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수단에서 선교중인 살레시오회 이태석 신부가 Tonj에서 생활하며 겪은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담긴 편지를 보내왔다. 이신부는 이 편지를 통해 현지인들의 암울한 삶의 이야기들을 전하며 한국교회 신자들의 적극적인 도움을 호소하고 있다. 이신부의 사목에 대한 열정과 소중한 체험이 담긴 편지를 소개한다. 〈편집자〉
저는 작년 12월 초에 여기 Tonj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이곳에 도착하자 마자 이곳 살레시오 회원이 진료소라고 준비된 흙과 대나무로 지은 세 칸짜리 움막으로 안내를 해서 갔었는데, 건물을 보자 마자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들어가는 입구는 허리를 90도 이상 굽혀야 할 정도로 낮고, 안으로 들어간 뒤 30초 정도는 기다려야 뭔가가 보이기 시작하는 아주 어두운 곳이었습니다.
찬찬히 살펴보니 그래도 진료소라고 대나무로 얼기설기 엮어 만든 것이라 볼 품은 없었지만 침대는 하나 놓여있었습니다.
이런곳에서 앞으로 환자들을 보아야 하나 생각하니, 망막하기도 했고 서럽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허탈하게 서있기도 잠시, 밖에서 웅성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서 너 명의 남자들이 담요로 싸인 환자 한명을 막 진료소 앞에 내려놓고, 사람 죽어간다고 도와달라며 난리를 치고 있었습니다. 임신 5개월에 자연유산으로 죽은 태아를 분만하고 하혈이 멈추지 않아서 급하게 실려온 환자였습니다. 피를 얼마나 흘렸는지 얼굴이 창백하다 못해 거의 백인의 얼굴 같았습니다. 혈압기를 부탁하니, 어디서 가져왔는지 10분이 지나서야 먼지가 가득 쌓인 구식 혈압기를 보조 간호사라고 하는 직원이 맨손으로 먼지를 쓱 훔치며 건네 주었습니다. 혈압을 측정하라고 부탁하고 맥을 짚어보니 아득히 먼 약한 맥이었습니다. 혈압을 재던 간호사가 "Blood pressure is OK"라고 약간 더듬거리며 알려주었습니다. 이상하다 싶어 혈압기를 뺏어 들어 직접 재어보니 혈압이 60이하 였습니다. 60이하의 혈압을 정상이라고 보고하다니 하지만 혈압이 너무 낮아 그 간호사에게 화를 낼 틈도 없이 급히 링거를 가져오라고 부탁하고 검진을 해보니 태반이 아직 자궁 경부에 꽉 막혀 나오지 않고 있는 상태였고 자궁의 수축은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아마 또 다른 10분이 흘렀습니다) 간호사가 또다시 먼지와 거미줄에 싸인 포도당 용액을 손으로 훔치며 건네 주었습니다. 자궁수축제를 근육주사로 놓고 포도당을 주사하기 위해 토니켓(노란 고무줄)을 부탁하니 그것마저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다른 한 사람이 손으로 환자의 팔을 누른 채 혈관을 겨우겨우 잡아 주사바늘에 연결 했습니다. 정말 어느 하나 제대로 되어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눈물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나고 황당했던 첫날이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미사 후에 진료소쪽으로 가보니 일찍부터 많은 환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정말 또 다른 한숨 거리였습니다. 대부분의 환자들이 군데군데 뜯어진 때에 절인 누더기 옷을 입은 채 그냥 맨 흙 바닥에 앉아 있었고 몇 달은 씻지 않음 직한 사람들도 꽤 있었습니다. 그 앞으로 지나가는데 어찌나 악취가 심한지 이런 상상을 초월하는 지저분한 사람들을 손으로 직접 어루만져야 한다고 생각하니 다시 한 번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결핵으로 오랫동안 고생한다는 한 소년이 있다길래 그가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복부결핵인지 복수로 인해 배는 임산부처럼 불러 있었고 복부의 군데군데서 고름이 철철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집이 너무 멀어 진료소 앞 공터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창고라고 하기보다 더 지저분한 진료실, 최악의 열악한 환경들, 역겨운 냄새를 풍기는 지저분한 환자들, 먼지로 가득찬 소독되지 않은 기구들,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이 없는 상황들, 이 모든 것들을 예상은 했지만 직접 코앞에 닥치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지 엄두가 나질 않았습니다.
