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혼란과 개혁시대에 일어난 영성
3) 수도원의 쇄신 운동
(3) 클뤼니수도원
이 수도원은 프랑스(그 당시는 부르군디 왕국)의 클뤼니시에서 아퀴타니아의 빌헬름 공작의 노력으로 910년 창설되었다. 그는 당시 수도원 침체 요인의 하나였던 주교권의 지나친 간섭을 배제시켜 클뤼니수도회를 주교의 관할권에서 독립시켰다. 이런 수도원이 프랑스를 중심으로 스페인, 이탈리아, 영국, 유럽의 동북쪽과 폴란드까지 확산되어 나갔다.
위대한 수도원장들의 영향력 덕분에 이 수도회는 부흥하였다. 베르논에 이어 오도, 아이마르드, 메일 등이 덕망 높은 수도자와 개혁가로 활동하였다. 이들은 내적으로는 엄격한 성 베네딕도의 규칙에로 복귀하고, 외적으로는 평신도 임명권, 성직 매매, 사제 결혼에 대한 논쟁에서 교황을 도와 부패들을 근절하고 교회 정신을 견고하게 하는 데 기여하였다. 이 개혁운동은 프랑스는 물론 이탈리아, 독일, 영국, 스페인 등 여러 나라로 확산되어 12세기에 이르러 2,000여 소속 수도원을 갖는 커다란 수도원으로 성장하였다.
수도원 부흥과 쇄신을 볼 때 클뤼니수도원은 특권을 받고 있었다. 우선 평신도의 통제에서 완전히 벗어나 교황청과 깊은 유대를 맺어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위에서 언급한 훌륭한 아빠스들이 있었기 때문에 쇄신이 가능하였다. 그들은 모두 거룩한 수도자들이자 성인들이었다.
왜 클뤼니수도원이 수행의 이상적 장소로 사람들의 경탄을 자아냈는가? 그것은 간단히 말해서 뛰어난 기도생활과 수행생활에 있었다. 이는 수도회가 쇄신을 염두에 두면서 본질적인 것을 성찰한 후 그것에로 돌아가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전통적인 신학에 의해 정립시켜 나갔다.
클뤼니수도회 영성의 실제 창시자로 볼 수 있는 성 오도(베르노의 후계자)는 교황 그레고리오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고 성서에 영감을 받은 긴 시와 강의들을 통하여 수도자들에게 생활신분에 대한 가치를 확신시켜 주었다. 그는 수도생활이 세상에서 오순절의 신비를 유지하고 교회가 본질적으로 존재하는 양식을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에 있음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의 거룩하심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었다. 수도자는 죄 많은 이 세상에서 이방인이 되어야 하며 하느님을 영원히 찬미하는 천사들과 일치하여 그들처럼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각자는 수행을 통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그리스도의 신비를 나누어야 하는 것이다.
우선 클뤼니는 지속적 기도를 위해 선택된 보금자리처럼 보였다. 그것은 개인기도와 전례기도로 드러났다. 수도원 안에서는 수도자가 어디에 있든 기도가 중심이었다. 기도는 할 일 없는 입놀림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비들을 묵상하고 성화된 영혼의 깊은 곳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전례거행의 전체적인 방향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의식의 절차는 아주 미세한 부분까지 규정되어 있었다. 이리하여 왕 중의 왕이신 그리스도를 섬기는 의식을 세부적으로 만들기도 하였다. 개인기도는 성 베네딕도가 가르친 사적 기도가 제시되었다. 공동 전례 거행은 개인의 정신에 자극을 주었다. 이에 따라 그들은 성무일도 중에도 잠시 침묵하는 순간 순간에 성무일도의 구절들이나 성서의 말씀들이 마음에 들어와 탄식과 입놀림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보았다. 이 수도자들은 부엌이나 제의방에서 일할 때도 시편을 염하는 관습이 있을 정도로 기도를 강조하였다. 성서 묵상(이를 통해 개별적으로 학문 연구에도 힘썼다)과 영적 독서가 강조되었는데, 성 오도의 후계자 성 마욜루스 같은 분은 교황 대 그레고리오의 작품에 매혹되어 있었다. 어느 날 사람들이 그를 찾고 있었는데, 그는 밤새도록 그 작품을 읽다가 그것을 베개삼아 자고 있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이다.
기도만이 아니라 이 수도회의 쇄신은 철저한 수행에 있었다. 그것은 우선 정해진 규칙을 철저히 지키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를 통해 수도자는 마음의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다고 보았다. 마음의 순결과 정결 서원이 참된 관상생활의 조건이 된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으므로 온갖 노력을 기울여 수행생활에 힘썼다. 그들은 자신의 고통을 성찰하거나 내적 시련들을 현대 영성가들처럼 분석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것들을 악령의 유혹으로 여겨 하느님께 나아가는 데 방해되는 것으로 보고 무조건 물리치려고 노력하고 십자가에로 눈을 돌렸다.
클뤼니의 기도와 개인 신심에 대한 언급에서 성모신심을 무시할 수 없다. 성모님은 그들에게 관상기도의 모범이었다. 그들은 "마리아는 기도하고 있었고 읽고 있었다"라고 말하였다. 화려한 전례 기도와 찬미가들은 하느님의 어머니에게 드리는 산실을 마련하였고 마리아의 종노릇같은 신심이 일어날 정도였다. 「별을 보라」와 「마리아를 부르라」는 기도는 유명하다.
하지만 이 수도회도 13세기부터 차츰 쇠퇴하기 시작하여, 그 이후부터는 개혁의 주도권은 시토회로 넘어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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