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장 정진석 대주교는 가톨릭신문을 비롯한 가톨릭 언론계와의 신년 특별 인터뷰를 통해 올해 큰 사목적인 변화로 교구장 대리제도의 시행임을 역설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교구발전상을 정립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정대주교는 또한 그 중심에 최근 새롭게 임명된 신임보좌주교들을 포함한 보좌주교 3명과 지난해 6월 임명된 몬시뇰 4명이 있음을 강조하고, 앞으로 이들 고위 성직자들이 일정부분 교구장을 대리해 특정분야, 특정지역을 이끌어 나가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인터뷰는 향후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서울대교구의 변화 방향과 한국 교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조명해보는 계기가 됐다. 다음은 정대주교와의 일문일답이다.
▶ 그동안 대주교님께서는 여러 차례에 걸쳐 교구 내 고위 성직자들이 교구장 주교의 권한을 일부 대리하는 교구장 대리제의 실시를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이 제도와 관련해 앞으로 변화하게 될 서울대교구 사목체제를 설명해 주십시오.
- 서울대교구가 하느님의 은총 속에 큰 성장을 거듭해왔습니다. 사제수가 700명이 넘고, 신자수 135만명에 본당수도 230여개에 이르는 거대 교구로 발전해왔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현 상황에서 한 사람의 교구장이 모든 일을 감당하기가 힘들어진 것도 사실입니다. 일반적으로 볼 때 사제 120명 본당 70개 정도가 한 사람의 교구장이 최대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교구 사목자들을 제대로 뒷바라지하기 위해서는 교구장 혼자서 이 책임을 짊어질 것이 아니라 6~7명이 나누어 지는 것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입니다. 이런 가운데 저는 교황님께서 서울대교구에 보좌 주교들을 6~7명 주신다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몬시뇰을 임명해주실 것을 청원했습니다. 그리고 고맙게도 교황님께서 우리 교구에 4명의 몬시뇰을 임명해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새해부터는 3명의 보좌주교, 4명의 몬시뇰들과 함께 교구 여러 일을 분담해 앞으로 교구 사제단이 사목 활동을 하는데 더욱 힘을 쏟고 능률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교구장 대리제도를 실시해 나갈 계획입니다.
▶ 대주교님께서 앞으로 시노드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것, 그리고 서울대교구가 반드시 이뤄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 시노드의 목적은 구원 성사를 통해 교회의 본 모습을 세상 모든 이들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 교회 구성원 대다수는 평신도들입니다. 앞으로 전 교구민들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또 하느님의 자녀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리고 하느님의 자녀란 사실이 무얼 의미하는지를 이번 시노드를 통해 자발적으로 자각하길 바랍니다. 시노드가 신자들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들을 수 있는 계기인 만큼 한단계 성숙하는 좋은 장이 될 것입니다. 시노드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문서로 나오는 결론보다 논의하고 토의해나가는 과정인 만큼 여기서 도출되는 좋은 의견들은 시노드 폐막 이전에라도 즉각 실천할 수 있도록 배려하겠습니다.
▶ 최근 실시됐던 전 신자 대상 시노드 의견수렴에서 성직자 부분, 구체적으로 성직자의 영적쇄신과 사목자로서의 자세 확립 문제 등이 가장 많이 거론됐다고 합니다. 성직자에 대한 신자들의 높은 기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한데 21세기 우리 성직자들이 지향해야 하는 목자상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 성직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파견된 사도 후계자입니다. 따라서 사목자의 전형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그분을 닮아야 합니다. 사제들은 또한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하느님과 사람사이의 중개자 역할을 해야 하는 힘들고 어려운 직책입니다. 사제들에게는 가르치는 직무, 거룩하게 하는 직무, 봉사의 직무 등이 있습니다. 가르치는 직무는 주님의 참된 진리를 신자들에게 가르쳐 주님의 소리를 듣도록 하는 것이고 거룩하게 하는 직무는 세례 성사 등 칠성사와 준성사 집전을 통해 신자들이 주님께 올바르게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끄는 것입니다. 아울러 봉사의 직무는 그리스도의 백성인 신자들을 위해 봉사하고 인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사목자들은 신자들에게 봉사하며 하느님 백성을 올바르게 인도하는데 앞장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 올해 사목교서에서 대주교님께서는 쉬는 신자, 즉 냉담자는 늘어나고 많은 신자들은 신앙생활을 사회생활의 한 부분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크게 우려하셨습니다. 이런 현상의 원인은 무엇이고 이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이 있어야 하겠습니까?- 한국교회 신자 400만명 중에서 1/3이 쉬는 신자입니다. 우선 그 원인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이에 대한 치료가 가능하리라 봅니다. 제가 생각하는 원인으로는 개인적인 것, 교회적인 것, 일반 사회적인 여건 등 다양하리라고 봅니다. 또 한가지 최근에 가난 때문에 쉬는 신자가 많이 발생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여러 가지 쉬는 신자의 증가 원인을 우리 교회가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인지 모색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최근 서울대교구를 비롯해 전국적으로 소공동체 열기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쉬는 신자 문제 해결을 소공동체 운동을 통해 접근하고 싶습니다. 소공동체 모임을 통해 서로간의 친교와 화합을 일구어 낸다면 개인적인 문제, 교회적인 문제, 경제적인 문제 등 냉담 하는 여러 요인들을 풀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 어린이와 청소년 그리고 청년들은 21세기 우리 교회를 이끌어갈 대들보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들을 배려하는 사목적인 노력은 다른 분야에 비해 다소 뒤처진 느낌입니다.
