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제도에 가장 민감한 기업과 노동자는 물론 가깝게는 학생들까지 「주5일 근무」로 파생될 「주5일 수업」으로 들뜨고 있다. 그만큼 「주5일 근무제」는 전 사회구조를 뒤바꿀 정도로 엄청난 파급력을 지니고 있다. 이렇게 모든 이들의 촉각이 쏠리고 있는 것은 '주5일 근무제'의 파고가 이런 가시적인 부분에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이 몰고 올 삶의 변화는 가히 「혁명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혁명적 변화의 파도를 앞에 둔 교회의 대응은 없다고 할 정도로 침잠해 있는 상태여서 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장이 필요하다.
「주5일 근무제」라는 미증유의 태풍이 몰고 올 삶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한다면 그 결과는 단순한 조난(?)이 아니라 파국일지도 모른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이미 그 파국을 경험한 바 있는 선진교회가 불길한 「일기 예보」를 적잖이 보내오고 있지만 교회는 어떤 사목적 대안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 돛대를 바로 세우고 돛이 바람을 이겨낼 정도로 낡지나 않았는지 유심히 살펴볼 일이다.
■ 현황과 문제점
전통적 그리스도교 국가인 독일에서 교회가 비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이미 60년대 들어 주5일 근무제를 시행하기 시작한 독일교회의 이런 모습은 당시 교회가 보인 안이한 대응에 기인한 바가 적지 않다.
주5일 근무로 인한 신자들의 생활패턴 변화가 본격화하는 동안 교회는 이에 대한 적절한 사목대안과 프로그램을 내놓지 못했던 것이다. 교회가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 신자들은 늘어난 시간을 선용하기 위해 교회 밖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교회는 한 차례 신자들을 외부로 빼앗기고 말았다.
그러나 밖으로 향하던 신자들은 오래지 않아 영적인 갈증으로 다시 교회로 발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런 신자들의 갈망에 교회는 또 한발 늦게 따라가고 말았다. 그렇지만 이미 그 걸음은 따라 잡기 힘든 길로 가시화되고 있다. 교회가 미처 대안을 세우지 못하고 있는 사이 다양한 형태의 「유사종교」와 영적 체험을 제공하는 「대체종교」들이 나타나 교회의 빈자리를 채워가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이나 프랑스에서 번져가고 있는 요가나 참선법, 불교 의식은 우리 교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특히 교회가 청년들에 대한 적극적인 교육을 게을리 하면서 독일의 젊은이들에게 교회는 권위적인 사회를 유지하려는 제도권의 산물로 인식되어 오고 있다. 이로 인해 젊은이와 교회와의 거리는 날이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이런 현실은 지난 2년 동안 60만 명이 넘는 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상황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더 주의깊게 살펴야할 것은 불변할 것 같던 「1인 1종교」의 전통마저 깨지고 있는 최근의 현실이다. 교회가 미온적으로 대처하며 신자들의 영적인 갈망을 채워주지 못하자 요가를 즐기던 사람이 이제는 주말에는 참선을 하거나 인디언 관련 세미나에 참석하며 영적인 우물을 찾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조합 종교」적인 삶이 번져 나가면서 교회가 설자리는 점점 더 좁아져 가고 있다. 이에 따라 독일의 신학자들은 「성전이 비는 것을 한탄할 게 아니라 현대인들이 찾는 종교성을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하라」는 메시지를 보내오고 있다.
「깨어 있는 자세」를 강조하던 교회가 오히려 그런 모습을 견지하지 못함으로써 겪는 오늘의 어려움을 한국교회는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의 모습
주5일 근무제가 가시화되면서 한국에서는 기이한 모습이 나타나기도 했다. 개신교계의 유력한 한 연합단체가 주5일 근무제가 십계명에 어긋난다며 반대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이들 단체의 논리에 따르면 십계명에 따라 주6일을 열심히 일하고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내야 하는데 주5일 근무제가 도입되면 소비향락문화를 부추기고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기 어렵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단체의 속내는 다른 데 있다. 이들의 염려는 주5일 근무제가 되면 교회가 많은 신자들을 야외로 빼앗길 것이라는 데 있다. 유럽교회들이 속속 문을 닫은 경험이 단축 근무제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다시 말해 주5일 근무제가 교회 쇠퇴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분석은 개신교회 내에서도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 적지 않다. 실제 주5일 근무제가 유럽사회에 자리잡기 전에 이미 유럽교회는 「신학적 자유주의」가 확산될 대로 확산돼 있었으며 오히려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교회의 대응이 경직돼 있어 문제를 초래한 면이 크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주5일 근무제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면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대책을 세워 새로운 도약의 발판으로 삼는 슬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런 가운데 거대한 폭풍을 눈앞에 둔 교회는 태연스럽기까지 하다. 마치 태풍의 눈에 들어 그 태풍의 존재마저 잊은 양.교회 내 어디서도 주5일 근무제를 대비한 적극적인 사목대안을 내놓는 곳이 없다. 정부의 정책을 적극 수용한다는 입장만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을 뿐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초기에 적잖은 신자들을 야외로 빼앗김으로써 사목에 어려움을 겪을 것은 명약관화하다.
