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혼란과 개혁시대에 일어난 영성
3)수도원의 쇄신 운동
(4) 기타 지역 수도회의 개혁
영국에서는 재속 성직자들이 켄터베리 수도원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성 던스탄이 그 곳에 들어와 성 베네딕도의 규칙에 따라 재속 성직자들을 수도자들로 대치하여 쇄신을 꾀했다. 그는 한 때 왕들의 싸움에 개입되어 귀양살이를 하기도 하였으나 에드가르 왕의 부름을 받아 켄터베리의 대주교가 되어 쇄신에 힘썼다. 성당을 많이 세우고, 성직자들의 독신생활을 바로 잡고, 단식을 강조하고, 평신도들의 정의감을 고취시켰다. 그리고 대륙에서 발표된 규칙적인 합의(Regularis concordia)를 지키도록 하였다. 그가 주도한 개혁은 수도원이 신앙과 문화의 중심이 되게 하여 결과적으로 영국과 스칸디나비아 선교사들에게 영적인 도움을 주었다.
프랑스의 플뤼르 슈르 로와르와 벨지움의 브론느, 로렌의 고르즈 등이 쇄신을 추진하였고 이탈리아의 개혁가들도 여러 지역에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10세기 경 로마에는 60여 개의 수도원이 있었는데, 그 중 일부는 동방정교회의 의식을 따르고 있었다. 사방에서 폭력이 난무하고 교황 제도 안에도 문제들이 많던 철의 세기에도 수도원들은 영적 쇄신을 위한 욕구를 등한시하지 않았다. 그들은 교계 제도와는 별도로 그리스도인 완덕의 삶을 성실히 살고 있었고 교회가 이 세상에서 성취해야 하는 일을 등한시 할 수 없었다.
그들은 황폐한 대지를 개척하고 민중들의 교육에도 치중하여 수도원을 문화의 중심지가 되게 하였다. 이 당시 수도회의 중심은 베네딕도회였으나 두 개의 다른 방향으로 발전되어 나갔다. 성 로무알도가 엄격한 독수생활을 육성하는 까말돌리회를, 몰레스메스의 로베르또는 세속과 보다 멀리 떨어져 가난과 성 베네딕도회의 규칙을 엄격히 준수하고 공동생활을 장려하는 시토회를 창설하였다. 이 복잡한 시대에도 하느님의 돌보심으로 위대한 영성 대가들이 출현하여 쇄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5) 성 로무알도와 제자들
전통적인 베네딕도 수도원은 그 성격에 있어서는 공동생활이었다. 그러나 규칙에 의하면 은둔자들을 위한 장소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여기에 해당되는 수도자들은 「홀로 싸우기 위하여」 광야로 피해 가는 이들이다(성 베네딕도의 규칙서 제2장 참조).
그 시대는 악습의 홍수가 성직자들의 생활에까지 침투하고 있었으므로 소수의 열성적인 그리스도인들은 극단적인 고행의 길을 택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은수자의 삶을 원하는 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대표적인 인물들이 그림락과 성 로무알도이다.
그림락은 성 베네딕도의 가르침을 따라 수행한 성 크로데강과 대 성 그레고리오로부터 영감을 받아 은둔자들을 위한 규칙을 썼다. 마음의 뉘우침과 거룩한 독서와 기도를 강조한 그의 규칙은 대 성 그레고리오의 영성적 가르침과 비슷하다.
한편 10세기 후반 경 이탈리아에서는 성 로무알도의 뛰어난 인품을 중심으로 베네딕도 수도회 규칙에 따른 새로운 양식의 은수자적 경향과 다른 규칙적인 생활 양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로무알도는 이탈리아의 라벤나에서 귀족 가문 출신으로 20살쯤에 친족을 죽인 부친을 대신하여 수도원에 들어가 참회의 생활을 시작하였다. 환시 중에 성 아폴리나리스를 본 후 베네치아 근처에서 가혹한 참회의 생활을 하면서 마리노라는 은수자의 제자가 되어 지도를 받았다.
10년의 세월이 지난 후 고향으로 돌아가 부친을 설득하여 수도자가 되게 하였다. 아들의 권고를 받아들인 아버지는 일생동안 수도자로 살다가 귀천하였다.
한편 오토 3세 황제는 로무알도의 성덕에 감동되어 그를 아빠스로 임명하였으나 1년 후 그 직을 사임하고 늪지대인 뻬레움이라는 은둔지에서 다시 은수생활을 하였다. 그 후 이곳은 성직자 양성소로 유명한 곳이 되었는데, 동유럽 선교를 희망하는 성직자들을 배출하였다. 로무알도도 선교사가 되어 순교할 마음이 간절하였으나 나이가 많아 거절당했다. 대신 노년에는 이탈리아 중북부에 은수생활을 하는 수도원들을 세웠다. 그 중에는 유명한 발람브로사가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곳은 아렛조 근처에 세워진 까말돌리회 수도원으로서 후에 이 수도회의 모원이 되었다.
로무알도 성인은 은수생활을 선호하였으나 수도생활을 개혁하여 공동생활도 만들었다. 그가 구체적으로 수도생활에 공헌한 것은 엄격한 삶을 살기 위하여 은둔생활을 하던 수도자들의 생활에 질서와 규칙을 만들어 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홀로 사는 은수자들도 규칙이 필요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은수자들에게 규칙을 주었다. 그 규칙이란 특별한 것이 아니고 성 베네딕도의 규칙서를 은수생활에 적용시킬 수 있는 데까지 적용시킨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규칙에 따라 사는 은수자들의 아버지』로 부르기도 한다. 그는 제자들에게 전적인 희생을 강조하였다. 그것은 한 마디로 수행(修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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