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에서 대부분의 갈등은 가치관의 차이에서 온다고 한다. 여기서 가치관이란 자기 삶을 더 높여 준다고 믿는 추상적인 또는 구체적인 신념과 관계된 것으로, 아주 긴 세월 동안 형성된 것으로 변화시키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얼굴 생김새가 다른 것만큼 가치관도 다르다는 것이다. 즉, 생활방식이나 취미, 취향, 도덕성, 정치적 신조, 인생의 목표 그리고 개인적 습관 등이 각기 다르고 이 같은 문제로 갈등이 생기면 좀처럼 해결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갈등의 해결방법으로 학자들은 모델링과 의논하기 그리고 수정하기 등 나름대로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지만 이러한 방법들에 앞서 가치 대립을 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람과의 관계유지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당신이 먼저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거나 좋은 관계로 발전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치관이 대립될 때는 다만 당신이 소원하는 바와 염려하는 바를 전하고 관계유지에 초점을 맞출 때 위에 제시한 방법들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그와의 좋은 관계가 그의 이야기를 들어 줄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 주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이러한 관계가 이해를 우선하는 모습은 우리와 하느님과의 관계 그리고 교회와 우리와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오늘 복음은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당신 자신을 나타내시어 당신이 정말로 부활하셨음을 알려주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의 내용은 이러하다. 안식일 다음날 두 사람이 엠마오라는 곳으로 가는 도중 예수님이 발현하셔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도 그들은 알아보지 못하다가 빵을 떼어 나누어 주셨을 때에야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데 대해 정양모 신부님의 글이 이 대목을 잘 해설해 주기에 길게 인용한다.
『엠마오 발현사화는 상봉(13~16), 대담(17~27), 식사(28~31), 귀경(32~35) 순으로 짜여 있다. 이 가운데서 대담과 식사가 사화의 핵심이다. 제자들은 대담 때의 느낌을 회상하여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이해 주셨을 때에 우리 마음이 뜨거워지지 않았습니까?」(32절) 했다. 그런가 하면 빵을 떼어 주신 순간에는 「그들이 눈이 열리어 그분을 알아보았다」(31) 그러니까 제자들은 성경풀이를 들었을 때 예수를 느꼈으며 함께 식사했을 때 그분을 알아보았다는 것이다. 이는 엠마오 발현사화가 형성 전승될 무렵의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예수의 현존을 체험했는지 전하는 것이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미사 때 예수의 현존을 체험했는데 구체적으로 성경낭독과 해설을 들을 때(말씀의 전례 때) 예수의 현존을 느꼈고 이어서 공동으로 식사할 때 (성찬의 전례 때) 그 현존을 보았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의 예수 체험과 관련하여 엠마오 발현사화를 다음과 같이 풀이할 수도 있겠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언제나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계신다. 그러나 일상생활 한가운데서는 그분의 현존을 체험하기 어렵다. 이와는 달리 성경 말씀을 대할 때 그분의 현존을 감지하고 성체를 받아 모실 때는 더욱더 그 현존을 의식한다. 그러나 오관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현존이라 육안으로 보려는 순간 「그분은 그들에게서 사라지신다(31절)」 이렇게 볼 때 엠마오 발현사화야말로 멋진, 예수 현존 체험담이라 하겠다』
어떻든 이 이야기 전체는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았다는 데로 모든 이야기가 집중되어 있는데 여기서 우리가 다시 한번 관심을 가져야 하는 사실은 빵을 떼어 나누어주실 때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았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한다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발현에서도, 성서의 풀이에서도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는데, 빵을 나누는 성찬을 거행할 때 예수님을 알아보았다는 사실은 「성찬」의 의미를 생각할 때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알다」라는 히브리어 말은 단순한 추상적 지식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지식을 넘어서는 하나의 실존적 관계를 드러내는 말이라고 한다. 그러기에 안다는 것은 대상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체험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예수님을 안다라고 할 때도 그대로 적용될 것이다. 그러기에 오늘의 이야기는 예수님의 현존과 부활의 신비에 대한 이해는 단순히 말씀이나 성서 그리고 이론으로는 부족함으로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누구인지」「부활의 신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교회와의 관계」와 「공동체와의 친교를 나누는 성찬」을 통해서 체험할 수 있다는 사실, 다시 부연한다면 교회와의 공적인 관계가 예수님 이해의 열쇠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교회와의 공적인 관계가 예수님 신비 이해의 열쇠」라는 이러한 사실은 점점 더 개인화되고 개별화되어 가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신앙인들이 다시 한번 돌아보아야 할 또 하나의 교훈이 되는 것이다.
말씀 안에서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