서울대교구 노동사목회관 관장 도요안 신부는 『유럽교회와 한국교회의 상황은 많이 달라 적잖은 시행착오가 있을 것』이라면서 이에 대한 적극적인 고민과 모색을 강조하고 『주5일 근무제 사회 속에서 사는 신자들이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선택의 폭을 넓혀 나가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주5일 근무제로 예상되는 종교활동을 포함한 주말문화의 변화에 교회가 적극적인 사목의지를 지니고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한다. 특히 가족이나 부부 중심의 프로그램 등 가족단위의 사목이 보다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 개념과 필요성
휴식은 하느님 안식에 초대되는 것
프랑스가 66년 전인 1936년부터 실시해오고 있고,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30년 이상 실시해오고 있는 주5일 근무제는 세계적인 흐름이다. 가까운 중국도 60년대부터 실시하고 있는 이 제도는 OECD국 가운데서 오로지 우리나라에서만 논란을 빚고 있다.
노동과 휴식에 대한 성서적 조명
이스라엘인들은 휴식을 삶 자체를 위한 시간이기에 「거룩하고」「복된」것이라고 여겨왔다. 곧 노동을 하기 위해 쉬는 것이 아니라, 휴식을 하기 위해 노동을 한다고 하는 것이 히브리 전통사상이다.
흔히 일하기 위해서 쉰다고 생각하지만, 성서의 통찰에 따르면 휴식하기 위해 노동한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노동은 예사로운 일상생활이지만 휴식은 「하느님의 안식」에 초대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서 상에서 휴식은 해방을 상징한다. 이스라엘의 안식일은 노동으로부터의 해방만이 아니라 이집트 종살이에서의 해방을 의미하고 하느님께서 천지창조 후 7일만에 휴식하신 것을 따르는 것이다. 결국 휴식한다는 것은 자기 안에 하느님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요,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인간은 지상의 휴식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주실 영원의 안식을 미리 맛보고 있는 것이다.
토요일은 여가 주일은 성당
교황청 이주사목평의회는 관광사목 지침서를 통해 「휴식의 참된 의미는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는 시간이며 다른 사람들을 위해 특히 가족들을 위해 봉사하는 시간」이라고 밝힌 바 있다.
주5일 근무제로 많은 이들이 맛보게 될 「주 이틀의 휴가」는 가정을 살리고 나아가 교회를 새롭게 하는 길로 이어질 수 있다. 이틀을 쉰다는 의미는 닷새를 직장에서 일하고 이틀은 가정이나 자신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 일과 휴식을 조화시키며 선용할 수 있는 제도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토요일은 「여가생활」, 주일은 「종교생활」이라는 인식을 교회가 심어나가야 될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 주5일 근무제 직장 다니는 전대진씨의 한 주일
“잃어버린 삶의 다른 면을 새롭게 그려볼 터”
『이제서야 좀 사람같이 산다는 생각이 들어요』
전자상거래를 하는 벤처회사를 다니는 전대진(아우구스티노·34·서울명동본당)씨는 토요일에 느지막이 일어나 밀렸던 집안 일을 가족들과 함께 하는 일과로 자신에게 주어진 이틀의 휴가를 시작한다.
지난해 하반기 회사가 주5일 근무제를 도입했을 때만 하더라도 한동안 어쩔 줄을 몰라 하던 것과 비교해보면 눈에 띄게 달라진 모습이다. 여섯살 난 아들 해성이가 만들어 달라는 종이비행기도 접어주고 이제 곧 첫돌을 맞는 딸 주형이를 데리고 놀아주는 여유를 갖게 됐다. 늘 모자라던 잠으로 이틀을 보내던 몇 달 전과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 전대진씨와 가족들
『얘기할 시간이 많아져서 좋아요』
초등학교 교사인 부인 김경희(베로니카·33)씨가 가장 좋아하는 것도 남편이 가족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늘어난 것이다. 토요일 오후면 시간에 쫓기지 않고 가끔씩 가족나들이를 다녀올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 것도 달라진 모습이라고 자랑한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났다는 사실입니다』 대학교 다닐 때만 하더라도 봉사활동이라면 빠지지 않았던 자신의 모습을 새롭게 발견하게 된 것이다.
『뜻을 모을 수 있는 친구들을 하나둘 모아 나가면서 잃어버리고 살던 삶의 다른 면을 새롭게 그려보고 싶습니다』 주5일 근무제는 전씨와 그 가족의 삶을 그렇게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