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인은 무엇인가
하루 평균 370쌍이 갈라서고 있는 현실은 우리 사회의 가정이 무너지고 있다는 우려를 극명하게 나타내고 있는 증거이다. 이같은 가족 해체의 위기감은 벌써 수 년 전부터 감지되고 있던 것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이혼을 한 부부는 모두 13만5천건. 전년보다 1만5천건이 더 늘어난 수치이고 90년의 4만5천건에 비하면 딱 3배이다. 이후 95년까지 매년 3천건에서 5천건씩 늘어나던 이혼은 96년 1만건을 훌쩍 넘어 97년 1만7천건, 98년 2만5천여건이 불어나서 급기야는 10만건이 훨씬 넘게 나타난 것이다.
이처럼 가정해체가 급격하게 늘어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이 IMF 경제 위기이다. IMF 위기는 특히 수많은 실직자들을 양산했고 그에 따라 중산층이 파괴됐으며 빈곤층을 확대했다. 이에 따라 경제적인 문제로 인해 해체되는 가정의 수가 급속도로 증가했다.
여기에 중년 및 노년 부부의 이른바 황혼 이혼의 증가가 한 몫을 한데다가 과거 배우자의 불륜이나 가정 폭력 등이 대다수를 차지했던 이혼의 사유가 성격차 등 다양화되고 확대되면서 이른바 결혼 생활의 질을 따지는 이혼들이 늘어났다.
국내의 해체 가족 규모는 1백만에 육박한다. 전체 가구수가 모두 1431만2천여가구, 그중에서 96만7500여가구가 해체 가족으로 추산된다. 특히 이들 해체 가족들은 가족으로서 갖는 기본적인 역할과 기능도 정상적인 가구에 비해서 현저하게 떨어져 이에 대한 사회적인 대책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최근 공개한 「최근 가족 해체의 실태와 정책 방안」에 따르면 이들 해체 가족 중에서 편모가 49만여 가구, 미혼이나 노인 단독 세대를 제외한 1인 단독 가구가 31만3400여가구, 편부 13만4400가구, 소년소녀가장 등 기타가 3만여가구로 나타났다.
이처럼 우리 사회의 가정 해체가 최근 십여년 동안 눈에 띄게 진행된 것은 사회경제적인 여건이 상당한 원인이 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근본적인 원인은 오히려 사회 전반의 가치관 변화에 따른 전통적 가족제도에 대한 인식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그 단적인 예가 바로 동거의 증가이다. 법적으로 인정받는 혼인의 범위 밖에서 이뤄지는 혼전 동거나 혼외 동거가 과연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이에 관련된 가치관의 추이는 몇 가지 설문 조사 등을 통해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인터넷을 통해 실시하는 여러 가지 설문 조사들을 통해 보면 대체로 혼전 동거를 가능하다고 보는 응답이 60`~80% 정도로 높은 비율을 보인다.
이같은 가치관에 바탕을 두고 인터넷에서는 동거자를 구한다는 사이트들이 공공연하게 커플을 모집하고 있다. 특히 동거가 일부 젊은 층에서만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지난 1999년 리서치 앤드 리서치라는 여론조사 기관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동거 경험이 있거나 동거 중인 사람은 10명 중 1명꼴(9%)이었다. 결혼정보회사인 닥스클럽이 지난해 3월 기혼 부부 400쌍을 상대로 벌인 조사에서는, 결혼 후 1년이 지나도록 혼인 신고를 하지 않은 부부가 5쌍 중 1쌍(19%)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사실들을 놓고 볼 때 사회적인 인정을 받지 못해 선뜻 실행에 옮기기가 어렵다고 해도 적어도 주로 젊은이들인 이들은 더 이상 전통적인 의미의 가족 제도에 매달리지 않을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이미 서구 사회에서는 결혼만이 가정을 이루는 유일한 수단이 아니라는 것이 단지 인식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이혼에 따라 나타나는 결손이 더 이상 결손이 아니며 이렇게 재구성된 가정이 또하나의 다양한 가정의 형태라고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동거와 함께 늘어나는 독신 문제도 심각하다. 앞서 언급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의하면 해체 가족 가운데 단독 가구가 31만가구가 넘는다. 사회전반의 고령화에 따라 나타나는 독거 노인 문제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들어서는 커밍 아웃을 하는 동성애자들이 늘어나면서 동성애자들 역시 법적, 제도적으로 하나의 가정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서구에서는 이들 역시 하나의 가정으로 인정이 되는 예가 생겨나고 있다.
가족 제도의 본질 중 하나인 자녀 출산 역시 그 의미가 퇴색하고 있다. 출생율은 점점 더 떨어지고 있다.
물론 이처럼 가정의 가치가 퇴색하고 가정이 무너지고 있다는 위기감에 대한 심각한 고민의 결과 오히려 가정의 소중함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실제 삶에서 가정과 가족 구성원들의 소중함을 지키려는 노력이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전통적인 가족 제도의 의미와 기능, 역할이 심각하게 훼손되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서구사회에서 가족 제도가 붕괴됨에 따라서 나타나는 부작용과 폐해는 실로 심각하다. 따라서 한국 사회가 이러한 서구 사회의 전철을 밟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우려 역시 매우 타당한 것이다.
이혼의 증가, 가정의 붕괴가 가져오는 인간 관계의 단절과 자녀 양육의 문제 등은 사회적으로 엄청난 폐해를 남긴다. 결혼의 막중한 책임감과 성실한 배우자로서의 역할에 대한 거부는 아무리 건전한 개인주의와 자유로운 사고로 미화한다고 해도 결국은 책임 회피이며 경솔하고 가벼운 만남이 될 공산이 크다.
가정이 무너질 때 사회는 함께 무너진다. 가정은 생명의 요람이며 창조주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인간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구현하는 터전이다. 그것이 무너질 때 우리 사회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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