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적인 부작용
세계화되고 있는 자본주의로 인해 가장 널리 퍼지고 있는 철학은 뭐니뭐니 해도 「개인주의」다. 「물질주의」와 함께 현대사회를 대변하다시피 하는 개인주의로 인해 신앙마저 점차 세속화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같은 상황 속에서 삶의 바탕에서부터 복음적 가치를 증거해야 할 신앙의 뿌리인 가정 또한 세속화의 거센 물결에 휩쓸리고 있는 모습이다. 어느새 하느님 사랑이 생생하게 숨쉬어야 할 곳인 가정에서조차 「개인주의」가 일상으로 자리잡으면서 가족 사이에서도 단절로 인한 「소외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가정에서의 소외는 나아가 사회구성원간의 개인주의화를 부추기며 사회문제로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이런 사회적 흐름 속에서 신자가정조차 하느님을 받아들이고 고백하는 노력에서 멀어지면서 적잖은 사회적인 문제들이 파생되고 있다.
이미 오래 전부터 「가정해체」로 인한 사회적인 부작용을 경험하고 있는 서구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1970년대부터 가정해체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프랑스의 예를 들면 이로 인한 각종 문제가 이미 구조적인 사회문제로 드러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낮은 출산율로 인한 인구감소다.
인구감소는 현상적으로는 큰 문제가 될 게 없어 보이지만 실제 가족에 대한 인식마저 바꿔 가정과 결혼에 대한 전통적 의미와 가치를 약화시킴으로써 이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문제는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여성들이 출산을 기피하는 뚜렷한 현상을 보이고 있는 현실도 프랑스로서는 고민을 더하게 하는 사회적 문제다. 사회의 원활한 세대 교체를 위해서는 연간 85만명의 신생아가 필요한데 실제 태어나는 아이는 반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여성들이 출산을 기피하는 가시적인 이유는 자녀가 이혼을 어렵게 하고 직업 활동에도 지장을 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편안함만을 추구하며 「아기에게 빼앗길 시간과 정력이 아깝다」는 개인주의적인 사고방식이 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
이와 함께 서구사회가 겪는 또 하나의 중대한 도전은 「결혼과 가족제도의 변화」로 인한 가치관의 혼란이다. 이 혼란의 정도는 가족 구성의 첫발이 되는 혼인 양상의 변화에서 짐작할 수 있다. 25세 미만인 가정의 절반이 동거를 하고 있는 오늘날 프랑스의 현실은 가정의 문제가 곧 사회의 문제임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2001년 1월 현재 프랑스에서는 결혼부부가 1240만쌍, 동거커플이 242만쌍으로 동거커플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결혼한 쌍의 90%가 동거하다가 결혼한 경우이고, 그 중 30%는 첫아이 출산 후, 18%는 둘째 아이 출산 후 결혼식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더구나 1999년 10월 의회에서 동거를 정식결혼과 동일한 법적 효력을 가지면서도 이혼할 때는 수속이 훨씬 더 간편하도록 제도를 수정하면서 90%의 젊은이가 「혼전 자유결합」에 찬성하고 1∼2년의 동거기간을 갖는 게 일상이 되고 있다. 이 결과 혼외 출산의 비중이 높아 신생아의 40% 가량이 혼외아이고 이혼율은 40%를 기록하고 있다.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 사회의 이같은 삶의 방식은 개인주의적인 사고의 확산과 괘를 같이 한다. 이는 곧 개인이 지니는 가치관의 영향이 개인의 삶에만 머물지 않고 사회적인 의미와 파급력을 지닌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우리나라는 이런 서구사회의 모습을 압축적으로 뒤따라가고 있는 양상이다. 몇 년 새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는 「동거」를 선진적이고 합리적인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우리 사회의 흐름은 이미 부조리한 방향에서 서구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는 것이다.
또 신비체험에 몰입하는 사회적 현상은 결코 쉽게 바라봐선 안될 문제다. 이는 곧 「하느님 나라」 건설과 같은 「공동체성」이 기반이 되는 전통적인 신앙생활을 「개인화」하는 오류를 범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사회적 책임을 애써 외면하는 신세대의 의식흐름과 이를 합리화, 또는 방관하는 교회 안팎의 상황은 결코 복음적이지 않은 것이다. 실제 최근 크게 확산되고 있는 명상을 비롯한 기공, 단전, 초월운동과 같은 이른바 「신영성(新靈性)운동」은 사회나 교회와 무관한 것이 아니다.
신앙활동에는 사회의 변화에 따라 변할 수 있는 부분과 변해서는 안될 면이 있다. 짠맛을 잃은 소금이 소금의 가치를 상실한 것과 마찬가지로 「십자가」와 이를 통한 부활이 외면되는 신앙은 더 이상 그리스도신앙이 될 수 없다.
교회 안에서조차 은연 중에 자리잡아 가고 있는 개인주의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함으로써 참된 복음화의 보루인 가정을 지켜내려는 노력에 힘을 쏟아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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