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사회에서 주5일 근무제가 안착되기 시작한 1960년대 이후 이 제도는 다양한 소비패턴의 변화로 가시화됐다. 실제 주5일 근무제를 처음으로 채택한 포드자동차의 경우 노동자들이 자신이 생산한 자동차를 타고 즐길 수 있도록 '시간'과 '돈'을 함께 보장해주었다. 소비문화가 주5일 근무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주5일 근무로 인한 레저산업의 성황을 비롯, 가족단위 시설의 급속한 확산은 애초 상상도 하지 못한 것이었다. 가족문화의 확산으로 어린이도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기 시작하는 등 주5일 근무로 인한 생활양식의 변화는 의식구조 변화마저 낳는 등 그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그 변화의 소용돌이를 거쳐 오늘에 선 선진교회의 모습은 우리교회에 시사하는 점이 적지 않다.
= 프랑스 교회
『세상 속에서 성령의 뜻에 따른다』
전 국민의 85%이상이 가톨릭신자이면서도 세속화의 길을 걷고 있는 프랑스교회의 고민을 담은 이 말은 사목방향을 상징해주는 말이기도 하다. 교회가 여전히 힘을 발휘하는 세상에서 사회의 세속화를 현실로 수용하고 함께 한다는 입장이다.
세계에서 휴일이 가장 많은 프랑스의 세속화 과정에서 교회는 적잖은 영향력을 발휘했다. 신자들의 삶을 좌우하는 국가적 사안에 대해 교회가 사목적 입장을 밝히고 신자들은 이를 적극 수용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프랑스 사회의 특징이기도 하다. 르몽드나 리베라시옹같은 일간지나 유력 언론들이 종교면을 고정적으로 운영하며 교회의 입장을 반영하는 것은 프랑스에서는 당연한 모습이다.
지난 98년 근로시간을 주 35시간으로 줄이는 과정에서도 교회가 적잖은 영향력을 발휘한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일자리 나누기(work-sharing)를 통해 실업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신자들의 어려움을 함께 하려는 교회의 뜻이 반영된 것이다. 또 5일제 수업에서 더 나아가 어린이들이 교리공부를 할 수 있도록 수요일에 학교가 쉬도록 법제화한 교회의 노력이나 산하 학교에서 주4일 수업을 운영하며 체험학습을 지원하고 문화·놀이공간 확보하는 데 애쓰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이렇듯 교회가 세속에서도 신자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젊은 세대는 교회에서 멀찌감치 서있는 모습이다. 전체 신자 가운데 10%미만이 성당을 찾는 가운데 젊은이의 신앙의식이 엷어져 가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음에도 교회는 이를 대세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에 대해 90년대 초반부터 프랑스인들을 대상으로 교환사목을 한 바 있는 홍기범 신부(서울대교구)는 『주5일 근무제로 인한 개인주의화로 세속화가 가속화된 면이 있다』고 밝힌다.
본당에서부터 체계적인 성소 관리가 이뤄지는 한국 교회에서 보면 프랑스 교회는 젊은 신자들에 대해 손을 놓고 있는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성소자가 거의 없다. 이 때문에 전체 사제의 평균연령이 68세(2000년 현재)를 넘고, 1명의 사제가 3∼4개의 본당을 돌며 미사를 봉헌하는 것은 이미 일상화된 모습이다.
이런 가운데 평신도 역할의 활성화로 돌파구를 찾아나가는 모습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신부가 없는 성당은 평신도가 관리하거나 책임을 맡는 것이 보통이고 적잖은 교구가 종신부제직을 활성화하는 등 평신도의 역할 강화에 나서고 있다.
파리에서 살고 있는 한 신자는 『시장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세대가 젊은이들인데 이에 비해 교회는 늘 뒤쳐진 존재로 인식되는 게 교회와 멀어지는 이유인 것 같다』고 말하고 『교회는 청년들을 수혜의 대상으로만 여길 뿐 아이디어의 저수지라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교회 안에서 향유할 수 있는 문화가 부족한 가운데 젊은이의 가능성을 살려내려는 노력이 한계에 부딪치고 있는 프랑스 교회의 모습은 교회 밖에서 자신들만의 문화를 찾고 있는 우리에게도 의미심장한 메시지로 다가온다.
