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교구는 2002년도를 복된 가정의 해로 정하고 가정복음화에 역점을 두고 있다. 주교님은 사목교서에서 복음화의 출발점도 가정이어야 하며, 복음화의 결실도 가정이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가정 사목이야 말로 사목의 총체라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가정 사목의 기초는 가정을 생명의 공동체와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할 수 있는 가정으로 만들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사랑이 가득한 가정 그리고 가족 구성원 모두를 하느님의 선물로 인식하는 가정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기도와 신앙교육' 그리고 '청소년들과 새로운 가정을 이룰 이들에 대한 관심과 교육' '지금까지의 관념을 뛰어 넘을 교회의 자각과 결단' 등을 촉구하고 있다.
이러한 주교님의 말씀은 이 시대 모든 신앙 가정들이 정말로 한번씩은 가슴깊이 새겨야 할 말씀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오늘날 우리 가정들은 많은 변화와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도시화와 핵가족화로 가정에 대한 전통적인 가치관이 변화되어 가고 있고, 경제적 위기와 사회 분화에 따른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나타나고 있다. 선진국의 수준을 넘어서는 이혼가정의 증가나 독신가정의 증가, 심각한 낙태 문제와 가정 폭력, 그 외에도 청소년 가출 문제나 알코올 문제, 그리고 각종 정신 질환이나 약물 중독 문제 등 몇 가지 통계자료만으로도 현대의 우리 가정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가 하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가정위기의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 하나는 우리가 사랑을 실천하는 기술과 방법에 대한 무지와 부부 일치에 대한 이해 부족이 그 원인의 하나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필자는 최근 남녀 심리에 대한 몇몇 책을 읽고 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남녀가 너무나 다르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게 된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남녀가 무슨 큰 차이가 있겠는가 생각하면서, 비슷하게 생각하고 느끼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해 왔는데, 이러한 책들을 통해 내가 그 동안 얼마나 무지했던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고 어머니나 교우들에게 대했던 나의 태도에 대해 반성하게 되었다. 이들 책에서는 남녀는 신체적인 면 뿐만 아니라 말하고 행동하고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점에서 다르다고 한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남자와 여자가 다르다는 이 사실을 모르고 너는 나 같이 생각해야 하고 말해야 하고 행동해야 된다는 '자기 중심적인 사고'를 지니고 있는데 이것이 가정 불행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를 모르고 자기가 선호하는 방법으로 사랑을 고집하기에 사랑의 의도를 가지고 행해진 행위가 때로는 배우자에게 상처가 되기도 한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을 접하면서 느끼는 것은 인간의 참된 행복을 위해서는 남녀간의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면에서의 차이를 인식시킬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과 이러한 교육이 하루빨리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든 이러한 책들의 한결 같은 주장은 '남녀가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해함'이 사랑과 부부의 일치를 이룰 수 있는 참된 토대가 된다는 것이다.
오늘은 성가정 축일이다. 오늘 복음은 성가정의 이집트 피난과 나자렛 정착에 대한 이야기이다. 여기서 특별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성가정을 이끌어가는 하느님의 섭리와 자기 의견을 제시함 없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성가정의 모습인데 여기에 바로 우리 신앙인들이 따라야 할 진리가 담겨 있다.
우리가 경험하지만 우리의 삶은 우리의 의도 대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우리가 우리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태어났듯이 우리 삶도 우리가 생각하는 방향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기도 하고 때로는 우리의 의도와 배치되는 정반대의 상황과 마주치게 되면서 그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데 여기서 많은 갈등과 고통이 따르게 된다. 우리가 오늘 묵상하게 되는 성가정도 출발에서부터 성 요셉이나 성모 마리아가 의도했던 가정과 하느님이 의도했던 성가정과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가정이 유지될 수 있었고, 성가정을 통해 인류구원이 성취될 수 있었던 것은 '나'와 '하느님'의 의도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 성요셉과 성모님의 이해심, 그리고 자기 주장만을 고집하지 않고 하느님의 섭리와 의도를 따르기 위해 기꺼이 인간적인 희생과 고통을 감수한 그분들의 행위가 있었기 때문인데 바로 여기에 성가정의 진면목이 있는 것이다.
오늘의 우리 가정에도 역시 '내가 의도하는 가정'과 '배우자가 의도하는 가정' 그리고 '하느님이 의도하는 가정'이 있고 이러한 모습들의 가정은 항상 일치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성가정을 본받는다는 것은 먼저 우리 가정을 통해 하느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그분의 섭리를 보는 것이요, 나의 주장과 나의 의도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처지에서 가정의 성화를 위해 자신의 희생과 고통을 감수함일 것이다.
1+1+1= 3이 아니라 1이 될 수 있는 신비를 생각하면서 우리 가정을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그분의 섭리를 헤아려 보자.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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