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차 세계 병자의 날(2월 11일)을 맞아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에 있는 성가복지병원을 찾았다. 가난한 이들을 무료로 치유해주며 하느님 사랑을 널리 전하는데 앞장서는 성가복지병원의 연혁, 활동 등을 소개한다.
돈이 없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자본주의 사회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 말라』는 복음 말씀은 때론 딴 세상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렇기에 더욱, 우리 사회에서 무료병원이 10년 이상 망하지 않고(?)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은 「기적」처럼 느껴진다. 바로 이 「사랑의 기적」이야말로 우리가 증거할 수 있는 이 시대 유일한 기적인 것.
아직도 인근에 달동네가 남아있는 성북구 하월곡동에 위치한 성가복지병원. 서울성가소비녀회가 지난 90년 개원한 이 병원은 행려자, 극빈자, 무의탁자 등 가난한 이들을 위한 무료병원이다. 가난만으로도 힘겨운 이들이 병고를 호소할 길이 없을 때 성가복지병원은 이들에게 말 그대로 기쁜 소식, 복음으로 다가섰다.
가난한 이들을 치료한다는 수도회 창설 정신에 따라 처음 이 병원을 무료로 전환할 것을 결심하는 과정에서는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옳은 일이라는 건 다 아는 바였지만 현실 문제가 두려웠고 교회 어른들은 『수녀님들이 세상물정을 몰라 그런다. 좋은 뜻이긴 하지만 좀더 신중히 재고해봐라』며 말리기도 했다. 결국 수도회는 6개월 이상의 오랜 기간에 걸쳐 전 회원의 기도를 통해 무료병원으로 운영한다는데 뜻을 모았다.
개원 이후 지난 10여년간 성가복지병원을 다녀간 환자는 외래환자가 17만여명, 입원환자가 무려 31만여명에 이른다. 현재 병상수는 호스피스 병동 24병상을 포함해 100병상에 달하며 하루 평균 외래환자는 100여명, 입원환자는 90여명 정도. 내과, 외과, 정형외과는 전문의가 매일 진료하고 치과는 주 3회, 소아과, 신경외과, 산부인과 등은 토요일 오후 자원봉사자 전문의가 진료한다. 진료 의사가 많은 토요일에 이곳을 찾는 환자수는 평일의 두 배인 200여명 선이고 응급환자나 대수술, 정밀검사를 필요로 하는 환자는 가톨릭중앙의료원 산하 병원 등에 의뢰해 치료한다.
성가복지병원이 지금까지 운영될 수 있었던 것은 수도회의 결단을 뒷받침 해 준 보이지 않는 이들의 사랑과 헌신으로 가능했다. 병원의 정식 직원은 전문의 3명을 비롯해 간호사, 약사, 영양사, 임상병리사 등 50여명. 전문 의료활동에서부터 청소, 목욕 등 노력봉사에 이르기까지 병원 구석구석에는 1000여명에 달하는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닿아있다.
옷, 음식, 약 등 온갖 물품과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후원자들의 역할 또한 만만찮다. 7200여명의 후원회원들은 운영비의 반 정도를 부담하고 비정기적인 후원금과 수도회원들의 십일조를 더하면 재정 운영에 큰 어려움은 없다.
성가복지병원은 가난한 이들의 전인적인 치유를 목적으로 그들이 신체적인 건강 뿐 아니라 인간성과 인간관계를 회복하는데 치료의 의미를 두고 있다. 퇴원 후에 마땅히 갈 곳 없는 이들을 위해 쉼터와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는 까닭은 그런 이유에서다. 행려자, 빈민들에게는 직업알선을 하고 나아가 독거노인, 외국인노동자, 탈북자에게까지 진료 기회를 넓힐 계획이다.
성가복지병원에는 사랑으로 꾸려가고 사랑을 나누는 곳인 만큼 아름다운 사연들이 많다. 집행유예로 풀려난 폭력 전과자가 몸과 마음의 건강을 회복한 후 건실한 가장이 되어 찾아온 일, 자기처럼 가난한 이들을 위해 써달라며 소중한 돈을 전해준 환자….
그러나 가장 낮은 자리에 있다보니 그늘 또한 두터운 법. 알콜중독으로 병원을 들락날락하는 환자들을 볼 때면 안타까운 한편 소모적인 일이라 생각돼 갈등을 느낄 때도 많다. 하지만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이들과 함께 했던 예수님을 생각하며 다시 힘을 얻는다고 이곳 수녀들은 전한다.
『별 볼 일 없는 일이라 생각될 수도 있어요. 저희가 이 세상의 가난한 이들을 모두 치료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사회구조를 변화시키는 것은 더군다나 불가능하죠. 하지만 우리의 작은 일이 한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는 생각, 그에게는 전부가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오늘도 가난한 이들을 초대하고 있습니다』 성가복지병원장 홍석임 수녀의 말이다.
※문의=(02)940-15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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