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지침 마련은 고사하고 논의의 장조차 없어
「주5일 근무제」의 본격적인 시행을 앞둔 우리 사회는 물밑에서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양상이다. 이런 모습의 밑바탕에는 「주5일 근무제」가 몰고 올 변화의 바람이 위기일 뿐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향한 변모의 호기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 변화를 절호의 기회로 삼기 위한 각계각층의 모색은 「정중동(靜中動)」의 모양새다. 이런 가운데 교회는 뜻있는 이들에게 불안감마저 심어줄 정도로 조용하다. 교회 차원의 사목적 지침 마련은 고사하고 논의의 장조차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은 이제 답답함을 넘어서 위기감으로까지 증폭되고 있다.
한 여론조사기관이 지난해 만20세 이상 성인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주5일 근무제 실시 후 휴일 활용방안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에 따르면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진다는 의견이 55.1%로 가장 많았다. 취미생활, 능력개발, 휴식 등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이는 가족단위 프로그램 개발의 필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국내 각계각층의 준비 상황과 전문가들의 제언 및 그 대안을 살펴본다.
= 각계각층의 준비
산업계는 주5일 근무제로 인한 변화에 가장 능동적인 대처를 보이고 있는 곳이다. 뭐니뭐니 해도 그 파장에 직접 노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주5일 근무제에 반대를 하는 한편 변화에 대비해 발빠른 대응을 보이고 있는 산업계의 모습은 산업구조는 물론 생활패턴의 변화마저 이끌어내고 있다.
지난해 정부가 근로자 100명 이상인 기업 5053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기업 10곳 가운데 한곳 꼴인 9.8%가 이미 주5일 근무제를 실시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500인 이상 1000명 미만 기업 가운데서는 19.4%, 1000명 이상 기업 중에는 19.3%가 주5일 근무제를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기업규모가 클수록 이 제도가 빠른 속도로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여행업계의 경우는 「표정관리 하기가 힘들다」는 게 솔직한 표현이다. 일본 중국 등 앞서 주5일 근무제를 실시한 나라의 사례를 볼 때 국내외 관광객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여행객이 늘면서 도로망, 숙박, 관광·서비스업 등 관련 산업이 급성장, 경제에 활기를 더해주고 있다.
은행권의 경우는 일찌감치 주5일 근무제를 염두에 두고 시장선점 경쟁에 나서고 있다. 금융계에 따르면 각 은행들은 고객들이 많이 찾는 제주도 등 관광지를 중심으로 지점개설에 나서는 등 적극적인 공략을 펼치고 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여행사와 네트워크를 구축, 고객들에 대한 여행정보 및 현지 가이드 제공 등의 서비스를 선보이는 것은 물론 여행사 지분인수를 통한 제휴를 추진하는 곳도 늘고 있다.
이렇듯 대부분의 산업분야가 주5일 근무제 사회를 염두에 둔 각축전에 이미 돌입해 있는 상황이다.
개신교는 종교계를 통틀어 주5일 근무제에 대해 가장 활발한 준비를 하고 있다. 이미 5∼6년 전부터 교단 차원의 대책마련에 돌입한 곳이 적지 않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이들 교단의 연구활동이다. 교단 차원에서 선진교회를 대상으로 한 자료 수집활동을 비롯해 연구활동 지원, 목회 모델 개발 등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신학교를 중심으로 석·박사 논문이 9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나오고 있다. 주5일 근무제 사회를 대비한 영성적 토대를 닦고 있는 모습도 쉽게 흘려 넘길 일이 아니다.
이 같은 개신교의 준비 작업은 최근 들어 부쩍 활기를 띠고 있다. 급격하게 변화될 선교환경에 대처하기 위해 기독교가정사역연구소는 지난해 10월 수십 억 원을 들여 2003년 7월 완공을 목표로 주5일 근무제에 대비해 범사회적인 선교사업을 펼칠 수 있는 연구기관인 「훼밀리아」의 기공식을 가진 바 있다. 또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등은 주말을 이용해 여행을 떠나려는 신도를 교회로 끌어들이기 위한 대안으로 「전원교회」나 「가정교회」, 「주말교회」등의 개설을 제안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도심교회와 연계해 가족 단위의 선교사업에 주력할 전원교회나 주말교회 200여 곳 이상이 이미 인터넷사이트까지 개설해 홍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한마디로 개신교의 전략은 「여행가는 신도 전원을 교회로 잡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도심교회와 농촌교회간의 자매결연도 적극 추진, 주말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이런 전원-도심교회간의 결연사업은 도심교회는 신도들에게 보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서비스할 수 있고 전원교회는 재정을 확충할 수 있는 방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계획대로라면 지난 90년대 중반 이후 종교·생태공동체 운동이 활기를 띠면서 농촌에 들어서기 시작한 「전원교회」나 「주말교회」를 이제는 주5일 근무제에 대비한 선교의 전초기지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지난해 12월초 대표자회의를 열어 주5일 근무제 시행 이후 선교 대책을 전담할 부서의 설치와 선교프로그램의 통일된 방향성을 각 교회에 제시하기로 의결하고 각 교회에서 시행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개발, 보급하기로 하는 등 선교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안간힘을 기울이고 있는 모습은 둔감하기까지 한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다.
