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4월엔 진안본당으로 가게 됐다. 본당 재정은 물론이고 본당 소속의 성모 의원도 형편없이 운영되고 있었다. 우선 병원과 본당의 재정을 분리하고 사목위원 활성화에 주력했다. 사목위원들에게는 병원을 자체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신자들에겐 진료비 할인 등의 혜택을 주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며 병원을 정상궤도에 올려놓았다. 또 입원실도 늘리고 공소도 지었다.
어떤 본당에서든 신자들의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었는데 진안본당에서는 연미사 봉헌금 10%를 본당 발전기금으로 돌렸다. 그러자 미사봉헌도 늘고,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교무금을 늘리는 등 많은 애를 썼다.
이후 부임한 팔마본당에서도 새성당을 봉헌하고 그날 회갑잔치를 함께 치렀다. 이 무렵 교회 묘지도 3만여평 장만했다. 1979년 초부터는 건강이 여의치 않아 전주에서 요양을 했다.
모든 본당이 어려움을 가지고 있겠지만 이렇게 끊임없이 어려운 본당의 사목을 맡으면서 한번도 후회한 적은 없다. 서학, 함열, 남원, 진안, 팔마본당 등은 모두 자원해서 간 곳이었다. 어려울 때 사랑하는 것이 진짜 사랑이라 생각하며,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구하기 전에 필요한 것 다 아시니 맡겨드린다』는 마음으로 살아왔다. 그래서인지 「해결사」란 별명에 「성당 잘 짓는 신부」「은갈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나의 마지막 부임지는 광주 가톨릭대학교였다. 전주에서 요양을 하던 중 광주 가대 영성지도 신부로 와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처음 권유받았을 때 『나 같은 사람이 학생들을 가르치다니 「소가 다 웃을 일」』이라며 세대 차가 심하니 젊은 신부를 보내라고 거부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요청에 『일단 가서 상황을 보고 돌아오겠다』고 하고는 이부자리는 커녕 책만 몇 권 들고 학교를 방문했다. 그리고 이렇게 잠시 들렀던 것이 13년이나 지내게 됐다.
한동안은 「호랑이 신부」라는 소문에 학생들이 내 곁엔 얼씬도 안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학생들은 「할아버지」라고 부르며 따라주었다. 가대 교수 시절은 많은 면에서 내가 더 많이 배운 때였다. 몇 권의 책도 번역해 출간했다. 또 학교에서 사제수품 50주년 행사도 마련해줘 너무도 고마웠다.
신학생들은 내가 70세가 되던 해 그동안 내가 작곡, 작사, 편곡한 성가 몇 곡을 「애원」이라는 제목으로 한데 묶어 주었다. 나는 본당 사목 시절, 신자들을 격려하거나 기쁘고 기념할 일을 함께 나누고자 할 때 성가를 짓곤 했었다. 특히 「애원」이라는 곡은 6.25 전쟁 당시 지경공소 회장님댁 골방에서 피난살이 중 성모승천대축일에 작곡·작사한 성가였다.
가대 재임 시절 신학생들에게는 「미인이 되는 비결」을 강조해왔다. 신학교는 「영혼의 미용」을 가르치는 미용학원. 신부는 미용사 자격증을 받은 사람이다. 「영혼의 미용」은 3단계로 나눠지는데 첫째 정화의 길. 이 정화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고해성사다. 둘째 조명의 길은 영양을 공급하는 것이다. 때를 씻고 수덕의 길을 감으로써 은총을 얻는 단계다. 셋째 일치의 길은 색조화장과 같다. 영육이 조화를 이뤄 아름다운 색을 내는 것이다. 그러나 화장이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거울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이 거울이 바로 십자가다. 사제는 무엇보다 십자가를 먼저 생각하며 영성생활을 열심히 해야하는 것이다.
사제수품을 받은 지 벌써 58년째로 접어들었다. 나는 하느님의 큰 은총으로 신부 아들 23명, 수녀 딸 16명, 제자도 500여명이나 뒀다. 요즘에는 피정 지도 등을 종종 하곤 한다. 또 세계 유명한 문인, 정치가들의 말을 성서에 빗대어 풀어놓은 「3분 묵상(가칭)」의 번역을 끝내고 곧 출간할 예정이다. 한 수도회에서는 전례생활 정리와 그레고리오성가 창법 설명 책자를 써달라는 요청이 있었지만 기력이 부족해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은퇴 후 후배들과 신자들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도 큰 기쁨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 자리를 빌어 후배 사제들과 신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나는 우리 순교자와 신앙선조들이 어렵게 일궈놓은 여러 유산들이 함부로 다뤄지는 것을 보면 정말 안타까운 마음이다. 있는 것도 잘 보존하지 못하면서 순교자나 조상의 업적을 기린다고 온갖 치장을 하는 것은 모순이 아닐까. 본당에서도 사목자가 바뀔 때마다 성당 건물 구조나 성물 등이 자주 바뀔 때가 있다.
『아들아, 어떠한 이유로든지 선조들이 애써 마련해놓은 유산을 함부로 처분하거나 고치거나 또는 내 양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가면서까지 어떤 일을 하지 말아라. 악마가 그 일을 통해 네 마음에 무엇인가를 이루었다는 공명심이나 어떤 야욕을 불 붙여 놓기 때문이니 속지 않도록 극히 삼가라』(「사제생활의 길잡이」글리디우스 아르비세네의 글 가운데)서로가 해놓은 것을 인정해주고 신자들의 부담을 지우기보다는 가난한 이웃을 위해 교회가 나서는데 더욱 투자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만의 멋이 우러나는 그런 유산을 보존하고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한 일일듯 싶다. 또 『바쁘다 바쁘다』만 할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고해성사와 영성체에 충실해야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돌멩이를 발로 차면 발이 아프다. 자식과 부모가 멀어지면 자식이 더 아픈 법. 하느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우리는 더욱 열심히 생을 꾸려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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