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혼란과 개혁시대에 일어난 영성
3) 수도원의 쇄신 운동
(8) 페깡의 성 요한
프랑스의 러 아브르에서 북동쪽으로 약 100리 정도 떨어져 있는 페깡 수도원에 유명한 요한이라는 성인이 살고 있었다. 원래 수녀들이 이 곳에 살았으나 노르만인들의 침입 때에 피난을 간 후 수도원은 파괴되고 베네딕도 성인의 규칙을 따르던 수도자들이 모여 수행에 힘쓰고 있었다. 거기에는 수도회 개혁에 힘쓴 디종의 굴리엘모가 아빠스로 있었는데 요한은 그의 삼촌을 따라 수도회에 입회하였다. 굴리엘모는 그의 참 스승이었다. 1017년 요한은 이 수도회의 아빠스가 되었는데 끌뤼니의 영향을 받아 개혁에 힘썼다. 그는 성 아우구스티노와 성 대 그레고리오의 영향을 받아 신비적 관상생활과 은수 생활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그는 너무나 겸손하여 자신을 드러낼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그리하여 그의 작품은 안드레 윌마르 신부가 발견할 때가지 성 암브로시오나 안셀모 또는 베르나르도의 작품으로 인정될 정도였다.
그는 너무나 겸손하여 자신을 언제나 『불쌍한 요한』이라고 불렀다. 요한은 성서 읽기를 좋아하고 강조하였다. 베네딕도 성인의 규칙서 제48장에 나오는 거룩한 독서에 따라 수행에 힘쓴 그는 그리스도 중심적인 사람으로 되어 갔다. 거룩한 독서에 심취하는 영혼은 그리스도의 정신 안으로 들어가게 마련이다. 그러면 신적 영감을 받아 정감적인 기도를 하게 되며 경우에 따라 하느님이 주시는 영감을 받아 신비적 관상에 들어가기도 한다. 그러면 영혼은 자연적으로 인간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아 주위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한다.
이런 체험을 바탕으로 요한은 관상생활과 활동생활을 조화시키려고 노력하였다. 관상과 활동의 조화는 이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하느님 안에서 맛보는 달콤함을 혼자서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형제 자매들에게 나누는 것은 2세기 후에 도미니코 성인에 의해 『관상한 바를 다른 사람들한테 전하는 것』으로 표현될 것이다.
(9)카르투시오회
이 수도회는 1084년 성 브루노에 의해 설립되었는데 반 은수생활 양식을 취하고 있으며 창설된 이래 900년 이상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고 그대로 이어온 놀라운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교황 인노첸시오 11세는 1688년에 『카르투시오회는 결코 잘못된 일이 없었기 때문에 한번도 개혁된 적이 없었다』라고 했을 만큼 변하지 않고 그 기본적인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이 생활 양식의 주 목적은 관상과 전례거행, 침묵과 고독 속에서 영성 수행을 함으로써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는데 있다. 이들은 세속을 끊고 가톨릭 신앙 안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깨어있으면서 그 가르침을 충실히 따라가는 사막의 은수자들이다. 장상과 지도자는 하느님의 뜻과 환상이 무엇인지를 식별해주며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은수자에 맞는 삶을 살도록 한다. 그것은 내적 외적 침묵과 고독(solitudo) 속에서 살아가는 이 수도회의 관습을 지키는 것이다.
이 수도회가 교회에 기여한 것은 기도 안에서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려는 사람들을 돕는 것이었다. 그것은 귀고 1세의 관례서에 성문화되어 있다. 귀고 1세는 성 예로니모와 베네딕도의 규칙에 관해 언급하지만 맹종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독방(이것을 암자로 불러도 좋을 것이다)을 떠나지 않고 침묵을 엄격히 지키고 최소한의 공동기도와 전례를 단순하게 거행하였다.
귀고 2세는 관상 기도를 하는 이들의 영성생활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는 네 단계를 강조한다. 거룩한 독서, 묵상, 기도 그리고 관상이다. 거룩한 독서는 베네딕도 성인의 규칙서 제48장(매일의 육체 노동에 대하여)에 나오는 뒷 부분을 풀이한 것으로서 『우리는 온갖 힘을 성경에 집중하고 그것을 주의 깊게 공부한다. 묵상은 숨어있는 진리를 알기 위해 각자 이성의 도움을 구하려고 정신을 부지런히 활용하는 것이고, 기도는 악을 버리고 선을 얻기 위해 마음을 오직 하느님께로 향하는 것이며 관상은 어느 정도 하느님께 올라가 자신에서 벗어나 영원한 감미로움을 맛보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우리는 이미 12세기에 성경 읽기가 이렇게도 강조된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수행의 과정으로 성경을 필사하였다. 그것은 작업이 아니라 수행이었고 그 자체가 묵상과 기도였다.
이 수도회의 특징은 단순한 데 있다. 귀고는 『묵상 없는 독서는 헛되고 독서 없는 묵상은 잘못되기 쉽다』고 하였고 『묵상 없는 기도는 잘못되어 열성이 없고 기도 없는 묵상은 결실을 내지 못한다』고 가르쳤다. 이런 면에서 카르투시오 영성 학파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가톨릭 신앙 안에서 현명한 판단, 영적 기쁨, 단순함, 높은 관상으로 요약할 수도 있고 모든 덕의 기초인 겸손(성 베네딕도 규칙서 제7장)과 순명은 언제나 강조되며 예수 마리아에 대한 온화한 사랑은 영적 기쁨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이 수도회의 특징은 위에서 언급된 것처럼 결코 잘못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한번도 개혁할 필요가 없었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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