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하다 부활이여 기쁘도다 알렐루야! 예수 부활 아니시면 구속사업 헛되도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 예수 부활이여! 영광이여 우리 주 예수께』
부활시기이면 나도 모르게 가장 먼저 입 속에서 흥얼거려지는 성가 134장처럼 예수님의 구원사업이 의미를 갖게 되는 부활절 아침이다.
부활의 기쁨과 주님의 커다란 축복이 가톨릭신문 독자들과 독자들의 가정에 흘러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어느 신학자의 말처럼 우리 그리스도교의 발생과 기원은 독특하면서도 한마디로 역사적 수수께끼일 수밖에 없는 무엇이 있습니다. 세계적인 종교들은 비교적 점진적으로 평온하게 전파되었던 것에 비해 우리 교회는 혹독한 박해를 통해서 시작되고 성장하였다는 점에서 독특한 면이 있고, 세계의 종교들은 대부분 창설자들이 살아 있을 때 이미 시작되고 번성하였던 점에 비해 그리스도교는 창설자의 완전한 실패와 수치스런 죽음 이후에 비로소 그분의 이름으로 선포와 선교운동이 발생하였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우리는 질문할 수밖에 없다. 『예수님의 죽음 이후 어떤 놀라운 일이 있었기에 이러한 일이 가능했을까?』 『도대체 예수님의 죽음과 교회의 선교 사이에 무엇이 자리잡고 있는가?』
비그리스도교 사학자들도 한결같이 인정하는 사실이지만 무언가 모르는 놀라운 반전이 없이는 이 불가사의한 사실을 설명할 수 없는데, 성서와 초대교회는 이것의 이유를 한결같이 예수 부활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죽음을 초월하여 살아계신 나자렛 예수에 대한 제자들의 신앙체험과 신앙 인식이 저 둘도 없는 세계사적 진전에 불을 당겼고, 그러기에 한 인간의 수치스런 죽음에서 하나의 세계 종교, 아니 그 이상의 무엇이 일어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 그리스도교는 나자렛 예수의 부활 없이는 설명할 수 없다. 그리스도교는 부활과 더불어 시작되었고, 부활 없이는 어떤 성서도 있을 수 없다. 또 부활 없이는 그리스도교의 어떤 신앙 선포나 어떤 교회 어떤 예배 어떤 선교도 있을 수 없기에 부활은 우리 신앙의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이요, 우리의 신앙은 이 부활 사건 위에 정초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부활 선포의 내용은 의외로 간단하다. 물론 사도들과 성서의 증언은 때로는 때와 장소, 등장 인물과 사건 경과에 있어서는 약간의 상이점과 모순점이 있지만 그 내용은 한결같은데 그것은 십자가에 달려 죽은 그분이 하느님과 함께 영원히 살아 계시다는 것이다. 즉, 베드로 사도의 성령강림절 설교대로 『예수를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셨다는 것, 그리고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이 예수를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주님이 되게 하셨고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사도 2, 32~36참조)는 것이 부활선포의 핵심인 것이다.
바로 그리스도인은 여기에 희망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인 것이다. 신앙인이란 다른 이들이 아니라 이 확신에 의하여 아니 매료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죽은 분이 죽음에 머물지 않고 살아 계시다고, 그분께 의지하고 그분을 따르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살리라는 사실. 그리고 그분의 신적 생명과 영원한 생명이 모든 이에게 절대적인 요청이요, 참다운 희망이라는 것이 바로 부활 신앙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부활 신앙은 혁명적이요, 참으로 매력적인 것이긴 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믿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수많은 가능성을 가지고있는 간접증거를 통해서 신뢰로 나아가는 길이요, 때로는 「논리와 이성」을 뛰어넘는 신앙 안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실재이기 때문이다.
부활절 복음은 매년 똑같이 부활의 첫 새벽에 체험했던 빈 무덤 사화를 전해준다. 빈 무덤의 오늘날 의미는 부활에 대한 교회의 간접증거를 상징할 것이다.
오늘 복음에는 바로 이러한 빈 무덤을 체험한 세 명의 인물이 나오는데 그들의 반응은 매우 다르다. 막달라 여자 마리아는 예수님에 대한 사랑 때문에 빈무덤 앞에 제일 먼저 도착했지만 두려움 때문에 부활을 보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고, 베드로 사도는 빈 무덤과 수의 등을 관찰하기는 하지만 다시 살아난다는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무덤덤한 사실확인에 그친 반면, 다른 제자는 이 빈 무덤을 보고 부활에 대한 믿음을 갖게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오늘날 부활에 대한 교회의 간접 증거 앞에 우리 평범한 신앙인들이 가지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우리가 교회의 부활 선포에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하는데 대한 결단을 요구하는 말씀이 아니겠는가 생각해 보게된다.
구원역사의 절정이요 우리 신앙의 핵심인 부활의 아침! 기쁨과 사랑으로 부활을 경축하면서 예수님의 부활이 오늘의 나에게 주는 의미를 되새겨 보자.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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