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위원회의 사순절 운동을 계기로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 안에 폭넓게 자리잡아가고 있는 성서 옮겨 쓰기의 유래와 전통에 대해 살펴본다.
▲ 중세시대 수사들이 성서를 필사하고 있다.
▲ 오른쪽 사진은 최근 교구, 본당차원에서 널리 실시되고 있는 성서필사본 전시회 모습.
대희년을 앞두고 1~2년 동안 일부 본당과 가정에서는 신구약 성서를 손으로 직접 쓴 필사성서를 제단에 봉헌하는 것이 한참 유행이었다. 이러한 봉헌은 단지 성서를 손으로 쓴다는 외적인 행위에 그치지 않고 그 안에 온전히 자신의 마음과 삶을 담았다는 점에서 신자들의 신심을 북돋우는데 매우 효과적인 것이었다.
대희년 이듬해인 지난 해에도 이 같은 열기는 계속 이어졌다. 본당 설립 기념일을 앞두고서, 새 성당 봉헌을 위한 마음을 담아서, 더 잦게는 매년 부활절과 성탄절을 맞으면서 각 가정마다 성서쓰기에 여념이 없었다.
최근에는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달로 온라인으로 성서 이어 쓰기를 하는 본당이 늘어나고 있다. 서울 원당본당은 지난해 11월 성당 봉헌을 앞두고 인터넷 성서 이어쓰기를 했고, 이에 앞서 4월에는 본당 설립 30주년을 맞은 사당동본당, 그리고 석촌동본당은 그 전해에 릴레이 성서 이어쓰기를 해서 완성한 신구약 성서를 디스켓에 담아 봉헌하기도 했다.
성서 옮겨쓰기와 필사성서의 봉헌은 1994년 원주교구에서 처음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어 청주, 마산, 수원, 춘천교구, 서울대교구 등 전국으로 확산되어 교구를 막론하고 각 본당과 개인 가정으로 활발하게 퍼져나갔다.
타종교의 경전 옮겨쓰기
이처럼 붐을 이룬 성서 옮겨쓰기는 사실 한국 가톨릭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개신교의 경우에는 지난 1987년 서울 동인장로교회에서 구약성서 「잠언」으로 성서쓰기를 시작, 교계 전체로 퍼져 필사 인구가 무려 10만을 헤아린다고 하며 전담운동기구까지 조직돼 있다고 한다.
불교의 경우, 경전을 필사하는 것은 오랜 전통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불교에서 경전을 옮긴다는 뜻의 「사경(寫經)」은 「부처님의 마음과 가르침을 몸과 마음에 가득 채우는 성스러운 행위」로 간주된다. 즉 기도와 수행의 한 방법으로써의 「사경」은 인쇄술의 발명 후에도 널리 행해졌고 부처를 베껴 그리는 「사불(寫佛)」도 마찬가지였다.
유교는 불경을 베끼는 일이 잦았던 불교와는 달리 사서삼경을 일일이 베껴 쓴 흔적이 많지는 않지만 성균관대 도서관 고서계에는 보기 드문 「논어」 필사본 세 권이 보관돼 있다.
그리스도교 필사 전통
그리스도교 역사 안에서도 인쇄술 발명 이전에 성서 필사가 드물지 않았지만 신심 수련의 동기보다는 책을 만들어 전수하기 위한 것이 주 목적이었다.
가장 오랜 성서 필사본으로는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두루마리 문헌(기원 전 1세기~기원 후 1세기) 외에 히브리어 구약성서 필사본인 「레닌그라드 사본」(1008년)이 있고 「바티칸 사본」과 「시나이 사본」등을 가장 권위 있는 필사본으로 꼽는다.
중세 때 인쇄술이 보급되고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 일반 민중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해설한 필사본들이 활발하게 유포되기 시작했다. 중세 수도원을 건축할 때면 도서실 옆에 성서 필사를 위한 방이 별도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한국교회의 성서 필사
한국 초대교회 교우들은 복음서와 해설서를 겸한 「성경직해(聖經直解)」와 복음에 따른 피정 지도서인 「성경광익(聖經廣益)」을 재편집한 「성경직해광익(聖經直解廣益)」을 필사해 보급했었다. 이후 1896년 개정판을 내면서 이 책은 「성경직해(聖經直解)」로 바뀌었다.
이처럼 성서와 경전을 옮겨 쓰는 행위는 그리스도교 전통은 물론 타종교 안에서도 정신과 마음을 수련하는 좋은 방법으로 여겨져 실천돼 왔었다. 특별히 한국교회와 문화 전통 안에서 이러한 행위는 그 뿌리가 매우 깊은 것으로 보인다.
성서 쓰기는 단순히 글자를 옮겨 쓴다는 외적인 행위에 그치지 않고 그 옛날 우리 어머니들이 헤어진 자식 옷을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듯 우리들의 헤진 신심을 정성껏 기우는 행위이다. 따라서 성서쓰기를 통해 한 자 한 자 성서 구절을 손으로 옮기면서 우리는 그 글자들 안에 살아 있는 하느님을 만나는 내적 수련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