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세대.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쳐온 그들. 6월 항쟁의 승리를 만한 이상으로 좌절을 겪은 세대.
『386세대는 지금 하루가 다르게 보수화되고 그들의 삶은 세속과 욕망과 출세주의에 물들어가고 있어, 정직한 자기 정리도 없이 무한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인 박노해씨의 애정어린 비판이다.
386세대의 신자와 사제가 그룹사운드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젊은이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지던 그룹사운드. 기성세대에 함몰되길 거부하고 486, 아니 팬티엄급 마인드로 무장된 이들은 오늘도 아름다운 화음을 통해 세속적 욕망을 떨쳐버리고 있다. 박노해씨의 비판은 이들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듯.
그룹사운드 「흑백시대」. 이름에서 드러나듯 단원 대다수가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80년대 말 컬러 TV의 등장으로 우리 기억속에 가물가물 사라져간 「흑백」이란 단어. 이들의 음악을 듣다보면 어느새 「흑백」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지난 99년 대구 이곡본당 주임 김영호 신부와 음악을 좋아하는 몇몇 중년의 신자들이 의기투합해 결성한 「흑백시대」. 날로 인기를 더하는 이유는 아마도 중년 그룹사운드의 편안함 때문일 듯.
「본당 중장년층의 친목도모, 여가 선용」이 창설 때의 목적. 최근 여기에 「봉사활동」도 추가됐다. 왜냐하면 양로원이나 병원에 가서 위문공연도 갖기 때문이다.
멤버를 살펴보자.
김영호 신부는 드럼 주자. 신나게 드럼 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흥이 절로 난다. 단장겸 리더 기타는 임재순(니꼴라오·37)씨. 대우증권에 다니고 있다. 학원 원장인 사공철(바오로·43)씨는 베이스 기타. 이 세사람이 그룹 결성 주역이다. 386세대는 아니지만 김혜진(소화데레사)씨와 최윤희(글라라)씨가 각각 키보드와 바이올린을 담당하고 있다. 두사람 다 대학생이다. 싱어는 4명. 의료보험공단에 다니는 김정열(프란치스코·43)씨, 가정주부인 송경자(싯다·38)씨,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성규징(안드레아·46)씨, 대학생인 정현진 (소피아)씨. 모두가 가수 뺨친다. 이들이 공연할 때마다 사회를 봐주는 김시호(블라시오·43)씨. 이런 이들의 재능이 하나로 어우러지면 청중들은 어느새 중년의 음악세계로 흠뻑 젖어든다.
흑백시대는 지난 1월 30일 두번째 공연을 가졌다. 이번 공연에서는 특별히 본당 수녀도 출연했고 신자들 노래자랑 시간도 가졌다.
『흑백시대 덕분에 본당에 활기가 넘친다』고 입을 모으는 이곡본당 신자들. 그들에게 있어 흑백시대는 신앙생활을 즐겁게 만들어 주는 또 하나의 원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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