- 청소년들은 국가와 민족의 장래입니다. 우리 교회 뿐 아니라 인류의 장래가 달려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청소년들을 참다운 인간으로 육성시키는데 주력해야 할 것입니다. 청소년 문제는 비단 교회 내 문제가 아니라 국가와 인류 전체의 문제입니다. 우선 청소년 문제의 해결 방안은 가정에서부터 찾아나가야 할 것입니다. 모든 것을 대학 입시에 맞추고 지적인 부분만 강조하다 보니 청소년들의 감성적인 부분은 모두 무시되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이 올바른 성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지적인 부분만 강조하는 불균형을 방치해서는 안되고 감성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모든 가정에서 관심과 배려를 아끼지 않아야 합니다.
특히 늦은감이 있지만 앞으로 우리 교회는 유아교육에 대한 보다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일찍이 개신교, 불교, 원불교 등 다른 종파에서는 유아교육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유아교육 시설 확충에 만전을 기해왔습니다. 그 결과 현재 우리 나라에 유아 교육 기관들 수가 개신교, 불교, 원불교 그 다음이 우리 천주교입니다. 이 점을 우리 모두는 깊이 반성하고 자각해야 합니다. 또한 청소년들을 더 많이 교회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다양한 방안이 마련돼야 합니다.
▶ 지금 우리 사회에는 죽음의 문화가 팽배해 있습니다. 특히 현대의 과학은 생명창조라고 하는 인간이 넘봐선 안될 영역에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교회는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주신 소명인 생명의 문화를 수호하고, 이를 재창출해 낼 수 있겠는지 말씀해주십시오.
- 생명의 근원은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즉 인간이 간섭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확실히 인지해야 합니다. 아울러 우리에게 있어 시급한 것은 선용입니다. 인간이 발명한 모든 것을 본래 취지대로 선용해야 비로소 올바른 생명문화가 정착되리라 여겨집니다. 예를 들어 생명체를 이용해 생화학무기를 만들고, 원자력으로 살상무기를 만든다는 것은 분명 제대로 선용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안타까운 현실을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인류재앙과 분열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 지금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혼돈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 지방선거와 대통령 선거까지 겹쳐 있는 중요한 시기에 이 시대의 정치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해주십시오.
- 지도자는 백성을 위해 필요한 사람입니다. 결코 개인이나 당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서 출발해야 할 것입니다. 이들이 국민들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받는 만큼 이 땅의 지도자들은 이에 합당하게 백성들에게 봉사할 수 있는 자세가 갖춰져야 합니다. 현재 우리 나라 법조인, 장관, 군인, 금융계통 등에서 일하는 각계 지도자들 중에는 많은 신자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더욱이 현 대통령과 야당 지도자도 가톨릭 신자입니다. 모든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는 만큼 신앙인으로서 정치지도자로서의 모범을 보여 존경받고 신뢰받는 지도자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또한 제가 신자 여러분들께 간곡히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정파를 떠나 편파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공정한 선거가 이뤄질 수 있도록 앞장서 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거 후 심각한 후유증도 없어야 합니다.
▶ 지난해부터 한국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는 도덕적 해이 현상이 심각한 오늘날 우리의 현실을 바로 잡자는 취지에서 '똑바로' 운동을 실시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 시대의 도덕과 윤리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하겠습니까?- 도덕이 문란해진 근본원인은 물질숭배에 있다고 봅니다. 과거 우리 나라 전체가 어려운 시대를 살 때 국민들은 우선적으로 경제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열심히 노력해왔습니다. 그 결과 이제는 절대적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아직도 우리 국민들은 이 흐름을 탈피하지 못하고 여전히 물질우선주의 사고에 젖어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영적, 문화적 가치가 소홀해져 그 여파로 가정파괴, 이기주의, 물질만능 주의 등 심각한 병폐를 낳게 된 것입니다. 사람은 물질적, 영적으로 여유와 균형이 잡혀야 합니다. 특히 문화적면에 보다 집중적인 투자와 관심을 쏟음으로써 인간적으로 성숙해지고 올바른 도덕적 가치관을 정립해나갈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정신적인 여유입니다.
▶ 희망찬 임오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를 맞아 모든 신자들께 신년 덕담 한마디 들려주십시오.
- 새해부터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루하루를 은혜롭게 잘 활용하실 수 있도록 모두가 노력했으면 합니다. 더욱이 각 가정의 부모님들은 장차 우리 자녀들이 우리 나라와 교회를 위해 훌륭한 일꾼이 될 수 있도록 자녀교육에 각별한 신경을 써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현재 노후를 맞으신 어르신들께서는 오래 오래 건강하시며 주님의 충만한 은총을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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