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가장 큰 자산인 평신도가 곧 대안입니다. 프로그램만을 바꿀 게 아니라 이제는 평신도를 중심으로 교회의 구조를 바꿀 때입니다』
통일 이후 사회의 효과적인 복음화를 위해서는 평신도들에 대한 보다 과감한 역할위임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같은 주장은 최근 교황청립 로마 그레고리안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은 김진형(원주교구) 신부의 논문 「본당의 선교적 모델」에서 이뤄져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김 신부의 이 논문은 한국은 물론 아시아적 선교모델의 대안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올해 그레고리안대학의 최우수 논문으로 뽑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친견한 자리에서 격려하는 등 교황청의 호평을 얻기도 했다. 특히 이 논문은 북한 복음화와 관련한 최초의 신학박사 논문으로 신학적·교회법적 관점에서 구체적이면서 효과적인 북한 선교방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북한 복음화모델 연구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해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북한 안에서 교회 복음화를 위한 공헌」이라는 소제목이 붙은 이 논문에서 김 신부는 현재의 본당사목이 스무살 청년에게 열살 난 아이의 옷을 입히려는 것과 다르지 않다며 지구촌화가 가속화되는 새로운 세기에 맞는 사목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현재의 본당제도는 트리엔트공의회 당시 1500년대 사회구조에 맞게 편재돼 있습니다. 이 때문에 교회가 딛고 서있는 사회의 엄청난 변화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1981년 사제서품과 더불어 한국교회에서는 처음으로 파푸아뉴기니에 파견된 선교사 1세대로 캐나다, 이탈리아 등에서도 사목한 오랜 선교경험이 녹아있는 이 논문을 통해 김 신부는 지금의 본당 사목프로그램으로는 현대사회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는 것조차 불가능하다고 밝힌다. 본당공동체가 부닥치고 있는 문제의 근본요인을 '문화의 변화'에서 찾고 있는 그는 본당 제도(System)와 구조(Structure)의 과감한 혁신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이를 위해 김 신부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교회쇄신을 위한 신학적 개념이었던 「친교(Communio)」를 한 방안으로 주목한다. 이와 함께 본당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통해 본당 및 본당공동체 내에서의 평신도의 역할을 규정하고 있는 교회법 515조를 비롯한 517, 518조 등 3개 조항을 해법으로 제안하고 있다.
『지금의 교회구조라면 통일 후 북한사회는 개신교화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미 풍부한 인적자원을 바탕으로 북한의 면소재지까지 선교책임자와 재정계획을 세우고 있는 개신교에 비해 통일 이후에 손을 놓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우리 교회에 대한 김 신부의 통찰에는 한국교회에 대한 총체적인 고민과 신학적 반성이 녹아있다. 이같은 그의 진단은 교황청은 물론 각계 전문가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이에 따라 김 신부는 평신도에 대한 과감한 역할 위임만이 한국교회가 나아갈 길임을 역설한다. 통일 이전에 사제에게 집중돼 있는 교회의 역할을 평신도에게 최대한 나눠주고 준비시켜야 개신교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한 선교사수에서 오는 선교의 한계를 극복하고 개신교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서구교회에서는 이미 본당 관리마저도 평신도에게 넘기는 사례가 일상화되어 있습니다. 통일 후에는 그것이 곧 우리의 현실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종신부제직 등을 통해 교회의 많은 일을 평신도에게 개방하고 있는 서구교회의 사례를 소개하는 그는 6000여명이 넘는 우리 교회의 수도자들도 북한선교를 위한 훌륭한 자산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아울러 김 신부는 효과적인 북한 선교를 위해서는 지역교회의 장점을 살리면서 「친교」를 강조하는 인적 기준의 본당모델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북한사람들 속에서 살며 하느님을 전하기 위해서는 초대교회의 「친교」가 가장 큰 무기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아가 예술인, 정치인, 학생, 문학인 등 다양한 직업과 관심에 따라 특성화·전문화된 「인적 교회(Personal church)」로 바뀌어 나가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알게 모르게 그 길을 걷고 있는 교회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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