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대표팀의 매 경기마다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고 어디를 가도 사람들의 입을 오르내리는 화두는 '축구'다. 이와 같은 사회분위기와 더불어 종교계에서도 전 세계인이 함께 어우러져 즐길 이 축제를 통해 종교를 알리고 선교로 활용하기 위한 다양한 행사들을 준비하고 있다.
2002년 월드컵을 맞아 축구와 교회의 다양한 관계와 축구를 통한 선교방안을 찾아본다.
역사 속 교회와 축구
사실 가톨릭 교회와 축구는 멀리 중세 때부터 인연을 맺어 왔다. 정식 축구경기가 생기기 이전부터 유럽에서는 교회를 중심으로 마을 사람들이 모여 축구와 유사한 경기가 개최됐다.
이 당시 열린 경기는 마을 주민 전체가 한데 어우러져 교회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를 형성하는 밑바탕이 됐다. 특히 사순절 직전에는 사육제와 같이 대규모 시합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한 프랑스에서 열렸던 축구와 유사한 술(soule)경기도 가톨릭 교회와 관계를 맺은 종교적 스포츠로 기록이 남아 있다.
축구경기가 대중 스포츠로 자리잡은 19세기 중엽 유럽에서는 교회 교구를 중심으로 축구클럽이 결성됐다. '건강한 육체를 지닌 그리스도교 정신'이라는 슬로건 아래 만들어진 축구클럽은 교회를 대표하는 단체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 당시 영국에는 교회 소속의 클럽이 전체클럽의 25% 이상이나 됐다는 것을 봐도 교회와 축구 사이의 관계가 남달랐음을 알 수 있다.
선교 도구로서의 축구
아시아와 아프리카 대부분의 국가는 20세기 초 축구를 처음 접하게 되는데 이들에게 축구를 보급시켜 준 주인공은 외국인 선교사들이었다.
선교사들은 대중적이고 공동체성을 강조하는 축구가 교회의 가르침과도 일치할 뿐 아니라 사람들을 교회로 끌어들일 수 있는 좋은 매개체가 된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일제 합방기에 들어서기 직전 우리 땅을 밟은 축구는 개신교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확산됐고 선교사들이 운영하는 학교 대부분에서는 축구클럽이 만들어졌다.
이같이 역사적으로 축구와 교회가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것은 축구가 선교의 도구로서 적절한 매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스포츠, 특히 축구경기는 패어플레이(Fair play) 정신, 공동체·협동 정신을 요구한다. 이에 더해 상대팀을 존중하고 선수들의 훌륭한 플레이에 갈채를 보내며 패배했을 때에도 미소를 잃지 않는 것, 다시 말해 인생의 미덕을 실천하는 장을 축구는 보여준다.
이같은 특징들은 종교라는 테두리 안에 대중을 끌어 모으기 알맞은 선전도구로서의 기능을 가진다.
특히 명상적이고 다종교 사회인 아시아 국가에서 축구를 통한 서양종교인 그리스도교의 선교는 누구나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 자연스럽게 신앙을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효과적인 선교도구로 이용되고 있다. 사실 전통적인 불교국가인 미얀마 등 동남아시아에는 이미 많은 수의 한국 개신교 선교사들이 축구선교단을 활용해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스포츠를 주로 즐기는 연령층인 청소년들을 교회로 이끌 수 있다는 것도 한 이유다.
일본의 개신교회는 월드컵 선교를 위해 지도자 대표들로 구성된 「GOAL 2002 전국위원회」가 일본 어린이컵과 일본 청소년 컵이란 프로그램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이는 축구교실과 축구시합을 하는 동시에 성경공부를 하는 체험의 장으로서 미래의 일꾼을 낚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개신교의 축구선교 활동
이같이 축구를 통한 선교가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가장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곳은 개신교다.
우리나라 최초의 정식 축구경기에는 황성기독청년회가 참가했을 정도로 개신교의 축구선교 활동은 일제시대부터 활발히 진행돼 왔다.
현재도 거의 모든 개신교 교회가 스포츠선교분과를 따로 운영하고 있으며, 축구선교사가 직접 운영하는 축구선교회를 만들어 청소년층을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프로축구가 생기기 전 할렐루야 축구단이 활약했던 당시의 모습은 개신교 축구선교의 전형을 보여준다. 골을 넣고 두손 모아 기도하던 모습은 그 당시 축구를 좋아하던 사람들의 뇌리에 깊숙이 박혀 있다.
개신교는 이같은 축구선교의 활발함을 발판으로 종교계 중 가장 적극적으로 월드컵 선교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재 개신교는 「2002 월드컵 기독시민운동협의회」, 「한국스포츠선교협의회」, 「2002 월드컵 선교단」 등을 중심으로 활발한 선교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이번 부활절에는 상암동 월드컵주경기장에서 교파를 초월한 연합예배를 개최하고 이 자리에서 월드컵 성공다짐 기원대회를 함께 열어 월드컵 선교 분위기를 높일 예정이다.
