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보건대학 간호학과 O2(산소) 학번」 새내기 캐롤린 무와과(Mwakwa)·프리스카 부왈리아(Bwalya) 수녀는 저녁 6시20분부터 시작되는 강의에 늦지 않기 위해 시내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종종 걸음으로 가파른 학교 언덕길을 올랐다. 꽃샘추위에 가끔씩 몸을 움츠리지만 이제 한국생활 만4년을 통해 얻은 튼튼한 몸으로 이 정도 추위쯤이야. 3년 뒤 간호사가 되는 큰 꿈을 안고 씩씩한 발걸음으로 강의실로 향했다.
프란치스코 전교봉사 수녀회(총원장=하이디 브라우크만 수녀) 소속으로 본원인 원주에서 생활하다 간호사가 되기 위해 대전에서 새로운 공동체 생활을 시작한 두 수녀는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수도자가 되기 위해 98년 5월 멀리 한국까지 날아왔다.
8남매의 맏이인 캐롤린 수녀는 본당에서 선교와 헌신적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한국수녀들의 삶을 가까이서 보면서 자연히 수도자로서의 길을 결심했다. 생소하기만 한 대학생활이지만 내일은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르듯이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고 기도하는 맘으로 열심히 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평소에도 외국에서의 생활이 멋이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 왔는데, 무포로코소에 있는 이모집에 다니러 왔다가 한국수녀님들을 보고 성소의 열망을 키워왔다』는 프리스카 수녀는 『내 아이가 아니라 하느님의 아이인데, 하느님이 쓰시겠다면 당연히 쓰셔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처음엔 섭섭하고 마음이 아팠지만 이젠 아버지의 말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고 말했다.
캐롤린·프리스카 수녀가 학교에 다니면서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은 강의 내용 필기. 교수가 하는 말은 어느 정도 알아듣고 이해가 가는데 강의를 들으며 빨리 받아 적는데는 아직 서툴다. 특히 쉴 틈 없이 제출해야 하는 리포트도 큰 짐이 된다. 컴퓨터를 이용하면 괜찮은데, 교수들에 따라 꼭 손으로 써서 제출하라는 바람에 한 자 한 자 써내려 가다보면 어느새 이마에 땀방울이 송송 맺힌다. 그러나 지금은 힘들더라도 자꾸 써야 실력이 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최선을 다한다. 그래도 손으로 써야 하는 시험은 벌써부터 큰 걱정이다.
『처음 입학했을 때 학생들이 자꾸만 쳐다봤어요. 수도복을 입은 수녀인데다 외국 수녀, 그것도 아프리카에서 온 수녀라서 그런지 더 신기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이젠 같이 어울리며 부담없이 잘 지내고 있어 매우 기분이 좋아요』
두 수녀는 간호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그래서 아픈 이들을 어루만져 줄 수 있고, 여건이 허락된다면 의료 기술이 열악한 고향 잠비아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살짝 내비쳤다.
초등학교 입학할 때 가졌던 그 설레임과 같이 새 가방을 둘러 메고 처음 대학 문을 들어선 그 느낌이 굉장했다는 두 수녀는 『우선 배운다는 것이 재미있고, 특히 생명에 대해 배우면서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지식을 얻는다는 것이 마냥 좋다』며 힘들지만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했다.
고향 잠비아에서 의료활동을 펼치는 꿈을 한쪽에 고이 접어 놓고 오늘도 교수의 말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두 눈을 크게 뜨고 부지런히 공책에 받아 적는 캐롤린·프리스카 수녀는 이젠 더 이상 한국에서의 대학생활이 생소하지 않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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