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수로 갓 2년차를 맞은 서울 이문동본당 보좌 류달현(베드로) 신부는 여러차례 고사 끝에 『「저런 사람도 신부님이 될 수 있구나」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며 어렵사리 취재에 응했다.
▲ 류달현 신부
기자가 류신부를 찾았던 날은 어느 금요일이었다. 「장날」 주일을 앞두고 류신부가 슬슬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하는 날이기도 했다. 더구나 다가오는 주일 강론은 류신부 차례였다.
▶오전10시
이날 류신부는 오전10시 미사 담당. 미사 준비에 앞서 우선 앉은뱅이 책상에 앉았다. 본당에서는 사순절 들어서면서 전신자 성서읽기를 전개중인데 매 미사 시작 15분전 신자들이 함께 성서를 봉독하고 매일 마음에 와닿는 성서구절을 쓰고 있다. 류신부는 이제사 3월 26일자 분을 쓰고 있지만 일정이 다소 늦어지더라도 신자들과 함께 한다는 생각에서 미사전 잠깐 시간을 낸 터였다.
수단의 단추를 채우고 10시15분여전 성당으로 내려간 류신부는 신자들과 함께 성서 읽기를 하기 위해 뒷자리에 앉았다. 주변에서 성서를 읽던 신자들이 목례와 웃음으로 류신부를 반긴다. 류신부는 모임이나 기도시간에 신부가 나타나면 참으로 「고마워」하고 기뻐하는 신자들 모습에서 처음엔 「당연한 일인데 왜 그럴까」 생각되기도 했지만 차츰 그들이 사제들에게 거는 기대와 보좌신부가 「좋은 신부」로 살기를 바라는 것이란 걸 눈치채게 되었다. 아직까지 「사제」를 얼마나 갈망하고 있는지도모른다. 그럴 때 마다 「사제는 당신 백성에 대한 하느님 선물」이라는, 「그래서 선물 역할 잘 하라」는 선배 사제의 조언이 새롭게 다가온다.
미사가 시작되고 강론대에 선 류신부는 일단 특유의 유머로 성당 안을 웃음 도가니로 만든다음 강론을 시작했다. 웃음으로 편안함을 주고 싶다는 것, 류신부가 신자들을 대하는 철칙중 하나다. 미사모습을 취재하고 있는 기자에게 한 신자는 「젊은 분인데도 구수한 시골 된장국 같은 분위기」라며 「미사중 신자들을 한번은 꼭 웃게 하시는 분」이라고 귀엣말을 했다. 미사나 교리에 들어가며 「오늘은 무슨 말을 해서 신자들을 웃겨줄까」 늘상 고민하는 류신부가 걱정을 놓아도 될 듯 했다.
미사를 마치고 나오니 미사후 항상 류신부에게 자판기 커피를 대접하는 할아버지가 어김없이 커피를 건네준다. 또 한번 사제들에 대한 신자들의 마음씀을 따뜻이 느끼는 순간이다.
▶점심후
점심후 류신부 일정은 본당 홈페이지 작업반 「집현전」 부원들을 위로하는 자리. 영화구경을 가기로 했고 박지영(뽀띠나·경희대 3년 )양을 비롯 3명의 부원들이 함께 했다.
이들중 뽀띠나씨와의 인연은 특별하다. 경희대 외대가 접해있는 지역적 특성으로 특히 외지에서 유학온 대학생들이 본당을 찾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류신부는 고해소에서나 미사에서 발견되는(?) 이같은 지방 청년들에게 본당 활동을 권유하곤 하는데 대부분 저녁 약속등을 통해 함께 식사하는 경우가 많다. 객지에서의 어려움도 듣고 밥이라도 한끼하며 위로하고픈 마음 때문이다. 뽀띠나씨 역시 그렇게 해서 류신부를 만났다. 현재 본당안에는 이같은 케이스로 활동하는 청년들이 줄잡아 10여명 정도다.
▶오후8시
저녁 8시부터는 예비신자교리가 시작됐다. 류신부는 「사제」라는 직분을 가진지 이제 정확하게 1년 4개월여 됐지만 예비신자 교리를 통해서 「내가 신부구나」 하는 뿌듯함을 강하게 체험하곤 한다. 교리가 진행되면서 교회에 낯설어 하던 예비신자들이 점점 적극적인 모습으로 변해가고 세례 후에는 더욱 신앙에 몰입해 가는 것을 볼 때 「신부 되기를 잘했구나」하는 감사함을 느낀다.
사제직에 초대된 감사함을 느꼈던 또 하나의 사례가 있다. 본당 발령을 받은후 인근 병원에서 세례성사를 부탁, 말기암 청년을 방문 했을 때다. 수품후 첫 세례성사였던 이때, 죽음을 앞두고 너무나 확신있게 기쁨으로 신앙을 고백했던 그 청년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며칠 뒤 그는 청년의 죽음 소식을 접하고 썰렁한 빈소를 찾아 연도를 하고 장례미사를 집전했다. 류신부가 눈물속에 미사를 봉헌하자 참석 신자들 역시 눈물을 그치지 않아 정말 눈물속의 장례미사가 돼 버렸다. 이후 청년의 어머니는 본당 연령회에 꼬박꼬박 회비를 보내오고 있고 그 동생도 세례를 받았다. 류신부에게는 「정말 신부가 되었기 때문에 느낄 수 있었던 기쁨과 보람」이었다.
이같은 특정한 사례가 아니라도 류신부에게는 직무 자체가 사제생활을 이끌어 가는 힘으로 여겨진다. 「사제는 성사생활로 힘을 얻는다」는 말이 실감나는 것이다.
예비신자 교리에 이어서 첫영성체 가정교리 교사모임에 참석해야 했다. 다음주 교리내용에 대한 점검과 회의를 마친후 청년들과 또 한차례의 모임 겸 술자리가 만들어졌다. 술에 약한 류신부지만 본당 생활을 하며 회식자리가 잦다보니 스스로 생각해도 어느새 술도 늘은 것 같다.
▶밤12시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대충 밤 12시경. 하루 일정을 정리해보면서 지난해 처음 본당에 부임 했을 때는 이일 저일 모든 것을 새롭게 배워야 하는 입장에서 정말 열정하나로 본당 일에 부딪쳤는데 1년이 지나고 책을 볼만큼 여유도 생긴 것 같다.
힘든 일은 왜 없겠는가. 「미사후 마침 기도는 하고 나가자」「명찰을 달고 다니자」등을 외치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 모습에서 다소 힘이 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변화를 싫어하는 신자들의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그러나 「언젠가는 변할 것」이라는 희망이 더 크게 다가온다.
기회가 되면 가난한 이들을 위한 특수사목 분야에서 일을 해고픈 류신부. 이것은 그가 사제로 살아가게된 이유이기도 하다. 일반대학을 다니다 학교를 그만두고 신학교를 찾았던 계기가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은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사제로 수품되던 날 땅에 엎드려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거듭나기를 다짐하는 순간에 바친 기도 역시 「주님 제가 가난한 사람들을 배신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요」라는 것이었다.
성소주일을 맞아 류신부는 젊은이들에게 조금 앞서 성소의 길을 간 입장에서 「하느님께서 주시는 기쁨이 크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어했다. 「성직·수도자로 사는 길은 일반 사람들이 느끼는 기쁨과 남다름」을 본인이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번쯤 성소의 삶을 동경해본 이들은 그대로 한번 걸어보라」고 권하는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