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없이 이음매도 없이 흐르는 시간.
과거는 어디에 고여 있을까.
미래는 어느 길로 오는 것일까.
있는 것은 다만 영원한 현재.
그 현재도 시시각각 사라지며 나타나니
참으로 형언할 길 없이 불가해한 것이 시간의 모습이다.
시간을 여신 하느님의 솜씨. 하느님의 은총.
찬미할지어다 하느님.
언제부터일까, 사람을 위해 시간의 정거장이 생긴 것은.
2002년을 여는 큰 정거장이 나타나네.
보라, 새해 하늘에 솟아오르는 저 태양.
태양이 저렇게 크고 밝았던 적이 있었던가.
저 광명 속에서 삼라만상이 생기를 되찾는다.
하늘과 땅에 성령님의 입김이 충만하다.
크나큰 예감이 우리 앞에 그 청정한 모습을 드러낸다.
어서 오라, 2002년, 너를 반긴다.
새해에는 우리 모두 점쟁이한테는 가지 말자.
신성한 자유를 팔아 넘길 수는 없는 일.
스스로의 운명에 관한 한 스스로의 영혼만큼
바르고 성실한 예언자가 또 있겠는가.
날씨가 흐리다고 겁내지도 원망하지도 말자.
날씨가 험할수록 하느님께 더욱 뜨거운 감사를 드릴지니.
가슴 아파라, 인간의 죄로 얼룩진 땅.
탐욕으로 독기 뿜는 대기.
인간의 허영으로 구멍 뚫린 오존층.
서로 증오하며 죽이고 죽는 아수라장. 무너지는 마천루.
인간이 저지르는 온갖 끔찍한 짓은
하느님의 옥좌와는 무관하다.
하느님의 척도는 인간의 척도와는 다르다.
하느님의 침묵은 마냥 깊기만 하다.
허나 하느님은 사랑으로 사랑으로 시름하신다.
인간이 수렁으로 빠질수록
하느님은 더욱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러기에 기적처럼 2002년이 다시 무사히 밝지 않았느냐.
하느님의 슬픔이 진노로 변하기 전에
우리는 뉘우치고 뉘우치고 뜨겁게 통회하여
우리를 어둠 쪽에 가게 하는 모든 행실을
단박에 바꿔
광명으로 광명으로 나아가야 하리니.
어둡다고 낙담하면 허물이 된다.
산다는 것은 끝까지 끝까지 희망한다는 것.
희망을 등진다면 그것만으로 큰 죄가 된다.
희망은 오직 믿음에서 싹트고 자란다.
믿음만이 희망의 근거이며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이니.
이 경건한 새해 2002년 아침
우리 모두 흠숭과 찬미와 감사의 기도를 향으로 살라
그 향의 연기 줄기차게 올라가 하느님 옥좌에 닿도록 하자.
새해 아침
어둠에 속하는 마음의 얼룩 다 떨어버리고
한 가지 오직 한 가지
가난을, 참된 가난을, 마음의 가난을 주십사고
청원 드리자.
사랑과 가난만이 예수님 가신 길이어늘.
우리 기도 모두 들어주시는 하느님.
2002년엔 꼭 가난을 주시리니.
2002년엔 하늘과 땅과 물과 바람이
얼마나 맑게 깊은 평화로 다시 갤 것인가.
가슴 설레네. 희망이 솟네. 찬미할지어다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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