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귀국하자마자 내가 받은 소임은 신학교 교수였다. 그 후로 40년 동안 돈암동본당에서 2년 동안 주임신부로 사목활동을 한 것을 제외하고는 평생을 신학교에서 지냈다고 할 수 있다.
교수로 임명되면서부터 나는 「신학교 귀신」이었다. 소임을 받고 일을 시작하면서 내가 갖고 있었던 생각은 『가르침을 받았으니 되돌려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일한다」 「가르친다」는 단순한 생각 뿐이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가르치는 일이 그냥 보통 일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흔히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을 하듯이 교육의 효과는 곧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내게는 무척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나서 드러나는 것은 단지 학기말이나 학년말에 집계되는 시험성적 뿐이었다. 나에게도 잘 보이지 않는 교육의 효과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더 안보일 것이고 그것은 즉 내 일의 업적과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이 때로는 못견디게 힘들었다.
내가 신학교 생활에서 또 한가지 힘들었던 것은 항상 똑같은 생활이었다는 것이다. 언제나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일을 반복해야 하는 일이 바로 교수의 일이었다.
대개 신학교 교육에 있어서는 전통적으로 세 가지를 목표로 삼는다. 그것을 「3S」라고 부른다. 학문(Scientia), 건강(Sanitas), 그리고 성덕(Sanctitas)이 그것이다. 신학교의 다양한 모든 교육이 이 세 가지를 목표로 이뤄지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성덕은 가르치기에도 어렵고 실천하기에도 어려운 것이다. 다만 다행스러운 것은 전통적으로 신학교마다 내려오는 생활 규칙들을 따르다 보면 자연스럽게 성덕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옛부터 전통으로 형성돼 내려오는 신학교 규칙들은 『규칙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하느님을 위해서 산다』라는 격언처럼 신학생들을 성덕으로 이끌어주는 지침이었던 것이다.
건강과 관련해서 보면 내가 젊을 때는 지금처럼 자기 건강에 그렇게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도 나이 50이 넘어서 였다. 그후 지금까지는 「동(冬)키 하(夏)테」의 생활을 한다. 즉 겨울에는 스키를 타고 여름에는 테니스를 거의 매일 한다.
가르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내가 끊임없이 배워야 했다. 신학교 생활을 하면서 내가 가장 존경했던 분은 바로 선종완 신부님이었다. 교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시간을 빼면 선신부님은 항상 방안에 틀어박혀 공부만 하셨다.
하루는 신부님께 여쭤보았다. 『신부님, 수업 하고 남는 시간에는 뭐하세요?』 신부님 왈 『공부하죠!』 다시 물었다. 『그렇게 공부하면 머리 안 아프세요?』 답이 걸작이다. 『공부 안 하면 머리 아파요!』 선신부님께서 남긴 것은 별로 없다. 그저 공부하고 공부한 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일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신부님의 모습을 보면서 신부님을 따라 살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잘 했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살아온 모습을 되돌아보면 아쉬움이 많다. 그 아쉬움의 원인을 보면 이런 것이다. 시간을 잘 지키면 아쉬움이 없고 시간을 안 지키고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 아쉬움이 남는다는 것이다. 규칙을 따라서 시간을 잘 지키면서 사는 것이 중요하다.
공자는 60에 이순(耳順)이 된다고 했지만 나는 70이 넘어서야 그 단계에 이른 것 같다. 많이 늦었다. 하지만 그래도 돌이켜보면 그런대로 후회 없는 성직 생활을 한 것 같다. 50년 동안의 성직생활 동안 한국 전쟁때 부모님을 북에 남겨두고 와 다시는 뵙지 못한 것이 한으로 남아 있지만 그외에는 대체로 한 없는 인생을 산 것 같다.
이 나이를 먹고서 젊은 신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안정되게 성직자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속된 말로 절대 「뜨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유명해지고 명예를 갖고 싶은 마음, 그래서 「뜨려고」하면 반드시 불안해진다. 물론 자기 마음대로 떠지는 것도 아니지만 또 떠도 별 볼일 없고 오래 가지도 않는다. 뜨고 나면 바로 그 때문에 성직자로서의 영성생활에 큰 영향을 받게 된다.
하지만 그 대신에 자기 삶에 자신감을 가져야 하는데 그러러면 자기만의 전문적인 분야가 있어야 한다. 공부면 공부, 사목이면 사목, 자기가 모든 것을 잊고 몰두해서 자기의 사명을 완수한다는 확신과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진짜 전문가라면 자기 일에 몰두하는 그 자체에 매달려야지, 일을 하고 난 뒤 성과에 집착해서는 안된다. 즉 그 일 자체에 헌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령이 우리에게 작동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을 전달하고 우리로 하여금 하게 하는 것이지 결코 우리 자신이 높아지거나 명성을 떨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성령의 인도로 일한다」는 것이다. 내가 내 삶에 대해 그런대로 만족한다는 것은 스스로 성령의 인도대로 살았다는 나름대로의 자각에 기인한다. 물론 얼마나 충실했었던가는 잘 모르지만.
백민관 신부님은 올해 사제수품 50주년을 맞으셨습니다. 신부님의 금경축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거룩한 사제로서의 삶이 후학들에게 모범이 되고 모든 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기를 기도 드립니다.
다음호부턴 전 안동교구장 두봉 주교의 풍성한 사목체험담이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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