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성모신심이 일어남
예수님의 어머니 성모님에 대해서는 긴 설명이 필요 없다고 본다. 혹시 성모신심을 부정하거나 별로 관심이 없는 이들도 그리스도교 영성사를 연구해 보면 성모신심이 교회 초창기부터 여러 신앙 공동체에서 간헐적으로 일어났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성경이 쓰여진 그 시대는 남성 중심의 사회였다. 그러나 성모님과 여러 부인들의 이름이 거명되고 있음에 우리는 유의해야 한다. 성모님은 신약성경의 여러 곳에 등장하신다. 대표적인 부분이 루가 복음서와 요한 복음서이다. 특히 요한 복음 2장과 25장 25~27절은 성모님의 역할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사도행전 1장에는 『그 자리에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비롯하여』라는 표현이 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사도행전 2장에도 그대로 등장했다고 본다면 역사적으로 교회가 창립되는 바로 그 순간에 성모님이 제자들과 함께 하신 것이다. 이 기록 후에 성모님은 직접적으로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단지 사도 성 바울로가 예수님의 인성을 강조하여 『여자의 몸에서 나게 하시고』(갈라 4, 4)라는 표현을 남기셨을 뿐이다.
묵시록 12장에 등장하는 그 여인을 교회는 전통적으로 성모님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후 성모님은 기록에서 사라졌다. 더 이상 찾을 수 없다. 그런데도 교회 공동체는 자발적으로 성모님을 공경하기 시작했다. 이는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부터 성모 공경에 관한 중요한 역사적인 사실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1)쁘리쉴라 지하무덤
로마에는 지하무덤(카타콤바)들이 많다. 약 3백년간의 긴 박해 중에 그리스도인들은 박해를 피해 지하무덤으로 피해가서 숨어 살았다. 그 많은 지하무덤들 중 필자가 좋아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쁘리쉴라라고 불리는 지하무덤이다. 지금도 가보면 20년 이상 안내를 하고 있는 수녀님 한 분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만일 그 수녀님이 하느님께 가지 않았다면).
지하무덤 밑으로 한참 내려 가 보면 벽화를 볼 수 있는데,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데리고 제물을 바치러 가는 장면이 있고 그 옆에는 예쁜 귀부인의 모습이 있다. 그것을 보는 사람은 누구나 『아! 성모님』이라고 한다. 이 점에서 사람들의 마음이 모두 일치하는 것인가? 안내를 맡은 그 수녀님은 『저 부인을 보는 사람은 누구나 성모님이라고 합니다』라고 하였다.
이 그림이 그려진 시기는 언제일까?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로마의 긴 박해 시기 즉 1세기 중반부터 313년 사이에 누군가가 그렸을 것이다. 필자는 그 지하무덤을 좋아하여 세 번이나 가 본 적이 있다.
2 )일을 마치고 바치는 기도
가톨릭 기도서에는 일을 마치고 바치는 기도문이 있다. 이 기도문은 이집트에서 대형 공사를 할 때 땅 속에서 발견되었는데 파피루스에 적혀 있었다고 한다. 여기에 옮겨 본다.
『거룩하신 천주의 성모님, 저희를 지켜주시고 어려울 때 저희가 드리는 간절한 기도를 물리치지 마소서. 또한 온갖 위험에서 언제나 저희를 지켜주소서. 영화롭고 복되신 동정녀시여』
여기에는 중요한 교의들이 포함되어 있다. 우선 『천주의 성모님』이다. 이는 431년 에페소 공의회에서 발표된 교의이다. 두 번째는 성모님에게 『동정녀』라는 칭호를 부여한 부분이다. 성모님이 예수님을 낳으신 후에도 평생 동정녀이셨다는 것은 가톨릭 교회의 교리이다. 이 교리가 교회에 의해 교의로 선포되기 전에 이미 신앙 공동체는 성모님을 『천주의 모친』(테오토코스)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세 번째는 성모님의 도우심을 청한 부분이다. 저희를 온갖 위험에서 지켜주소서. 어떤 위험인가? 박해 중이니 생명의 위험,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온갖 위험, 붙들려 가더라도 배교하지 않도록 굳센 믿음과 용기로 신앙을 증거할 수 있는 힘을 주시도록, 유혹에 떨어질 위험 등에서 지켜달라는 간절한 청원들이 아니겠는가?
그러면 이 기도문이 과연 언제쯤 만들어졌을까? 파피루스에 적혀있던 그 기도문을 화학 처리해보니 3세기 초의 것이라고 한다.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 연대는 교회의 역사 안에서 볼 때 초대교회라고도 볼 수 있는 이른 시기이다. 이 때는 교회가 극심한 박해를 당할 때였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박해를 피해 로마를 떠났을 것이고 배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 이집트로 피신하기도 하였을 것이다.
이집트는 시리아와 더불어 그리스도교 수도생활의 발원지이다. 그래서 상상을 해 보건대, 이집트의 은수자들이나 박해를 피해 그 곳에 몰려든 열심한 그리스도인들이 성모님의 도우심을 청한 기도문이 아니었을까?
그리스도교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인데도 불구하고 성모님의 역할이 초창기부터 중요하게 대두되었다는 사실은 우리를 놀라게 하며 성모공경을 결코 등한시 할 수 없는 신심으로 인정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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