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서술하는 일은 지난한 작업이다. 때로는 장엄한 역사를 미처 필설로 다하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서술의 여백을 남기는 것이, 그래서 소설이나 다큐멘터리보다 시가 오히려 더 정확한 역사로 남을 수 있다는 것에 공감한다.
한국일보 기자 출신의 이충우 신앙유산연구회장의 장편서사시 「순례자의 노래」(양업교회사연구소 刊)는 그래서 더욱 순교자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담겨 있는 듯하다.
저자는 순교선조들에 대한 흠모의 정으로 이미 순교의 현장들을 답사하면서 피와 땀으로 상징되는 순교자들의 흔적을 세 번에 걸쳐 순례기로 펴낸 바 있다.
첫 시집인 「꽃이 되고 빛이 되어」 역시 순교를 테마로 한 신앙시들이었다. 첫 시집에서 읊었듯이 저자에게 순교자들은 그대로 한 송이 꽃이었다.
『소리 없이 피었다가/이름없이 떨어진 꽃/무명에서 더욱 밝아오는 님이시여/순교의 꽃이라 부르리다』(순교의 꽃 사랑의 꽃 중에서)
도움말을 써 준 신중신 시인은 이 서사시를 두고 『저 지난하고 길었던 이야기를 이처럼 운문시로 재창조하여 쉽고 즐겁게 전달할 수 있는데에 이 시집의 존재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하고 치하했다.
『장황한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짧은 문맥 속에 축약할 수 있는』서사시의 장점이 이 시집 안에서 그대로 나타나며 박해시대 그 길고 지루했던 역정이 한 권의 책 안에 넉넉하게 담긴다.
「순례자의 노래」에 담고 있는 역사는 앵자산에서 강학회가 열린 1770년대 후반부터 한국교회의 후원국이었던 프랑스가 한불 수호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신앙의 자유가 확보되고 자리잡아가는 19세기말까지의 120여년 간이다.
특히 두 부분으로 나눠 앞에는 한국 천주교회의 창립 당시부터 최초의 대박해인 1801년의 신유박해로 마감하고, 두 번째는 1866년 병인대박해와 이후의 정황을 노래하는 것으로 대미를 맺는다.
시집에서 드러나는 가장 중요한 사실은 바로 저자의 순교자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사랑이다. 과거를 돌아보고 이를 서술할 때 학구적인 자세를 견지한다면 사가의 시선이지만 열성으로 되돌아볼 때에는 그것이 곧 신앙고백이 될 것이다.
저자는 바로 후자의 예가 될 것이며 그것은 곧 사랑의 실천으로 이어진다.
『우리네 조상들처럼 적색 순교 못되어도/순교의 영성 받들어 특은 간구하오니/백색순교와 녹색순교의 삶/사랑의 꽃으로 활짝 피우리다』
출판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