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학생 김종섭씨가 부모님께 드리는 편지
“물같은, 바다같은 사제가 돼라”는 말씀 “생생”
▲ 김종섭씨
황사가 유난히도 심한 해입니다. 아프신 데 없이 잘 지내시죠? 저는 건강합니다. 워낙 건강 체질이다 보니…. 또 신학교 밥 정말 맛있거든요. 요즘은 영성 그룹 축구대회가 있어서 재미있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제대하고 휴학동안 속 많이 썩여 드려서 죄송해요. 나름대로 고민거리도 많았고 그러다 보니 생활이 엉망이었습니다. 겉으로 표현도 못하시고 마음 아파하시는 것 알고 있었는데도 그 때는 왜 그리 말썽만 부리고 그랬는지…. 아직 철들려면 멀었나 봅니다.
저번에 전화드릴 때 말씀 드렸죠. 이것저것 하는 일이 많아서 많이 바쁘다구요. 그래도 기쁘답니다. 정말 힘들지만 신기하게도 기쁩니다.
하지만 요즘은 더 힘들어요. 「신학생」이라는 이름으로 지낸 지 벌써 8년 째 인데 왜 이제 와서야 제 안에 있던 문제점들, 깨뜨려 버려야만 될 악습들이 드러났는지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 매순간이 힘겹고 아픕니다. 많이 생각하고 자주 생각해도 쉽사리 풀리지 않는 문제점들입니다. 그래서 일까요. 예전에 아버지, 어머니께서 제게 해주신 말들이 떠오릅니다.
기억나시죠? 아버지. 방학 때면 종종 아침에 앞산 근처 두부집에서 서로 잔을 기울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죠. 한번은 제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 깊은 땅속에 있는 물 같은 사제가 되어라. 보이지는 않지만 모든 것에게 생명을 주는 그런 사제가 되어라」 그때는 잘 알아듣지 못했는데 이제는 조금이나마 알겠습니다. 항상 겸손하게 정말 하느님의 사랑을 전해 주는 그런 사제가 되기를 바라시는 마음, 이제는 조금 알겠습니다.
또 한번은 군대 가기 전 본당에서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어머니께 미주알고주알 쏟아 부은 적이 있었어요. 그때 어머니께서 제게 「토마야, 바다같은 신부가 되어야지. 바다는 세상의 온갖 물들을 다 받아들인단다. 그것이 깊은 산골짜기에서 흘러나온 깨끗하고 좋은 물이든 공장에서 흘러나온 더러운 물이든 바다는 온갖 것들을 다 받아들인단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때 저는 정말 충격을 받았답니다. 어찌나 따끔한 충고였는지, 어찌나 뼈아픈 가르침이셨는지….
아버지께서는 틈만 나면 제게 「나처럼 살지 마라」고 얘기 하셔요. 제 삐뚤어진 성격이 바로 아버지와 똑같다는 말씀이시죠. 그러나 아버지, 제게 있어서 세상에서 가장 멋진 분은 바로 당신입니다. 날카로운 지성을 가지고 계시면서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따뜻한 감정을 가지신 바로 당신입니다. 또 어머니께서는 늘 못 배우신 게 한이셨죠? 그런데 그런 어머니의 모습이 제게 가장 큰 스승인 것을 아십니까? 항상 겸손하시고 자상한 당신의 모습이야말로 바로 저의 스승입니다.
어머니 아버지, 제게 주신 「물같은, 바다같은 사제가 돼라」는 가르침을 영원히 깨우치고 또 그렇게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건강하셔야 됩니다. 하느님께 기도 드렸어요.
아들 올림
■ 손영순씨가 신학생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내 집은 신학교예요”라고 매정하게 말했지…
주님의 맡 잘 경작해 좋은 열매 거두거라
▲ 손영순씨
성직자 묘지 사이로 흐드러지게 핀 영산홍에 시선이 잡히고 소 주교님 묘비 틈에 연보라 제비꽃은 발걸음을 잡는다. 온통 그 분의 손길이 느껴지는 행복한 봄이구나.
베드로! 행복하지?
너를 신학교로 떠나보내던 날 눈물이라도 보일까봐 씩씩한 척 『안녕! 베드로』하고 웃으며 돌아왔는데 빈집에 들어서는 순간 꾹 참았던 감정이 솟구쳐 왈칵 목이 메이고 가슴이 저며오더구나.
괜스레 십자가를 바라보며 『당신은 도대체 어떤 분이시기에, 우리 아들 마음을 다 가져가시나요?』하고 투정부렸더니, 예수님도 미안한지 아무 말씀 못 하시더라.
신학교에 가지고 갈 이불을 준비하면서 『이제 정말 베드로가 집을 떠나네』했더니 『엄마! 내 집은 신학교예요』라고 매정하게 말했지? 그렇지만 난 네 마음 다 알아. 엄마 마음을 준비시키던 너의 따뜻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실없는 사람처럼 『최봉용 베드로!』하고 큰 소리로 불러보았단다.
엄마의 큰 위로가 돼 주었던 고마운 베드로! 네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예비 신학생 모임에 나가겠다는 뜻밖의 말을 했을 때 왠지 두려운 마음이 들었고 내 아들이 평범하지 않은 길을 간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단다.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엄마!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면 내가 원한다고 사제가 되는 것도 아니고 엄마가 반대하신다고 해서 엄마 뜻대로 될 수도 없어요』라는 네 말에 깜짝 놀랐다. 하느님께 내 속마음 들킨 것 같아 너를 예신 모임에 데려다 주고 곧바로 「주님! 모든 일을 당신 뜻에 맡깁니다」하고 기도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네 말이 내 가슴에 화살처럼 박히며 하느님 말씀처럼 들렸던 것은 성령의 이끄심으로 여겨진다.
많은 분들이 신학생 부모가 됐다고 축하해 줬지만 눈앞에 보이는 것은 끝없이 지고 갈 기도의 십자가임을 실감하게 되는구나. 「우리 앞에 닥친 십자가를 기꺼이 진다면 오히려 그 십자가에서 힘을 얻게 된다」는 어느 신부님 말씀에 크게 동감한 기억이 난다. 그러니 부족하지만 힘을 얻어 주님의 뜻이 베드로에게 이루어지길 열심히 기도할께.
엄마 마음 한 구석엔 「우리 아들에게는 걸림돌이 없었으면」 하는 어리석은 바람도 없지 않단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한다」(사도 14, 22)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처럼 어려움이 없기를 바라기보다 잘 극복할 수 있는 도움의 은총을 주시길 항상 청하자꾸나.
이제는 예수님을 따르려고 쟁기를 잡았으니 뒤돌아보지 말고 주님께서 주신 밭을 잘 경작하여 좋은 열매를 거둘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라. 그리하여 더불어 사는 삶 안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고 사랑을 나누며 같은 보물을 찾은 동료들과 함께 주님 안에서 항상 행복하기를 바란다.
티없으신 성모성심께 베드로를 봉헌하며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