 권고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따라서 교도권은 신자들의 신앙적인 추이를 면밀하게 파악해서 장기적인 안목으로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고 사실 그렇게 해왔습니다. 문제는 요즈음 교도권의 권고, 일선 사목자, 그리고 신자들 사이의 연대감이 점점 느슨해져가고 있지 않나 하는 점입니다. 교구에서 공문이 와도 사목자들이 읽지 않고 신자들에게 전달이 잘 안됩니다. 이 문제는 관계자들이 깊이 고민해야 할 점이므로 상호간의 신뢰와 존중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기복적 현상 두드러져
노 : 지난 80년대 대규모 행사들을 치르면서 한국 교회는 순교 전통에 대한 자긍심과 함께 순교 정신의 계승과 구현에 관심을 가졌으며 성체의 정신인 사랑과 나눔의 정신을 사회적으로 구현하는데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열린 신앙', '이타적 신앙'이 90년대 접어들면서 감퇴하고 대신 기복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신앙이 강하게 나타나고 신비중심주의에 경도되는 현상이 두드러집니다. 이러한 신앙적 흐름의 변화는 교회 활동, 특히 한국교회의 자랑인 사회사목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차 : 기복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신앙의 현상에 대해 부분적으로는 인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이런 현상은 신자 개개인의 실존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일상적인 체험의 영성화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바로 앞의 문제와도 연결되는데 이런 현상에 대해 지나치게 배제하거나 금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사목자들이 '인정'을 기반으로 이를 승화, 또는 고양, 시정시켜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균형있게 사회적인 연대감을 갖도록 지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통합적인 영성이 필요한 것입니다.
곽 : 기복적인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것이 미신으로 나아갈 때 문제가 되는 것이지요. 한국 신자들의 영성은 다분히 순교와 성체 영성, 그리고 기복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신앙과 신비 중심주의에 경도돼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런 모든 영성적 성격도 서두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매우 가시적이고 활동 중심적인 영성이면서 동시에 내세적 측면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저는 순교 영성을 비롯해 한국교회의 영성에 대한 진지한 준비가 매우 부족했다고 봅니다.
이제 내용이 없는 영성, 영성이 없는 사회사목은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교회는 세상, 즉 땅을 위한 소금이지 단순히 세상의 소금이 아닙니다. 외적인 면에서 과감히 탈피하여 순교, 성체 등 모든 분야의 영성과 의미, 정신이 복음 안에서 중심을 이루는 직접 선교를 벌일 시기가 이제 왔습니다. 지금까지 한국 교회는 60년 전후의 한국전쟁 이후 구호물자로 인한 성장과 75년경부터 95년까지 거의 20년간 민주화, 사회복지, 교황방문 등 일련의 교회에 대한 좋은 사회적 이미지 때문에 간접적인 선교로 성장을 했다고 봅니다. 이제는 복음과 영성을 중심으로 직접 선교에 나설 때가 왔습니다. 삼위일체 신앙을 이제 교회 안팎으로 실천할 때가 왔습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이 제대로 구현될 때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매우 어렵습니다.
‘신영성운동’ 만연
노 : 신자들의 신앙적 흐름의 변화는 개인이나 교회 내적 요인 외에도 사회문화의 흐름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정치 경제적 격변기에는 인류의 보편 가치나 윤리 덕목에 대한 관심이 두드러지지만 민주화와 절대 빈곤이 어느 정도 해결되고 사회가 정형화되면 개인의 건강과 안녕에 대한 관심이 전면에 나서게 되고 신학이나 교리 등 지적 측면보다는 직접적인 체험을 중시하게 됩니다. 최근 급증하는 무(巫) 체험이나 기(氣) 체험, 성령 체험에 대한 관심은 이런 흐름을 반영합니다. 특히 기공, 단전, 초월, 명상 등의 운동들 가운데 종교운동의 성격을 띤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교황청이나 주교회의, 교구 차원에서 이에 대해 여러 차례 경고했으나 신자들의 참여와 관심이 계속 증가 추세에 있습니다. 그 원인과 대안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곽 : 먼저 이런 현상들은 신자들의 영적 갈증에서 기인됐음을 반성해야 합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만 우려를 표명할 것이 아니라 그 원인을 반성해야 합니다. 교회 역사를 보아도 이단의 문제는 단순히 교리 문제만이 아니라 하느님 체험의 문제였습니다. 또 이단들을 통해서 보편교회가 반성해야 할 부분의 순기능도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런 영적 깨달음과 인간 완성 내지는 건강 증진을 위한 운동이 교회 내에서 체험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이단적 내용을 모두 체험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만 그리스도교 복음과 전통에서 발전되어온 기도, 영성과 수행의 방법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이단적 체험은 개인화시키고 공동체와 구별되는 경향이 있지만 그리스도교적 수행은 하느님과 공동체와 개인을 모두 하나가 되게 하는 영적 여정입니다. 하루속히 가정에서부터 교우들이 영성, 기도 수행을 할 수 있는 방법이 나와야 합니다. 더욱 바람직한 것은 복음과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성숙되어 한국인의 정서와 심성에 일치되는 영성과 수련 방법이 나와 누구나 쉽게 신앙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노 : 기공, 단전, 초월, 명상 등과 같은 소위 '신영성운동'은 정보화나 세계화의 흐름과 맞물리면서 폭발적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운동을 금지하는 것만으로는 적절한 대책이 될 수 없습니다. 그보다는 변화하는 현대인들의 종교적 욕구에 대한 정확한 파악과 함께, 그러한 욕구를 수렴하는 교회의 구조적 쇄신 작업이 따라야 합니다. 특히 내적 치유와 영성 개발에 적합한 사목 프로그램의 개발과 보급은 무엇보다도 시급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수많은 수도회의 영성과 역사 체험을 통해 다양한 영성 훈련과 수도 방법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과 전통을 현대인들의 욕구와 생활에 적합하도록 체계화하고 보급하는 작업이야말로 내적 치유와 영적 각성을 희구하는 현대인들의 종교적 욕구에 대응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차 : 그 현상 가운데 신자들의 욕구와 목마름을 읽어야 합니다. 신자들은 자신들의 삶, 정서, 건강 등과 직결된 영성을 갈구하고 있습니다. 금하기만 해서는 막을 수 없습니다. 대안을 찾아야 합니다. 인위적인 영성이 아닌 자연 영성, 토착 정서에 맞는 영성, 몸의 영성, 신세대 영성 등을 아우를 수 있는 대안 영성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를 위해서는 수도원이 그 역할의 중대성을 자각하고 앞장서야 합니다. 이것도 결국 우리가 계속 언급하고 있는 기본의 문제입니다. 뿌리가 튼튼하면 흔들리지 않는 법이죠.
노 : 예, 장시간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기본부터 다시 하자'라는 구호는 신자로서의 위치와 역할을 자각하는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자각을 위해 우리는 대희년을 지냈고 그 정신으로 새 천년을 열자고 다짐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희년은 끝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계속 살아가야 할 소명일 것입니다. 희년의 정신이 우리 안에 계속 살아 숨쉴 때 가톨릭 신자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강화할 것이며 '기본'을 지키며 살아가는 삶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희년'이라는 말 자체가 '제자리로 돌아가기(Return to the origin)'의 정신을 의미하며 그것이 예수님 일생의 정신이었듯이 우리도 이 정신을 그리스도인의 정신으로 각자 자신의 삶 속에서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