불교계의 경우도 주말에 관광지를 찾아 떠나는 불자들의 이탈로 인한 일요법회의 위축과 여가를 바람직하게 보내려는 자원봉사의 증가 등을 예상하고 다각적인 대안마련에 나서고 있다.
일본 불교의 사례수집을 통해 이미 곳곳에서 변화의 몸짓을 구체화하고 있다. 불자들을 위한 숙박시설을 완비하고 있는 일본의 동경 관음사, 가마쿠라의 사찰 밀집지역, 금각사 등 대형 사찰에 대한 연구를 통해 우리나라 사찰의 형편에 맞는 소규모 숙박시설을 갖추기 위한 투자에 눈을 돌리고 있다. 또 가족 단위로 1박2일 동안 아침 예불 등 산사의 일상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내놓는 등 물적 정신적 배려가 눈에 띈다. 특히 산과 들에 위치한 절의 입지적 조건을 십분 활용해 교세 확장의 호기로 삼고자 전 교단 차원에서 시설투자 등을 서두르고 있다.
= 전문가 제언 및 대안
우리 교회의 경우는 주5일 근무제 도입으로 신자들의 종교활동 환경이 크게 변하리라 예상하면서도 아직 특별예산을 편성하거나 대안 연구에 나서지 않고 있는 상태다. 마산교구가 지난해 말 사목전문위원회를 열어 주5일 근무제에 대한 논의의 자리를 마련한 것이 거의 유일한 교회의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는 3월 사제연수회에서 주5일 근무제에 대한 논의의 장을 마련할 마산교구의 모색을 전 교회 차원으로 확대할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마산교구 강윤철 신부는 『주5일 근무제 사회는 교구의 벽을 뛰어넘어 전 교회가 공동보조를 취해야 하는 현실의 절박함마저 보여주고 있다』고 밝히고 『지금이라도 주교회의 차원의 논의를 시작으로 전 신자들의 역량과 지혜를 모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 신부는 특히 서구의 사례를 들며 시대적 흐름과 신자들의 요구에 교회가 보다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있음을 역설했다.
일선 사목자들은 신자들의 종교활동을 비롯해 교육, 놀이 등이 한곳에서 이뤄질 수 있는 종합문화시설의 확충과 투자에 교회가 보다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데 대체로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수도원마저 개방해 신자나 일반인들을 교회로 유도하고 있는 이탈리아 교회의 사례는 시사점이 적지 않다. 가족 피정뿐 아니라 가족 단위로 수도원을 찾아 쉴 수 있도록 개방하는 모습은 머지 않은 한국교회의 미래일 수 있다.
주교회의 사무차장 이창영 신부는 『주말이면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유럽 수도원의 모습은 가족중심의 사목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는 서구교회의 모색의 결과』라며 『가족 중심의 활동이 가능한 장소와 프로그램 개발에 보다 적극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와 함께 전문가들은 지역의 특수성을 살려내는 사목 프로그램의 활성화에 더욱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데 공감대를 마련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유학 중인 김진형 신부(원주교구)는 『성당 중심의 협의의 교회에서 탈피해 광역화하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교회상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밝히고 이를 위해 성직자의 역할을 평신도와 나눌 수 있는 적극적인 모색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김 신부는 특히 활동 범위와 공간의 확대로 교회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유럽교회의 현실을 전하며 일찌감치 평신도 양성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제안한다.
서구에서 사목한 경험을 지닌 대부분의 사제들은 주5일 근무제가 생활화된 유럽의 교회가 더 이상 사람들을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려 하지 않는 현실을 역설한다. 오히려 신자들이 종교적 신념을 견지하며 생활 속에서 실천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교회의 모습을 전하고 있다.
이렇듯 광역화되는 사목의 영역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평신도의 적극적인 참여와 이를 위한 프로그램 개발이 절실하다. 이는 곧 신자들에게는 영성 회복의 기회를 제공하고 비신자들에게는 선교의 전기가 될 수 있다. 이미 각 종단의 종교시설은 더 이상 신자들만을 위한 공간이 아닌 열린 공간으로의 변모를 꾀하고 있다. 따라서 교회도 신자들의 공간에서 지역사회 선교문화 거점으로 거듭나야 할 필요성이 있다.
아울러 다양한 사회 봉사활동 참여의 기회를 마련해 교회의 정신을 다지고 지역주민과 함께 할 수 있는 장을 지속적으로 마련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런 다채로운 모색과 준비가 있을 때 주5일 근무제는 지역 선교와 사목의 변화를 통해 교회의 질적 성장의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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