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획기적 사목 전환
한국교회가 가정사목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70년 정부에서 인구 억제에 목적을 두고 낙태 허용을 골자로 하는 모자보건법을 추진할 때부터였다.
주교회의에서는 이 악법이 제정되지 못하도록 범교회 차원의 힘을 모으는 전국기구를 구성하자고 결정했고 이어 1972년 자연가족계획법을 연구 보급하기로 합의했으며 이듬해에는 성모병원 의료진으로 구성된 연구위원회로부터 자연적 가족계획법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그후 주교회의는 1975년 춘계 회의에서 직속 기관으로 가정 사목부를 설립한데 이어 「행복한 가정운동」을 설립해 가정사목부의 공식 기구로 가정과 생명의 존엄성을 수호하기 위한 본격적인 노력을 시작했다. 가정사목부는 1980년 「가정사목위원회」로 명칭이 바뀌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후 행복한가정운동(행가운)과 주교회의 가정사목부를 중심으로 교회는 인구 억제 시책을 골자로 하는 정부의 지속적인 인구 정책에 대해 비판하면서 다각적으로 가정과 생명을 수호 하기 위한 운동을 펼쳐왔다.
주교단은 80년 공동 사목 교서 「가정 성화의 해」를 발표한 것을 비롯해 인구 증가 억제 및 낙태, 인공 유산과 불임시술 등 가정과 생명 문제와 관련된 성명서들을 잇따라 발표했으며 행가운을 중심으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과 세미나 등을 개최해왔다.
한국교회가 가정사목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늘려가고 있는 것은 그만큼 한국 사회의 가정이 처한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가정은 「깨어지고 있다」는 말이 틀리지 않을 만큼 심각한 지경에 와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혼율이 급증하는 반면 혼인율은 최저치를 나타내고 있다. 이와 함께 출산율은 갈수록 떨어져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서구 국가보다도 오히려 낮게 나타나고 있다.
이미 수없이 지적돼 온 낙태율은 전세계에서도 가장 높은 수치로 나타나 1985년 이후 150만에서 200만건의 낙태가 매년 시술되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인구 비례로 볼 때 미국의 6배, 일본의 9배, 이탈리아의 10배에 달한다.
전통적인 대가족 제도는 이미 붕괴돼 핵가족화가 이뤄졌고 단독가구, 동거가구 등이 늘어나고 있으며 비전통적인 다양한 형태의 가구 증가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제 한국교회의 가정 사목이 획기적인 전환을 이뤄야 한다는 요청이 늘어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이제 가정 사목이 사목의 일개 구성 요소가 아니라 교회의 모든 사목 활동에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는 지금까지 교회가 가정 사목의 중요성에 대해 인지하고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지만 대체로 가정사목이 다른 여러 사목 분야의 한 가지로 인식됐을 뿐이라는 문제 의식에 바탕을 둔다.
또한 이제는 일선 사목 현장에서도 신자 개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사목활동 뿐만 아니라 각 가정을 단위로 하는 사목 프로그램을 적극 개발 시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한국교회의 가정 사목 활동의 역사를 살펴보면 본당 사목에 있어서 가정 단위의 사목 활동이 원할하게 이뤄지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신심이나 사도직 활동에 있어서도 가족 관계에 비중을 두고 이뤄지는 경우가 부족하다. 아울러 교구나 전국 차원에서 가정사목 관련 부서들이 있지만 특정 계층이나 사안, 문제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경향이 있음을 볼 수 있다.
가정을 위한 체계적인 교육도 강화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가정과 생명에 대한 가치관의 혼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철저하고 체계적인 교육이 절실하다. 주일학교 교재에서부터 자연 가족 계획이나 순결 교육 등도 현대적인 감각에 맞춰 강화돼야 할 것이다.
아울러 가정사목을 위한 조직을 새롭게 정비하고 강화하며 관련 단체들간의 긴밀한 유대와 협력이 반드시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러한 조직 정비와 강화의 일환으로 현대 세계의 가정 문제를 보다 깊이있게 연구하고 현실적인 대안과 프로그램들을 연구 개발해 일선 사목 현장에 적용할 수 있도록 관련 연구 기구를 설립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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