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기의 문턱을 갓 넘기고 있는 지구촌 모습은 전문가들의 의견처럼 예측이 쉽지 않은 「무질서」 「불안정성」이다. 오늘날 교회는 이러한 상황안에서 어떤 시대적 판단을 가지고 사목적 접근을 시도해야 할것인가. 가톨릭신문은 창간 75주년을 맞아 교회내 석학들에게 미래교회의 전망과 사목방향에 대해 질문을 던져보았다. 이번 창간기념호에 초대된 학자는 오스트리아 빈대학교 사목신학교수 쭈레너(Paul M Zulehner) 신부(63). 서면 인터뷰 형식으로 이뤄진 대담은 지난 3월 11일 쭈레너 신부 연구실에서 박강희 신부(빈대학 박사과정 대구대교구)가 진행했다.
-새로운 천년기를 맞고 있습니다. 보편교회 및 한국교회는 삼천년기를 향한 새로운 복음화를 강조하고 있고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을 근간으로한 21세기에 맞는 변화와 쇄신 노력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교회 쇄신이라는 관점에서 현대교회가 지향해야할 방향의 제시뿐 아니라 현대교회 사목의 문제점 그리고 그 대책 연구에 정확한 분석방법을 통해 여러 가지 대안을 제시하고 계신 줄 알고 있습니다. 새천년기를 사는 가톨릭교회 모습안에서 주시해 보아야할 문제들은 어떤 것입니까.
“근본으로 돌아가는 삶”
▲제 견해로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교회 쇄신은 단지 구조의 현대화를 지향하고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북반구와 북대서양 여러 지역에서는 교회 삶의 심화, 즉 현대화 대신 「철저함」 「근본으로 돌아가는 삶」이 요구된다고 생각합니다.
「원천에로 돌아감」「근원에서 길어냄」이라는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그 다음 아마도 우리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 신비(Mystik)와 봉사(Diakonie), 영성과 연대 두 기둥 사이에 있음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교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다른 종교를 보면 소위 이웃사랑 없이 영적인 것만 찾는 게 전형적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성서적이지 못한 것입니다. 여기서 「쇄신」은 오로지 구조와 조직을 현대화하는 의미여서는 안됩니다. 여권신장이라든가 평신도 참여 등 이 모든 것들 또한 아주 중요한 문제들입니다.
-이렇게 여러면에서 쇄신이 필요하다는 말씀은 교회가 자신의 본래 목적에서 많이 멀어졌다는 뜻입니까?
희망 가득한 대안 제시해야
▲다소 그렇다고 여깁니다. 교회가 사회의 비참한 면과 문제를 자신의 자리에서 가중시켰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교회의 소명이 아닙니다 .
교회는 힘차고 희망 가득한 대안을 실현시켜야 하고 그것에 대해 대화하는 것을 멈춰서는 안됩니다. 또한 먼저 자신의 자리에서 그것을 사는, 몸소 실천하는 삶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생명과학 정보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교황 요한바오로 2세는 이를 통한 죽음의 문화 확산에 대해 우려하신 바 있습니다. 교회가 예언자적 소명으로써 생명문화 창출을 위해 내놓을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특히 생명 유전공학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교회윤리는 다른길의 모색
▲단지 윤리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종교적인 이유에서 인간은 바로 하느님과 연결돼 있고 그래서 어떤 인간도 다른 인간을 이용할 권리가 없습니다. 그리스도교 윤리의 이 저항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데 -교회가 연구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윤리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 방법안에서 더 나은 방법으로 연구, 좋은 목적에 도달할 수 있도록 강요하는 것입니다.
"연구하지 마시오"라고 말하는 것이 교회와 윤리의 과업이 아니라 「다른 길을 모색해 보시오」라고 말하는 것이 교회와 윤리의 임무인 것입니다. 전형적인 예가 줄기세포 연구입니다. 치료를 위해 배아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하고 그 태아를 죽일 수도 있고 또 탯줄로부터 줄기세포를 추출할 수 도 있습니다. 또는 태반에서 줄기세포를 끄집어 낼 수 있는 등 정말 많은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윤리는 이렇게 얘기해야 합니다. 『만일 윤리적으로 좋은 가능성과 나쁜 가능성이 있거든 좋은 가능성을 취하시오』라고 말입니다.
-정보화 사회로의 급속한 이행은 「사이버교회」출현 등 기존 종교가 지니고 있는 정형까지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교회는 사목적 접근을 어떻게 시도해야 합니까.
종교는 만남을 통해 이뤄져
▲사이버 교회, 인터넷등 모든 새로운 전자문화와 관계되는 것들은 우리들에게 매우 유용한 도구들이기는 합니다만 결코 면 대 면 관계(Face-to-face)를 대신할 수 는 없습니다.
