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샐러리맨 박정호(37)씨는 요즘 지갑이 든든해진 느낌이다. 괜히 한번씩 지갑을 열어 보며 흐뭇한 웃음을 짓기도 한다. 얼마전 구입한 복권 10장을 여기에 넣어 두었기 때문. 박씨는 모임이나 술자리에서도 『복권만 당첨되면 내가 확실하게 한턱낸다』 등의 이야기를 하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평소 복권에 별 관심이 없던 그였지만 국내 최대 당첨금이란 타이틀로 복권이 발매되자 솔깃한 마음에 구입하게 됐다. 물론 당첨 확률로 봐서 자신에게 그 행운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세태는 비단 박씨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복권을 구입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대부분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복권을 사면서 당첨될 것이라 믿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기대감을 저버리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지난 1997년 IMF 한파 이후 이어지고 있는 경제 불황속에서 복권에 기대를 거는 사람들은 점차 증가하고 있고, 이들에게 대가 없는 기대를 부추기고 있는 복권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한탕주의 초호황
지난해 어려운 국내 경기에도 불구하고 사행산업이 45%나 급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가 관련 업체 및 협회 자료를 분석해 발표한 「국내 사행산업 현황」에 따르면 복권, 경마와 경륜, 카지노 등의 규모가 지난해 총 9조2천238억원으로 드러나 6조3천408억원이었던 전년보다 45.5%나 증가했다. 특히 복권의 경우 18종에 이르는 다양한 상품과 고액 당첨금 지급 등이 인기를 끌어 매출 추정치가 전년보다 49%가 성장한 6000억원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또한 올해 주5일 근무제가 본격화되고, 인터넷 복권 등이 확대되면 사행사업은 올해 처음으로 10조원을 넘어 11조원에 이를 것으로 관계자들은 전망하고 있다.
복권 선물로도 큰 인기
자동차 영업사원인 이영호(40)씨는 최근 추첨식 복권 300여장을 구입해 연하장과 함께 고객들에게 발송했다. 또한 주택은행 신민호 지점장도 고객들에게 감사의 뜻에서 복권을 선물하고 있다. 계속되는 경기 침체로 갈수록 척박한 시대에 1~2천원으로 받는 사람의 기분을 즐겁게 해주자는 뜻에서 이처럼 복권을 선물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최근 들어 한국에 복권 열풍이 거세게 일자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진 영국의 BBC 방송은 얼마전 서울발 기사에서 경기침체 위기감에도 불구, 지난해 약 500만 달러였던 도박산업이 계속 성장하고 있으며 앞으로 온라인 복권이 출시될 경우 복권시장만해도 시장규모가 배로 껑충 뛸 것이라고 보도했다. BBC는 한국인들은 경제둔화로 인해 점차 대박을 터뜨리는데 희망을 걸게됐다고 지적하고 향후 월드컵 열기와 맞물려 체육복표인 타이거 풀스의 「스포츠 토토」까지 출시된다면 배팅욕구를 더욱 자극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규제 없어진 후 앞다퉈 발행<.strong>
우리나라 복권시장은 3년 전보다 2배 이상 팽창해왔으며, 공공기관들과 지방자치단체, 심지어 외국 기업까지 복권사업에 가세하고 있어 그 규모는 더욱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국무총리실에 설치되었던 복권발행조정위원회가 규제 완화라는 명분으로 99년 없어진 것도 중요한 원인이 됐다. 복권 발행 기관이 자율적으로 복권발행협의회를 구성해 복권사업이 더욱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공공기관은 물론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집행 예산을 마련하는 방법의 일환으로 복권을 발행해 국민들의 사행심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현재 복권을 발행하고 있는 곳은 건설교통부, 과학기술부, 문화관광부, 제주도, 노동부, 중소기업청, 행정자치부, 산림청, 국가보훈처 등의 산하 기관들이다. 아울러 보훈처 산하 한국보훈복지의료 공단이 즉석식 복권, 보건복지부 산하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인터넷 복권, 해양수산부와 환경부도 각각 바다복권과 환경복권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기에다 얼마 전 외국계 회사로는 처음으로 호주 복권회사인 TMS사의 국내법인인 TMS글로벌서비스코리아가 복권시장에 가세했다.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복권
이렇듯 국내외 기업들과 공공기관, 지자체에서 만들어 내고 있는 복권의 종류도 다양해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이전까지 복권시장을 주도해온 것은 무주택 서민들에게 내집마련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로 69년부터 정기적으로 발행되어온 주택복권이었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구입 즉시 당첨 결과를 알 수 있는 즉석식 복권이 들어오면서 복권시장은 더욱 다양해져 자치, 체육, 관광, 녹색, 또또 등 그 이름조차 다 외우기 힘들 정도이며, 지금도 새로운 복권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더욱이 최근 들어 발행되는 복권들은 엄청난 담청금을 앞세워 국민들에게 일확천금의 꿈을 부추기고 있어 문제의 심각성은 더하다. 당첨금만 하더라도 99년 주택은행이 20억원짜리 밀레니엄 복권을 시작으로 60억원, 100억원짜리 복권이 발행되더니 이번엔 한 인터넷 회사가 총 당첨금 234억원이란 국내 최고액 복권 세트 상품을 내놓아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또 한가지 눈에 띄는 것은 인터넷을 통한 복권사업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해 기존 복권 발행업체는 물론 야후코리아, 다음커뮤니케이션, 드림엑스닷넷, 코리아닷컴 등 포털 업체들도 신규 서비스를 내놓으며 네티즌 끌어 모으기에 주력하고 있다.
