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세끼를 먹듯 너무나 당연해 무심하게 지나치는 현대인의 일상은 100여년 전만 해도 보통사람들에겐 허황하기까지 한 꿈이자 넘기 힘든 벽이었다.
1955년 교황 비오 12세가 5월 1일을 「노동자들의 수호자 성 요셉 대축일」로 제정하면서 교회 안에서도 뜻있는 기념일로 자리잡아온 노동절(勞動節·Labor Day)은 신자들에게는 여전히 낯선, 그래서 달력에만 존재하는 날이다. 「근로」라는 말이 「노동」이나 「노동자」라는 말보다 익숙한 현실은 「시대의 징표」에 민감하기 보다 어느새 일상에 길들여져 있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주기도 한다.
이런 가운데 갈수록 그 의미가 희석되고 있는 「노동하는 삶」의 중요성을 되돌아보는 것은 곧 노동의 신성함을 회복하고 사회정의를 다지는 일이기도 하다.
▲ 「노동자」에 대한 단편적인 인식을 지니고 있는 교회 모습은 현대사회 속에서의 사목의 다양성과 유연성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기까지 하고 있다.(사진은 특정내용과 관련없음).
희망 그 자체였던 교회
그 어느 때보다 겨울바람이 매섭던 지난해 2월, 하루아침에 일하던 작업장에서 쫓겨나 의지할 데 없이 절망으로만 치닫던 대우자동차 노조원들은 어떤 이끌림에선지 인천 산곡동 샤미나드 피정의 집을 찾아들었다. 하느님의 품으로 피신해온 노동자들로 인해 시작된 역사, 이 역사는 정리해고 통지서를 받아든 1750명에 이르는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의 십자가를 함께 짊어진 교회의 현대사이기도 했다.
대우노동자들을 기억하고 이들의 권리 존중을 염원하며 봉헌된 부활대축일 미사, 대우자동차 정상화를 위해 인천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주최로 7월 23일 열린 걷기대회, 그리고 본당에서 수시로 열린 기도회…. 노동의 가치를 지켜내기 위한 노동자들의 싸움은 교회로 인해 외롭지 않았던 것이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던 가난한 노동자들과 함께 한 교회의 활동은 그 해 여름 뜻하지 않은 열매를 맺었다. 노조위원장 김일섭씨를 비롯해 조직2부장, 상무집행위원, 산업안전실장 등 주요 간부 10여명이 스스로의 선택으로 세례를 받은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시는 하느님의 모상은 노동자들의 소박한 마음과 닮은 점이 적지 않은 것 같다』는 한 노동자의 말은 하느님의 현존을 새롭게 돌아보게 했다. 이렇게 해서 인천교구는 대우자동차 노조원들로 인해 교회 노동사목 역사에 새로운 페이지를 기록하게 됐다.
노동·노동절의 의미
우리 사회에서 주로 물리적 노동(labour)으로만 인식돼온 노동은 철학적, 신학적 의미에서 「인격적 상호활동(action)」을 통해 하느님의 창조(creation)와 구원(redemption) 사업에 동참한다는 뜻을 지닌다. 그러나 실상은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 노동이 지닌 의미가 희석되면서 노동의 기능적 의미만 남아 노동의 궁극적인 목적이 퇴색돼가고 있는 모습이다.
교회가 성 요셉 대축일로 기념하는 「노동절」은 단순히 산업현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사람들만의 행사가 아니라 노동을 통해 사회를 유지하는 책임을 나눠진 모든 이들의 축제의 장이자 「노동」의 신성함을 새로이 돌아보는 장이기도 하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선택의 길에 함께 해온 교회는 사회의 발전과정에서 비인간적인 삶의 조건과 이런 삶의 기반이 되는 노동현실을 인간답게 바꿈으로써 하느님나라를 이 땅에서 맛보도록 하는데 힘을 기울여왔다. 이런 가운데 교회는 사회 구성원들이 「공동선」이라는 기준을 통해 자기완성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왔다. 노동하는 이들에게 「공동선」이란 곧 노동을 통해 노동자 자신뿐 아니라 노동자가 포함된 공동체가 함께 하느님나라로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노동은 인간과 인간공동체를 동시에 정화시키는 과정인 셈이다. 이는 노동의 신성함을 자신과 공동체 안에서 드러낼 때 가능한 일이다.
이런 교회의 정신에 비춰 한국사회에서의 노동의 역사를 돌아보면 비오 12세가 「공동선의 가장 값진 요소」에 속한다고 강조한 인간의 기본권이 온전히 지켜지지 못하고 수시로 훼손당함으로써 공동선마저 제 빛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교회 안팎의 노동 현실
사람이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만든 돈이 위력을 더해갈수록 인간, 특히 노동자들이 소외되는 현실은 점점 더 일상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노동」은 가난한 자들의 꼬리표쯤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로 인해 노동자는 가난한 자, 게으른 존재라는 생각이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다.