그 분께 매달리기라도 하면 조금 나을까 싶어 작은 감실이 있는 소성당으로 가니 전기가 없는 곳이라 감실등 조차 없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알아서 하십시오』라고 한 마디 기도 올리자마자 어둠 속 어디서 나타났는지 말라리아 모기들이 독기를 품고 팔다리를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 환장할 뻔 했습니다. 아니 환장했습니다. 하지만 얼음은 녹기 마련인 모양입니다. 자연유산으로 하혈하던 아주머니가 혈압이 조금씩 좋아져서 퇴원을 하는데 남편이 찾아와 죽는 줄 알았는데 살려줘서 고맙다며 날씬한 아프리카 토종 닭 한 마리를 놓고 가고, 수족 관절의 고름 때문에 걷지 못하던 청년이 좋아져 제 발로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며, 복부 결핵으로 배 불뚝 이었던 아이가 날씬해져 가고 있는 등의 조그마한 결실들이 얼었던 나의 마음을 조금씩 녹여가고 있습니다.
어렵기 그지 없지만 나의 작은 희생으로 적지 않은 사람들이 기쁨을 맛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씩 힘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주에 흙 벽돌과 약간의 시멘트로 두 평 남짓한 그럴싸한 진료실 겸 처치실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무엇보다도 허리를 굽히지 않아 좋고, 또 지붕을 투명 쓰레트로 얹어 놓았더니 밝게 볼 수 있어 좋습니다. 이 곳에 나환자들이 약 700명 정도가 있습니다. 자기들끼리 몇 십 명씩 숲속에 작은 마을을 이루어 여기 저기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매 주 토요일과 주일마다 미사와 진료를 위해 그 곳을 돌아가면서 방문하고 있습니다. 이 곳에는 교통수단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그 곳에 가지 않으면 그들이 며칠동안 걸어야 하기에, 육체적으로 조금 피곤하기는 하지만 매 주 지프차를 몰고 즐겁게 다니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도착하면 얼마나 반가워 하는지 모릅니다. 오랜만에 미사도 드릴 수 있고, 약간의 설탕과 소금, 쌀 등을 얻을 수 있으며 진료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도착해서 경적을 울리면 어디서 나오는지, 환호를 지르며 달려오는 아이들, 발가락이 없어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걸어오는 사람들, 꼬마들의 긴 지팡이에 안내되어 오는 맹인들 등, 모두들 작은 희망으로 바쁘게들 걸어 나옵니다. 돈으로 따져보면 500원도 채 안 되는 코프시럽 몇 방울, 클로로퀸(말라리아약) 세 알, 아스피린 세 알을 손가락이 없어 손목으로 받아 들고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히 여기는지 모릅니다.
1년에 몇 천억원 어치의 쓰레기를 만드는 우리나라나 유럽의 여러 나라들을 생각하면, 세상이 불공평해도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아파옵니다. 우리가 버리는 쓰레기의 1% 만이라도 이들과 나누면 이들이 얼마나 많은 혜택을 입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굶주림이나 갖가지 질병 앞에서 너무 쉽게 죽어가는 이 곳 사람들, 좋은 병원에서 좋은 약으로 좋은 치료를 받으면 운명을 늘일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죽음에 저항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운명으로 너무 쉽게 받아들이는 이 곳 사람들을 볼때면 또다시 마음 한 구석이 저려옴을 어떻게 할수가 없습니다. 이 병원 저 병원 옮겨 다니며 어렵게 어렵게 죽어가는 우리의 세상과 비교를 하면, 해도 해도 너무한 불공평한 세상임을 느낍니다.
크나큰 욕심은 버리기로 했습니다. 단지 세상의 남는 것의 1%를 없는 세상으로 연결하는 작은 다리정도만 되어 보기로 했습니다. 그리스도교적인 형제적 사랑을 연결해주는 작은 고리정도만 되어 보기로 했습니다.
혹시 신부님께서 관구 차원이나 그 외에 도움을 주실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도움을 청하고자 합니다.
지금 저는 이곳 교구의 모임 때문에 케냐의 나이로비에 와 있습니다. 2월초까지 케냐에 있을 예정입니다. 그 동안에 저의 E-mail 주소 (sdbgiolee@ yahoo.com)로 연락이 가능합니다.
수단의 제가 있는 곳과의 유일한 연락 방법은 아직까지는 인공위성 전화 밖에 없습니다. 전화 번호는 00871 762601692 입니다. 항상 열어 놓는 것이 아니라 일요일 한국 시간으로 저녁 9시부터 9시30분까지만 열어 놓고 있습니다. 참고로 케냐 나이로비에 있는 관구 본부의 은행구좌를 알려드립니다.
구좌명: 살레시오회 아프리카 후원
은행명: 국민은행
계좌번호 : 090-25-001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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