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12시가 되면서 바쁜 오전 일손을 마무리한다. 시계를 보지 않아도 배가 출출한 걸 보니 점심시간이 다 된 것 같다. 아니나다를까 어김없이 삼종을 알리는 차임벨 소리와 함께 낭랑한 목소리로 『주님의 천사가 마리아께 아뢰니…』하는 기도문이 들려온다.
서울 중곡동에 위치한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직원들은 각자 사무실에서 하던 일손을 멈추고 벌떡 일어서 삼종기도를 마친 뒤 총총 식당으로 향한다. 점심때만 아니라 출근해서 일을 시작할 때에도, 그리고 하루 일과를 마친 뒤 집으로 향할 때에도 모든 직원들은 삼종기도를 바치면서 구세주 강생의 신비를 고백한다.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우리 모든 가톨릭 신자들은 『항상 깨어있으라』던 예수님의 당부대로 언제나 자기 삶의 한가운데에서 수시로 신앙을 표현하고 고백해야 한다. 그것은 의무로서만이 아니라 영생을 향한 희망의 표시로 저절로, 자연스럽고도 충만하게 드러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한 기도 중에서도 하루 세 번 바치는 삼종기도는 구원의 희망이 담겨 있는 신비스러운 기도이다.
삼종기도는 그리스도 강생의 신비를 기념하기 위해 매일 세 번 즉 아침6시, 정오, 그리고 저녁6시에 종소리와 함께 바치는 기도이다. 이 기도는 세 번의 성모송과 세 개의 성서 구절(루가 1, 28·38 요한 1, 14) 및 본기도로 구성돼 있다.
삼종기도는 워낙 오래 된 교회의 전통적인 기도이고 복잡한 변모 과정을 거쳐왔기 때문에 그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다. 성모송이 5세기에 등장해 13세기에 공식 기도문으로 전례 안에서 이용되기 시작했으며 이 당시에 저녁 삼종기도가 처음으로 암송되기 시작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교황 요한 22세(1316~1334)는 1318년과 1327년에 저녁 삼종기도를 바치면 대사를 받을 수 있다고 발표했다. 1330년 아침 삼종기도가 파비아(Pavia)에서, 정오 삼종기도가 1386년 프라하(Praha) 교회 회의에서 권장되기 시작했다.
세 번의 삼종기도가 하나의 기도로서 매일 하루 세 번씩 암송되기 시작한 것은 교황 식스토 4세때(1471~1484)부터이다. 16세기에 세 개의 성서구절과 성서구절이 끝날 때마다 성모송을 암송하는 형태로 바뀌어 교황 비오 5세(1566~1572)때에 처음으로 로마 기도서에 수록됐다. 결정적으로 삼종기도의 형식이 완성된 것은 1612년부터이다.
바쁘고 서로 다른 종교를 지닌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일하고 살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때로는 삼종기도를 통해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 삶을 성화시키는 일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분주하고 복잡한 사회 안에서도 삼종기도를 통해서 오히려 우리 신앙을 드러내고 나의 하루를 봉헌할 수 있다.
복잡하고 세속화된 사회 안에서 삼종기도는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우리들의 하루를 성화시키는 감동적이고 신비스러운 기도이다.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과 잠시 쉬는 점심, 그리고 일을 마치는 저녁에 간단하게나마 하느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심을 묵상하고 나의 시간들을 하느님께 봉헌하라는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식당에서 식사 전에 기도하는 것은 신자로서 훌륭한 자세입니다. 삼종기도도 마찬가지예요. 십자성호를 그은 후 식사를 하듯, 잠시 머리를 숙이고 하루 세 번씩 삼종기도를 바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79년 삼종기도에 대해 『기도 중에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고 축복으로 이어지는 간단한 묵상이자 하느님과 하나됨을 드러내는 극적인 감격을 맛보게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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