이런 의식은 교회 안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하느님이 원하시는 삶을 현실에서 얼마나 열심히 살아가는가가 아니라 사회에서의 위치가 그 사람의 교회 안에서의 위치마저 가늠하는 실정인 것이다. 이런 풍토는 교회가 사회의 물질주의적 사고에 젖어 세속화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정보화사회로 급속히 나아가면서 과거에는 없던 새로운 노동관계가 나타나고 노동자층이 다양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에 대해 여전히 단편적인 인식을 지니고 있는 교회 모습은 현대사회 속에서의 사목의 다양성과 유연성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기까지 하고 있다.
서울노동자회 이재철(안토니오) 회장은 『역동적으로 변하는 노동하는 삶의 모습과 다양하게 바뀌는 노사관계 등에 주목하지 않고 어떻게 현대사회에 적절한 사목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고 반문하고 『교회가 현장의 목소리에 보다 귀를 기울이고 노동자들에게 한발 더 다가설 때 교회 안에서부터 올바른 노동 문화를 일궈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신자유주의로 노동하는 이들의 빈곤화현상마저 세계화하고 있어 교회의 올바른 역할이 더욱 필요성을 더해가고 있다.
교회 안의 노동자
「교회 안에 노동자는 존재하는가」
교회 내 노동자에 대한 논의는 이 물음에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다. 교회내에 존재하는 노동관계, 또 이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에 대한 대처방안 등을 논하기 앞서 노동자의 모습부터 돌아볼 필요성이 있다.
이런 논의에 있어 먼저 전제가 되어야 할 것은 「신앙의 눈」으로 바라본다는 자세다. 이 부분에 공감대가 이뤄질 때 기본적으로 갈등관계가 중심에 놓이기 쉬운 노동문제가 하느님나라를 향한 공동선을 추구하는 관계로 바뀔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교회 내에는 노동하는 이들이 있음에도 「노동자는 없는」 현실이다. 이같은 모습은 대외적으로는 인간다운 삶을 강조하고 복음이 선포되는 사회를 역설하면서도 교회 안에서는 노동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올바로 드러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앙의 눈으로 이들의 존재를 새롭게 파악하는 자세가 절실하다.
매년 노동자의 날 행사를 꾸준히 열어 오면서 최근에는 교구 차원의 「노동자주일」까지 제정한 인천교구 사례는 전반적으로 침잠해 있던 한국교회에 활력소가 되고 있다.
『현실 안에서 지니는 노동의 의외성이 곧 하느님 창조사업의 촉진제가 될 수 있습니다. 노동자의 삶에 보다 깊숙이 다가설 때 교회가 시대의 징표를 보다 명확히 읽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인천교구 사회사목국장 조호동 신부의 말은 오늘을 사는 노동자와 교회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희년의 정신을 새롭게 하는 노동
수 천년전 사회를 향해 대희년을 선포한 교회의 모습은 늘 새로운 충격이다. 관념으로 박제화되기 쉬운 나눔의 삶을 실천하고자 한 구체적인 실천이었던 대희년은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이로 인한 노동의 신성함이 파괴되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사랑의 모습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희년을 선포하고 있는 교회의 책무는 교회가 딛고선 현실에서 희년의 정신을 실현하는 데 필수적인 각종 사회적 제도와 공동체적 대안을 제시하고 그것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이는 하느님 창조사업에서 큰 몫을 차지하는 노동의 가치, 노동자의 존재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달려있다.
▶노동절의 역사
1800년대 후반 미국서 시작
1800년대 후반 자본주의의 첨단을 달리고 있던 미국의 노동자들은 매일 14~18시간의 장시간 노동에 허덕이면서도 일주일에 7~8달러의 저임금으로 굶주림과 헐벗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배고픔에 학교에 들어가지 못한 7살의 어린 소년들마저 탄광에서 일하는 것이 평범한 일상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런 가운데 「8시간 노동제」를 기치로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낸 날이 5월 1일, 이후 이날은 노동자들의 단결을 상징하는 「노동절」로 자리잡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제의 강압 통치가 기세를 더해가던 1923년 조선노동총연맹이 노동시간 단축, 임금인상 등을 외치며 5월 1일 서울역에서 노동절 행사를 연 것이 시발점이다. 해방 이후에는 1946년 3월 10일 결성된 대한노동조합총연맹이 5월 1일을 노동절로 기념해왔으나, 동서냉전에 따른 이념대립의 영향으로 1959년 이승만정권이 노동절을 대한노총이 창립된 3월 10일로 바꾸었고 박정희정권은 63년 노동법 개정과정에서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을 통해 이나마 「근로자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바꿔버렸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요구로 94년부터 다시 5월 1일로 바뀌어 지내오고 있으나 명칭은 여전히 「근로자의 날」로 이어지며 노동자들조차 노동절의 의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