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의 전반부는 목자와 양의 비유를 전해 준다. 목자와 양의 비유는 구약성서에서 백성과 지도자와의 관계를 설명하거나 이스라엘을 돌보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설명할 때 사용하는 개념인데 여기서는 그리스도와 추종자들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 복음의 후반부는 전반부의 목자와 양의 비유에 대한 우의적 해설로서 예수님의 자기 계시의 말씀이다.
여기서 예수님은 자신을 양들의 문으로 계시하면서 자신과 도둑과 강도로 표현된 거짓 지도자들을 비교하여 설명한다.
이것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문」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을 살펴보아야 하겠다.
첫째, 당시 사람들의 생각은 하늘은 문을 통하여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여기서 하늘이란 단순히 보이는 하늘이 아니라 「신들의 세계」 또는 「 하느님이 계신 곳」을 의미하였기에 문이란 신들의 세계와 하느님의 세계로 가는 길을 의미한다.
그리고 두 번째 하늘의 문이란 표현이 유다교 문헌에 나오는데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표현은 「구원이 인간들에게 전달되는 수단」을 하늘의 문이라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공관복음에서 「문」이란 표현은 종종 종말론적인 언급과 연결되거나 아니면 하느님나라와 예수님의 인격과 연결되어 나타나고 있다.
그러기에 결론적으로 말하면 양들의 문이란 표현은 「구원자로서의 예수님의 유일 무이한 역할」이 강조된 표현으로 사람들은 예수님을 통해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로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요, 종말론적인 구원자로서의 예수님의 자기계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9절에 나오는 「좋은 풀을 먹는다」란 표현도 구약성서적 표현으로서 구원과 종말론적 축복을 뜻하는데 이러한 사실도 예수님의 구원에 대한 역할을 잘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 예수님은 목자인 자신과 도둑과 강도를 비교한다. 여기서 도둑과 강도는 두 가지 의미로 생각할 수 있는데 하나는 자신을 메시아로 자처하는 거짓 메시아를 의미할 수도 있고 문맥상으로는 바리사이들을 주축으로 한 당시의 유다 지도자들을 의미할 수도 있다.
어떻든 예수님과 거짓 지도자들의 차이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과 『딴 데로 넘어 들어가는 사람』이 그 기준이라는 것이다.
문으로 들어간다라는 표현은 구원, 생명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말로 양들을 구원으로 이끄는 사람이냐 아니면 멸망으로 이끄느냐가 그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문으로 들어간다」, 당연히 문은 들어가기 위해 있는 것으로 이 말은 너무나 정상적이고 순리적인 무엇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러기에 이 말을 객관적인 질서와 가치, 그리고 순리를 지켜야 한다는 의미로 알아들어도 괜찮은 해석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그리고 두 번째 차이는 「생명과 풍요로움을 주는 사람」이냐 아니면 「죽이고 없애 버리는 사람」이냐 라는 것이다.
이 같은 차이는 양들을 보는 관점에서 오는 필연적인 것이다. 목자는 양들을 위하는 사람이요 양들에 초점을 맞추기에 그들의 이익과 풍요가 그의 주된 관심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여기에 비해 도둑과 강도는 자신의 이익에 초점을 맞추는 사람이기에 양들은 다만 자신의 기득권과 이익을 위하여 희생되어야 할 무엇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참다운 지도자를 판단하는 이 기준은 아마도 오늘날도 여전히 유효한 진리가 아닌가 생각되면서 우리가 올해 있는 대통령 선거에서도 이 같은 관점으로 접근한다면 좀 더 좋은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아울러 좀 더 생각해 본다면 대량 생산과 소비만이 선으로 여기고 자연은 단지 인간을 위해 정복되어야만 하는 대상으로 보는 현대의 소유와 소비주의에 대해서도 일침을 주는 말씀이 아닌가 여겨진다.
어떻든 참다운 목자는 대상을 위해 자신을 내주고 소멸시킴으로써 그를 성장시키고 살리는 것, 이것이 목자가 가져야 되는 자세라는 것인데 아마도 이 점이 모든 특별 성소자들과 착한 목자를 따라 나설 미래의 성소자들이 가져야될 기본 자세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오늘은 부활 제 4주일인 동시에 성소주일이다. 먼저 교회 안에서 가지는 사제 성소와 수도성소의 중요성과 의미를 뒤돌아보면서 보다 많은 젊은이들이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따라 일생을 바칠 수 있도록 기도하자!
그리고 우리의 결혼 성소도 또 하나의 하느님의 부르심임을 자각하면서 「하느님이 나와 우리 가정을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그분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자!
그리고 무엇보다 먼저 나의 삶의 자리에서 「대상을 살리고 풍요롭게 하는 착한 목자의 삶」을 살기로 결심해보자!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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