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8일 마리아생명공학연구소는 소의 난자를 이용하여 사람의 유전자를 가진 연구용 배아를 복제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 연구소는 사람의 체세포를 핵이 제거된 난자에 이식해 99%이상 사람의 유전자를 가진 복제 배아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최근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소위 생명공학을 바라보면서 우려되는 것은 생명을 위해 봉사하는 기술들이 실제로는 생명에 대한 새로운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으며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에 대한 이러한 위협들은 과학기술의 발달로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타의 치료기술이나 약품 등의 개발과는 달리 60억 인구 모두가 고객이라는 매력적인 이 생명 '산업'에 막대한 부가가치가 걸려 있다고 말하며 부나비처럼 달려드는 비윤리적인 생명공학 회사들과 그에 장단 맞추는 연구자들이 있는 한 이번과 같은 '사건'들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생명공학이 발전하면서 인간 삶의 질과 관련하여 이룩한 업적들은 그야말로 눈부시지만 그와 동시에 이로 인하여 초래될 비극과 파멸을 생각할 때 두려움을 넘어 경악을 금치 못하게 된다.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견인 불의 발견은 핵의 발견으로 이어졌고 이는 인류사에 커다란 이익을 가져다주었지만 이의 오용은 전 인류를 한 순간에 파멸로 이끌 수 있는 위협을 동시에 가져다주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생명공학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어쩐지 불안하다.
마리아생명공학연구소가 연구용 배아를 복제한 이유는 치료용 줄기세포 추출이었다고 한다. 최근 들어 생명공학 분야에서 가장 치열하게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주제가 바로 줄기세포이다. 흔히 만능세포로 불리는 줄기세포는 여러 조직으로 분열할 수 있는 분화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난치병 치료를 위한 조직과 이식용 장기를 만들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생각되어 의료혁명의 총아로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줄기세포는 첫째 사람의 몸에서 성체 줄기세포를 추출하는 방법과 둘째 인공수정란에서 추출하는 방법 그리고 셋째 사람의 체세포를 복제해서 추출하는 방법 세가지가 있는데 이번에 발표된 마리아생명공학연구소는 이 세 번째 방법에서 소의 난자를 이용한 것이다.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훼손하지 않는 성체줄기세포를 연구하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지만 환자에게 이식하면 난치병을 고칠 수도 있고 인간 자궁에 이식하면 복제인간이 태어날 수도 있으며 잉여배아의 폐기마저 우려되는 두 번째, 세 번째 방법은 윤리적으로 비난받아야 하며 금지되어야 할 기술이다.
여기에다 마리아공학연구소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소의 난자를 이용하였다고 하니 실로 경악을 금치 못한다. 핵이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영양과 운동에 필요한 에너지 등은 소의 난자 미토콘드리아로부터 받은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창조 질서에 대한 인간 개입의 한계이다. 복제를 비롯한 생명공학의 모든 발전은 창조 질서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생식세포인 난자와 정자의 결합이 아닌 복제는 이 질서에 어긋난다. 두 번째로는 인간의 정체성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이다. 이렇게 태어난 수정란은 인간인가 동물인가 하는 것이다. 이런 식의 연구가 무제한적으로 진행된다면 어디까지가 인간인가 하는 웃지 못할 논란이 일어날 날도 멀지 않은 것이다. '하느님의 모습을 닮아' (창세 1,26) 창조된 인간은 창조질서의 중심과 정상에 서 있다. 인간 존엄성의 근원은 그 인간이 하느님을 닮았다는 데에 있다. 하느님을 밀어낸 자연은 반란이요 하느님을 떠난 문화는 비인간적인 휴머니즘이 되고만다 (바울로 6세 회칙, 민족들의 발전 42항 참조).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인간이 인간을 무한히 초월한다는 사실을 망각한다면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인간은 현세적인 존재의 차원을 훨씬 넘어서는 충만한 생명으로 부르심을 받았고 이 생명이란 바로 하느님의 생명을 나누어받는 것이다" (요한바오로 2세 회칙, 생명의 복음 2항).
우리나라는 생명공학에 관한 한 세계에서 몇 번째 안에 드는 앞선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보라. 이 기술이란 것이 그 비윤리적인 기술을 제한하는 장치가 없어서이다. 지난 98년 12월 모 의료원 연구팀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인간배아 복제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가 국제적 망신을 당한 일이나 이번 마리아공학연구소가 이미 여러 차례 성공했다는 연구결과를 과기부가 인간 배아 복제 허용을 적극 검토한다고 한 이튿날 발표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생명공학에 관한 윤리법의 조속한 제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논의 중인 생명윤리기본법에 의하면 종간의 교잡행위는 금지하며 이를 어긴 단체나 개인은 형사, 행정상의 처벌을 받도록 되어있다(3조 3항, 4항).
그러나 현재 논의 중인 가칭 생명윤리기본법은 빨리 제정되어서도 안되고 빨리 제정되지 않아도 안 된다. 먼저 빨리 제정되어서 안 된다는 말은 충분한 토론이나 적극적인 여론수렴, 여러 전문가의 균형있는 조언 없이 광범위한 허용을 담아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되고 일방의 이익을 위한 내용으로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빨리 제정되어야 한다는 말은 밀실에서 비밀리에 행해지는 비윤리적 연구들을 감안할 때 하루빨리 법이 제정되어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올바른 내용을 충분히 담은 좋은 법이 하루 빨리 제정되어 더 이상 생명의 존엄성이 심각하게 훼손되는 일을 방치하지 말기를 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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