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가 영희에…게 말‥했습니다. 안녕. 영‥희야…』
초등학교 저학년 수업시간에나 들릴 듯한 소리지만, 이 곳의 분위기는 도서관만큼이나 고요하다. 국어책에 열심히 밑줄을 긋는 학생들. 무엇이 그리 답답한지 연신 머리를 긁적이면서도 선생님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며 따라 읽기 바쁘다.
서울 신길5동 살레시오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마잘레로 학교」의 초등학교 과정 수업시간. 국어 교과서를 펴놓고 열심히 책을 읽는 학생들의 표정이 무척 진지해 보인다. 그러나 이곳에 모여있는 학생들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이가 아니라 30대 중반부터 60대 중반까지의 가정 주부들이다. 가끔돋보기를 쓴 머리가 희끗하신 70대의 할머니도 눈에 띈다.
선생님보다 더 연로(?)한 학생들이지만, 쉬는시간이면 옆자리의 짝꿍과 이야기꽃을 피우는 모습은 평범한 여고생의 교실과 다를 바 없다
지난 1989년에 처음 문을 연 「마자렐로 주부학교」는 여러 가지 어려운 사정으로 인해 자신의 학창시절을 포기해야 했던 여성들의 배움의 터전이다.
이곳의 학제는 초등반·중등반·고등반 3개 과정. 초등반은 한글반과 초급반(1∼3학년), 중급반(4∼6학년)으로 나뉘며, 중등반과 고등반은 3년 과정을 2년에 수료하게 된다. 자신의 자녀 혹은 손자들이 배우는 교과서로 같은 내용을 공부하는 학생들. 「벅차 보인다」는 느낌이 없지 않지만 160여명의 학생들 모두 41명의 자원봉사자 선생님들과 함께 열심이다.
특히 검정고시 학원이나 야학과는 달리 「마자렐로 주부학교」는 일반 학교와 다를 바 없는 프로그램들로 진행된다. 그래서 봄, 가을에는 소풍도 가고 운동회도 한단다. 또한 영어나 수학 같은 정규 과목만이 아닌 미술, 음악수업이 있기에 늦깎이 학생들은 마냥 즐겁기만 하다.
지금까지 졸업생은 중학교 과정과 고등학교 과정을 합쳐 700여명 가까이 된다고. 그들 중에는 검정고시에 합격해 또 다른 곳에서 배움의 열기를 불태우는 학생들도 있고, 전문대나 방송통신대에 진학한 학생들도 대다수 있다. 이곳을 졸업한 학생들끼리 '동문회'를 만들어 계속 모임을 갖기도 한다.
마자렐로 학교 담당 윤기옥 수녀는 『늦깎이 학생들이 배움을 통해 삶의 기쁨을 찾아나가는 모습이 그 누구보다도 아름답다』며 『특히 이곳을 통해 어엿한 지성인으로 변모된 주부학생들이 다시 봉사자 선생님으로서 학교에 찾아올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뒤늦게라도 공부하는 기쁨을 알게 돼 행복해요…학생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살아나 인생을 다시 사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주부학생들. 못다한 학업에의 꿈을 키워나가며, 아름다운 여생을 새롭게 펼쳐나가는 이들에게는 뜨거운 향학열뿐만 아니라 삶의 향기가 묻어 나오고 있었다.
※문의=(02)841-3361 윤릿타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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