= 미국교회
가톨릭 신자 6200만명(23%, 2000년 미국 교회연감)에 남침례교회(1072만9000명), 연합 감리교회(840만명) 등 58%에 이르는 개신교 신자를 합치면 그리스도교 국가라 해도 손색이 없을 미국. 그러나 미국에서도 종교 다원주의는 대세로 읽히고 있다. 바하이교, 불교, 이슬람교, 자이나교, 유다교, 시크교, 인디안 무속종교 등 8개의 타종교 통계가 교회연감에 실릴 정도로 유의미한 세를 형성해가는 미국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도전은 유럽교회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주말이면 상가가 철시하고 가족들이 교회에 나가는 게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그러나 주5일 근무제가 자리잡기 시작한 60년대 이후 세속문화의 거센 도전에 부닥치면서 신자들이 산이나 바다로 빠져나가 교회는 텅텅 비기 시작했다. 문을 닫거나 교회건물을 파는 교회가 늘어났다. 청교도 전통에 따라 자신의 집을 짓기 전에 먼저 교회를 세운 신앙도 주5일 근무제가 몰고 온 변화의 바람에는 허물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바람은 인간이 여태껏 향유해보지 못한 「자유」를 한껏 부풀려 놓은 것이다. 공동체 중심에서 개인중심의 여가문화를 강조하는 사회분위기가 일시에 확산된 모습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미국의 종교 전문조사기관 바나리서치그룹(BRG)이 지난해 1년 동안 실시한 각종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한 「올해의 가장 흥미로운 결과」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그리스도교 신앙이 미국인들의 생활에 있어 여전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전통적인 신앙이 퇴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보고서에 나타난 결과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은 2000년대 말쯤이면 5000만명에 달하는 미국인들이 교회보다는 인터넷을 통해 영적 체험을 추구하게 될 것이라는 조사다. 이와 함께 지난 98년 이후 교회의 재정이 눈에 띌 만큼 감소하고 올해도 지속적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은 도전적인 결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런 모습은 개인주의적인 자유분방한 신앙이 확산되면서 대체종교들이 전통적인 교회에 적응치 못하는 신자들을 빠르게 흡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미국 교회 정체성의 위기는 그들의 문화에 밴 「소비심리」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입맛에 맞는 신앙을 찾아 정통신앙이든, 뉴에이지운동이든 상관하지 않고 종교 사이를 오가는 것이다. 이런 종교 소비주의에 대해 종교사회학자들은 교회가 대형기업들을 앞다투어 모방하며 영성개발을 단순한 사목기술 개발로 혼돈하며 타협적으로 흐른 결과라고 비판한다.
BRG가 48개 주의 십대 614명을 대상으로 낸 「제3의 밀레니엄 십대」라는 십대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십대들은 신앙을 단지 세계관이나 삶의 양식의 배경을 이루는 많은 특질 중의 하나로 인식하고 있어 언젠가는 이같은 인식이 미래 교회의 문제로 등장할 것임을 예고해주고 있다. 또 십대들의 종교활동 참여가 영성적 갈구보다는 친구들의 권유에 의한 것이라는 통계는 소비문화에 깊게 편입되어가고 있는 우리 교회에도 도전으로 다가온다.
▲ 미국이든 프랑스이든 젊은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문화가 없는 교회는 침체되기 마련이다. 특히 소비주의에 물든 젊은 세대들은 종교도 입맛에 따라 골라 다니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사진은 미국의 소비주의를 상징하는 라스베가스와 프랑스 문화의 상징 에펠탑.
= 선진교회의 메시지
침체의 길을 걷고 있는 선진교회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은 교회 안에서 젊은이의 가능성을 살려내고 수용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자신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실현할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하는 것은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과 같이 자연스런 현상이다. 선진교회들의 이같은 모습은 여전히 젊은 세대를 교회의 주체로 보기 보다는 대상으로 보는 우리 교회에도 도전이 아닐 수 없다. 현대는 교회의 문화마저 선택의 대상, 나아가 시장의 상품으로 전락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선진교회들의 사례는 어떤 교회도 고립된 하나의 섬으로 남아 있을 수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선진사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종교의 다원화는 종교간 경쟁을 강화시킬 것이 분명하다. 안이한 대처가 낳은 오늘날 서구교회의 침체는 남의 일이 아니다. 곧 우리에게도 도전의 파고로 닥쳐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