청소년들에게 악영향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사행심을 조장하는 복권 장사를 앞다투어 벌이는 모습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최근 열린 당정회의에서는 연간 매출 규모가 2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신형 로토 복권 도입을 둘러싸고 정부 부처끼리 이해가 갈려 편싸움을 보이는 추태를 보이기도 했다. 복권 발행이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의 이권사업처럼 돼버린 것이다.
이와 관련해 관계자들은 정부가 복권 이익금을 공익을 위해 사용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사행심을 부추겨 서민의 호주머니를 터는 방식으로 재원을 마련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고 필요하다면 예외적, 한시적으로 허용돼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이와 함께 꼭 필요한 사업이나 기금은 예산으로 돌려서라도 복권 발행을 줄이고 사업자 선정, 수익금 배분 등을 투명하게 관리할 통합 복권법부터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앞으로도 계속 이러한 이상기류가 커져간다면 일반 시민들은 물론 청소년들에게까지 그 영향력이 파급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최근 들어 많은 직장인들이 한 달 용돈의 일정액을 복권 구입에 쓰는 등 대박 열풍으로 국민들 가슴에 사행심과 한탕주의만이 싹트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심지어 버스 정류장이나 지하철역 부근에서는 책가방을 둘러멘 청소년들이 열심히 복권을 긁어대는 모습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결국 정부의 잘못된 방침에 의해 일반 시민들 뿐 아니라 청소년들에게까지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 교회 가르침…“재화는 정당한 노동으로”
재물탐닉의 위험성과 헛됨
‘어리석은 부자’통해 경고
예수님은 부자 청년에게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고 당신을 따르도록 원하셨다(마르 10, 17~22). 재물에 탐닉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헛된 것인지를 「어리석은 부자」(루가 12, 16~21) 등을 통해 엄중하게 경고하고 있다.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갈 것은 재화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수단이다. 그것도 최소한이 아니라 될 수 있다면 모든 사람이 충분히 재화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모든 사람은 자신과 가족들을 위하여 넉넉한 재화를 소유할 권리를 가진다』고 말했다(현대 세계의 사목헌장 69항).
하지만 하느님의 선물로서 재화를 획득하고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땀을 흘려 일한 정당한 노동의 기쁨을 알고 과도한 사행성 투기에 몰두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교회의 가르침이다. 가톨릭 윤리학자들은 『합법적인 방법을 통해 재산을 증식하는 것을 문제시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일확천금을 기대하는 사행심으로 이뤄지는 것이라면 분명히 문제』라고 지적하고 『땀흘려 일해 그 노동의 대가를 얻는 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행동』이라고 말했다.
하느님의 선물인 재화와 물질의 풍요를 누리는 것은 허용될 뿐만 아니라 권장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교회는 재화를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것으로 그 사용권은 모든 이의 공동권리라고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개인의 돈이라도 만인을 위해 사용한다는 기본정신을 규정하고 있다.
■ 복권이 1등에 당첨될 확률은?
날마다 많은 사람들이 기대 속에 복권을 산다. 세계 1백여 개 국에서 발행하는 복권은 「행운」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에서 유래되었다. 우리나라 복권의 역사는 1969년 주택복권이 정기적으로 발행되면서 시작됐다. 현재는 국내 9개의 기관에서 추첨식 복권과 즉석식 복권을 발행하고 있다. 제주도는 지방자치단체로서는 유일한 복권 발행 기관이다. 지난해에는 복권을 팔아 총 203억원(슈퍼관광복권이 188억원, 즉석식 관광복권이 15억원)의 순수익을 올렸다. 현재 복권은 소득세법에 의해 당첨금의 22%(소득세 20%, 주민세 2%)를 원천징수하고 있다.
어제 밤에 돼지꿈을 꾼 사람이 혹시나 해서 1천원을 주고 슈퍼관광복권 한 장을 샀다. 이 사람이 1등에 당첨되어 당첨금 6억원을 받게 될 가능성(확률)은 얼마일까? 이 복권은 10만번부터 99만9천999번까지 90만 매씩 1조부터 6조까지 총 540만 매를 발매한다. 그러니까 1등에 당첨될 확률은 1/5,400,000이다.즉, 0?00000185%이다. 다른 복권도 확률이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쯤 되면 확률이 「0」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당첨금 6억원에 대한 기대값은 확률에 당첨금을 곱한 값 111원이다. 전체 당첨금에 대한 기대값도 600원이다. 1천원을 주고 샀으니 사는 순간 400원을 손해 본다고 생각하면 된다.
실제로 복권으로 이익을 보는 쪽은 복권 발행 기관과 세금을 걷는 정부이다. 추첨을 하기도 전에 수억원씩 가져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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