가톨릭교회의 움직임
이에비해 가톨릭교회가 갖고 있는 축구선교에 대한 관심은 극히 미약하다.
본당 신자들을 중심으로 조기축구회가 결성돼 있는 것이 전부이고 그나마 이들 조기축구회도 선교를 위한 목적이 아닌 교우간 친목을 위해 결성되는 경우가 많다. 축구를 비롯한 스포츠 경기를 통해 본당 사목의 활성화를 꾀하는 것에는 익숙해져 있으나, 본격적인 선교의 발판 마련을 위해서는 아직까지 우리 교회의 준비는 미흡하다.
그나마 올 초부터 월드컵 경기 개최도시를 중심으로 월드컵 운동본부 및 추진위를 결성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한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이러한 사업들을 통해 가톨릭교회의 활동을 알리고 일반 국민들과 함께 하는 종교로 거듭날 수 있는 장이 마련될 것이다.
하지만 월드컵이 끝나더라도 축구에 대한 관심, 더 나아가 스포츠선교에 대한 관심을 교회가 꾸준히 지속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월드컵은 일회성 행사로 잊혀지더라도 그 안에서 땀흘려 봉사했던 우리 가톨릭 신자들의 모습을 일반인들에게 각인시켜 축구를 통한 선교활동을 활발히 전개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특히 주5일 근무제의 실시와 함께 사람들의 여가시간은 늘어나지만 이를 수용할 사회문화적 인프라는 절대 부족한 만큼 축구와 같은 스포츠는 이들을 교회의 테두리 속에서 여가와 신앙을 함께 줄 수 있는 훌륭한 매체다. 따라서 교회는 축구라는 「실」로 복음화의 「구슬」을 꿰는 작업에 보다 고민해야 한다.
교회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월드컵은 치러질 것이다. 그러나 월드컵의 성공을 위해 한국교회가 국민과 함께 뛴다면, 딱딱하고 형식적이고 재미없는 분위기로 인식된 교회가 보다 열린교회, 지역민들과 함께 하는 공동체로 인식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의 건전한 여가, 건전한 정신은 바로 복음의 정신이다. 이제 우리 교회도 신자들만의 단체라는 울타리에서 나와, 공동체라는 그라운드에서 이웃이라는 선수들과 어울리며 복음화의 드리블을 함께 해볼 때이다.
■ 서울대교구 축구단 연합회 지도 임상만 신부 인터뷰
간접선교에도 ‘한 몫’
신앙·삶 연결하는 ‘힘’
본당간 협력 기틀 마련
▲ 임상만 신부
서울대교구 축구단 연합회 임상만 신부(사당동본당 주임)는 본당축구단이 신자들의 신앙활동에 활력을 불어넣는 기폭제로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본당은 신앙생활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입니다. 하지만 주5일 근무제가 시행되고 여가시간이 점차 늘어가면, 신앙생활 하나만으로는 신자들을 본당에 끌어 올 수 없을 겁니다』
임신부는 신앙생활과 신자들의 삶을 연결해 줄 수 있는 방법으로 축구가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한다.
신자들의 본당 이탈을 막고 동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당동본당 「펠릭스축구단」의 경우 신자들이 즐겁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동아리로 높은 호응을 얻고 있고, 비신자들도 회원으로 받아들여 함께 경기하는 등 간접선교에도 한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축구팀은 본당 간 교류의 첨병 역할도 한다. 임신부는 『그리스도 안에 함께 살고있으면서도 정작 이웃본당 신자들과는 얼굴도 모른 채 지내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라며 『축구팀간 친선경기가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 본당간 두터운 협력의 기틀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한다.
지난 2000년 결성된 서울대교구 축구단 연합회에 참가하고 있는 본당은 총 52개.
본당 대항 축구대회를 개최해 축구붐을 조성하고 친교활동에 힘쓰고 있다. 앞으로 한 본당 한 축구단 갖기 사업 등을 통해 축구에 관한 관심을 일으킬 계획이다.
하지만 본당 내에서 펼치고 있는 이같은 활동에 관해 교회의 지원과 관심은 매우 미약하다고 임신부는 지적한다.
『월드컵 개막이 임박했는데도 우리 교회의 관심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월드컵은 세속적인 행사이지 우리 교회와는 관계없다는 생각들이죠. 개신교가 「붉은 악마」 명칭 변경, 일본 선교활동 등 굵직한 행사를 통해 교회 알리기에 나서는 것과는 너무도 큰 차이가 있습니다』
임신부는 너무도 조용히 월드컵을 바라만 보고 있는 교회가 하루빨리 상황을 인식하고 직접 뛰는 모습을 보일 때 진정한 가톨릭(보편) 교회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축구를 노는 것, 운동하는 것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축구라는 좋은 매개체를 통해 「교회의 활성화와 신자간 친교의 장을 마련하겠다」는 것이 임신부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