인간이 서로 사랑에 빠져 「성애」(Eros) 의 문화를 형성하게 될 때 이 두 인간들은 인터넷 상에서 서로의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직접 만나려 할 것입니다. 이 점은 종교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종교 또한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인터넷상을 통해서만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인터넷은 익명으로 종교의 길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유익한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미래세계의 영성과 관련해 질문 드리고 싶습니다. 초월 명상등과 같은 소위 「신영성운동」「뉴에이지운동」이 정보화 세계화 흐름과 맞물리면서 확산되고 있고 아시아권에서는 종교다원주의가 한창입니다. 변화하는 그리고 점증하는 현대인들의 종교적 욕구를 교회는 어떻게 채워줄 수 있을까요?
신비적 전통 제시해 줘야
▲특히 이곳 유럽 대도시에서 최근들어 새로운 질의 영성을 찾고자 하는 시도들이 전개되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미국의 경우 유럽과는 달리 항상 종교적이었지 결코 세속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곳에서는 영성운동이 항상 활발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재영성(Respiritualisierung)의 대형 추세(Megatrend)가 일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 현재 서유럽과 동유럽 교회들은 이 새로운 영적 시도에 좋은 대화상대자가 되기엔 아직 준비가 덜 된 상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갈증은 날로 넘쳐 나는데 교회는 날로 시들어가고 있습니다.
교회의 과제는 빙엔의 힐데가르드, 마에스트 엑크하르트 그리고 신약성서의 사도 바오로 요한과 같은 과거 교회의 신비적 전통의 값진 보물들을 영성의 갈증을 느끼고 찾는 이들에게 제시해 주는데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지금까지 어떻게 해왔는지를 비판하고 판단하는 데만 매달리지 말고, 그들을 대화에 초대하고 그래서 복음이 그들에게 좋은 대안의 길이 될 수 있음을 제시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제가 볼 때 이 부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영적으로 하느님 안에 들어가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들 속에서 이웃을 사랑하는 모습으로 드러난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교 영성의 정수' 입니다.
-어떻게 이것을 교회 안에서 실현시킬 수 있을지 구체적 예를 들어주시겠습니까.
길을 찾는 사람들과 함께
▲여러 시도들이 있는데 한 예로 한국의 어느 주교좌 성당 앞에 큰 천막을 치고 지나는 사람들에게 『우리와 같이 당신 삶의 어두운 부분을 성당 내 성모상 앞에 봉헌하는 작은 예식을 해보지 않으시겠습니까』라고 말을 건넵니다. 여기에는 아마도 관심 있는 많은 이들이 참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들 중에는 교회에 전혀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제 견해로는 영적으로 예민한 사람들이 뭔가 자기 안에 간직하고 있는 갈망을 실현시키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참여자들이 신자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세례를 받았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당신이 하느님을 찾는 사람이냐 아니냐 라는 점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또한 전적으로 예수님 모습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뭔가를 찾는 그 길 위에 있는 사람들과 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점도 교회실재의 한 부분입니다.
-가톨릭신문은 올해로 창간 75주년을 맞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 안에서의 교회 매스컴 활동에 대해 조언해 주신다면.
여러 의견 존중하는 언론되길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제2차 바티칸공의회 시기만 해도 교회는 매스미디어를 현대적인 강론대로 사용하는 것이 최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전파 신문 매체를 통해 복음을 선포하고 인쇄하고 그것을 송신하는 것으로 미디어를 이해했던 것입니다. 물론 이것도 선교하는 한 방법입니다. 그후 요한 23세와 바오로 6세는 새로운 문헌을 통해 매스미디어에 대한 다른 시각을 보여주었습니다.
매스미디어가 일방통행적으로 송신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매스미디어는 소위 다양한 그룹들과의 대화를 위한 사회적인 토론 장(Round table)이 될 수 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 대화의 자리에는 다양한 분야 전문가뿐만 아니라 복음을 잘 아는 사람들도 함께 앉아 여러 문제들을 복음적 시각으로 토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 임무 중 하나는 사회문제를 가지고 정치 경제 학계등 각 분야 책임자와 전문가들을 함께 모아 인간을 위해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논의의 장을 마련해 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것은 교회가 어느 한쪽 편에만 서지 않고 다양한 의견을 존중해 줌으로써 사회의 신뢰를 얻을 때, 그때 교회가 사회에 큰 봉사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 매스미디어가 바로 그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쭈레너 신부는
1939년에 태어나 1958년부터 인스부룩대학교에서 스콜라 철학과 신학공부를 시작했다. 1961년 철학박사 학위 취득후 1961~64년 인스부룩대학교 윤리신학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했으며 1964년 빈교구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66년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쭈레너 신부는 67~70년 빈교구 신학교에서 봉직했으며 74~84년 독일 파싸우대학교 교수로 일했다. 84년 이후부터 빈대학교 사목신학 선교신학 교수로 재직중이며 85년부터 유럽주교회의연합(CCEE) 신학 자문위원도 맡고 있다?
특히 「사목미래학」분야의 권위자로 꼽히는 쭈레너 신부는 칼 라너의 영향을 많이 받아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변화쇄신이라는 관점으로 현대교회의 비전을 제시해 왔다.
대표적 저서 「사목신학」(Pastoral thologie)은 유럽내에서 신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필독서로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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