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군인 수도회
이 수도회는 12세기 십자군 전쟁을 지원하는 교회의 요구에 부응하여 창설된 수도회이다. 다소 특이한 성격을 보이는 수도회이니 만큼 용어 자체도 생소하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인 기사도의 발생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교회는 오랫동안 중세기 그리스도인 기사들에게 정의가 요구할 경우에만 칼을 사용할 수 있다고 가르쳐왔다. 교황 우르바노 2세(1088~1099)는 1095년 십자군이란 칙서에서 이를 다시 확인하였다.
그러므로 이런 수도회는 군인들을 그리스도화 시킬 목적으로 창설된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금모의 양피(Golden Fleece)란 이름을 딴 세속적 기사단과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었다.
이 수도회도 수도원이니 만큼 수도 전통을 무시할 수 없었고 군인들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 기사도를 중시하였다. 회원들은 교회의 서원들을 준수하고 수행에 힘쓰며 성무일도를 바쳤을 뿐 아니라 무력으로 미신자들을 대항하여 싸우기도 하였다. 각 수도회는 지휘관이 지도하였고 기사들의 영적 업무에는 성직을 맡은 회원들이 담당하였다. 교황청은 이들을 교구장들의 지배를 받지 않게 배려하였다. 이 수도회들은 성지에서 세워진 십자군 국가들을 보호 유지하는 데 기여했을 뿐 아니라 스페인의 재정복과 동유럽에서 이교인들의 개종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이들 중 대표적 수도회는 성전 기사 수도회(Templar)였다. 이는 1119년 팔레스티나 성지를 여행하던 순례자들을 보호할 목적으로 위그 드 빠양이 여덟 명의 동료와 함께 세웠는데 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도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베르나르도 성인은 새로운 군대를 찬양하는 책(Liber de laude novae militiae)에서 『우리 군인들의 영광이 템플룸 수도회 군인들에게 있기를!』라는 말로 군인 수도회 창설을 지지하는 글을 썼다. 그는 그 책에서 군인과 수도자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그 소임을 조화시켜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그가 제시한 새로운 군대(nova militia)는 새로운 기사도와 새로운 성격을 띤 수도회를 의미하였다.
성전 기사 수도회를 모방하여 생긴 수도회는 예루살렘의 성 요한 수도회였다(1070년). 이들은 이미 환자들과 순례자들을 돌보면서 성지를 무력으로 보호하고 있었다. 이 외에도 성지에서 생긴 다른 수도회로는 독일의 부호 브레멘과 루벡이 세운 튜톤 기사회로서 이 수도회는 프러시아를 정복하고 회개시키는데 기여하였고 리가의 알베르토 1세 주교가 세운 칼의 수도회도 있었다. 이들은 리보니아에서 비슷한 소임을 담당하였다.
한편 이베리아 반도에서 여러 개의 기사 수도회들이 창설되었다가 사라지는 일이 일어났다. 이들도 성전 기사 수도회와 성 요한 수도회를 모방하고 명확히 성 베르나르도의 영향을 받아 설립되었다.
처음으로 1158년에 칼라트라바라는 수도회가 설립되었는데, 그 정신은 시토회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많았고 이 수도회의 군대 노릇을 하였다. 그 뒤로 알칸트라의 레오 기사단, 아비즈의 포르투갈회, 몬테사의 아라곤 기사회들도 칼라트라바와 연관이 많았고 역시 시토회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포르투갈의 그리스도회는 칼라트라바에 의존하고 있지는 않았으나 성 베르나르도가 속해 있던 시토회의 전통을 유지하였다. 산티아고에서 설립된 성 야고보의 기사회를 제외하고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설립된 모든 수도회는 성 아우구스티노의 규칙을 준수하면서 시토회의 전통을 따랐던 것이다.
우후죽순처럼 여러 군인 수도회가 창설되었다가 곧 사라지기도 하였다. 이들 수도회는 그 존재 가치를 충분히 발휘하였으나 사라진 이유는 성지에서 생겨난 십자군 국가들이 멸망하고 스페인의 재정복이 성공하자 군인 수도회의 존재 이유와 그 가치가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312년 교황 클레멘스 5세는 성전 기사수도회를 박해하고 폐지시켰으나 의료를 담당하던 성 요한 수도회는 근대까지 존속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환자를 돌보는 일을 지속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세 이후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는 군주들이 군인 수도회를 직접 지도하여 점차적으로 영예로운 귀족들의 단체로 전환시켜버렸다.
한편 우리가 보아온 수도회들은 모두가 성 아우구스티노와 성 베네딕도의 규칙이나 이를 다소 변경하여 만든 회칙으로 수도생활을 해 왔다. 그런데 한 세기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방식의 신앙적 삶의 형태와 양식이 일어났으니 13세기도 예외는 아니었다. 더구나 10세기경부터 불가리아를 중심으로 알비파 이단이 서유럽으로 유입되어 교회에 피해를 주고 있었으므로 이들을 대항하여 올바른 교리를 가르칠 사람들과 단체가 필요했다. 그러던 중 하느님의 특별한 섭리하심으로 이 세기 초에 절대적 청빈 정신을 강조한 탁발(托鉢) 수도회(Ordo mendicans)가 생겨난 것이다. 그 수도회는 도미니코회와 프란치스코회이다.
다음 호에서 구체적으로 이들의 영성을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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