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설, 추석 명절이 다가오면 집안에서 제사를 지내야 하는 신자들은 약간의 당혹감을 겪게 된다. 그 까닭은 아직 한국 교회 내에 통일된 상제례 예식안이 없기 때문. 한편 그리스도교가 이 땅에 처음 전파됐을 때 신앙의 선조들이 조상 제사를 거부한 것은 천주교 박해의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하며 박해를 정당화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렇듯 조상 제사 문제는 한국교회 초창기부터는 물론이고 아직까지도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조상제사 문제의 본질과 한국교회사 속에서 제사가 어떠한 의미 변천을 겪어왔는가를 알아본 후 그 해결의 방향을 가늠해보기로 한다.
조상제사 문제는 유교문화권 안에서 가톨릭 교회가 복음의 순수성과 보편성을 유지하는 가운데 어떻게 전통문화와 조화, 토착화를 이룰 것이냐 하는 데서 비롯됐다. 천주교가 전래되던 당시 한국과 중국 등 동아시아권에서는 생활 전반에 걸쳐 유교사상과 문화가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고 부모와 공자에게 제사를 드렸다. 이러한 동양인들에게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왜곡되지 않게 전하는 것이 가톨릭 교회가 선교과정에서 지닌 어려움이었고 이것이 곧 조상제사 문제의 시발점이다.
조상제사 문제의 본질과 다양한 함의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중국의 선교과정에서 발생한 의례논쟁(儀禮論爭)의 성격과 경과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국에서 발단이 된 소위 의례논쟁이란 유교식 제사 등을 허용할 것이냐는 문제에 대해 가톨릭 교회가 약 100여년간 벌였던 논쟁을 말한다.
16세기 말 최초로 중국선교에 나섰던 마태오 리치 등 예수회 선교사들은 적응주의적 입장에서 제사를 허용하고 있었으나 이보다 반세기 늦게 들어온 도미니코회와 프란치스코회는 이 선교방침에 반대해 교황청에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논쟁이 시작됐다. 파리외방전교회의 중국 입국으로 논쟁은 몇 차례 더 가열됐고 교황 클레멘스 11세는 1715년 칙서를 통해 드디어 조상 제사를 금지하기에 이른다. 교황 베네딕도 14세는 1742년 이를 재천명하며 모든 선교사가 이에 서약할 것을 선포했고 이 문제에 대한 더 이상의 논쟁을 금했다.
교황청이 제사를 금지한 이유는 당시 제사 등의 의식에서 미신적인 요소를 분리해 내는 일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교황청의 선교정책이 토착화보다는 신앙의 순수성과 통일성을 중시한 것 등 많은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국에서의 조상제사 문제는 제사를 폐지하고 신주를 불태워버린 소위 폐제분주(廢祭焚主) 사건이 발단이 됐고 이는 이후 100여년간 천주교 박해의 결정적 원인으로 작용한다. 당시 철저한 유교문화권 안에서 천주교인들이 인륜을 저버린 자들로 낙인찍히는 것을 무릅쓰고 제사를 거부한 까닭은 1790년 조선에 전해진 북경 구베아 주교의 조상제사 금지명령 등 당시 교황청의 방침에 따랐기 때문이다.
이렇듯 약 200여년간 엄격한 규제 하에 금지됐던 조상제사는 20세기 들어 교황청의 토착화에 대한 재인식과 동양문화에 대한 이해 확대 등으로 해빙기를 맞게 된다. 교황 비오 11세는 1935년 공자 존경의식을 허용했고 1936년에는 일본의 신사참배를 허용하면서 적응주의 원칙이 교회의 선교정책임을 드러냈다. 더 나아가 교황 비오 12세는 1939년 '중국 예식에 관한 훈령'을 통해 제사에 관해 상당히 관용적인 조치를 취했다.
이 훈령에 준해 한국 주교단이 정한 상례와 제례에 관한 세부지침에 따라 시체나 무덤, 죽은 이의 사진이나 이름이 적힌 위패(신위라는 글자 없이) 앞에서 절을 하고 향을 피우며 음식을 올리는 행위는 현재 허용되고 있다.
이같은 역사적 사실에 대해 최기복 신부는 논문 '한국 전통문화와 천주교회의 충돌'을 통해 『교황청의 기본 입장 차이로 제례가 거부되기도 하고 수용되기도 했다』며 『특히 조상 제사 문제와 관련한 초기 천주교회의 난은 서구 그리스도교가 우월의식을 갖고 동양문화를 경시하고 단죄하려는 자세로 임한 결과』라고 밝힌 바 있다.
지금과 같은 완화 조치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에서 조상제사 문제는 아직 그리스도교 선교와 토착화를 위해 연구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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